[프롤로그] 권고사직 통보를 받은 날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by 이나

잘렸다. 뭐를? 회사를. 모두가 흔히들 말하는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날은 생각해 보면 아침부터 이상했다. 정교하게 잘 만든 영화처럼 치밀한 복선이 일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첫 번째 복선은, 오전에 마주한 팀원 얼굴이 죽상이었단 것이다. 보자마자 '무슨 일 있어요?'라고 바로 물어볼 만큼 표정이 아주 안 좋았다. 그 팀원은 고민하다가 그저 아니라고만 대답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달았다. "쟤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두 번째 복선은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근무를 시작하자마자 드러났다. 팀장이 자리를 길게 비웠다. 사실 한 사람이 길게 자리를 비우는 것 정도야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저 회의를 하는구나 싶을 거다. 그러나 팀원들이 차례차례 불려 나가면 말이 달라진다. 내 옆자리인 사수도 자리를 비우는 상황이 되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회의를 자주 하는 팀이 아니고, 사수는 평소에 자리를 길게 비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괜한 기우겠지. 생각하는 순간 메신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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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팀 팀장이 개인 메시지를 할 만한 상황은 예컨대 그거밖에 없었다. 인사이동 혹은 퇴사.

설마 진짜 퇴사하라고 하겠어? 하고 쿵쾅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들어간 회의실에선 아니나 다를까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대표님이 ㅇㅇ팀을 해체하기로 정했고 그 과정에서 ㅇㅇㅇ님 팀원들도 모두 권고사직 예정입니다.' 사직 이유를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건 저 한마디뿐이었다. 그리 오래 다닌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씁쓸함도 나름 덜했지만 예견되지 않은 통보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두 달만 더 다니면 입사 1년 차였고, 나름 만족해하며 다니고 있었건만 이게 웬 마른하늘에 날벼락인지... 내 퇴직금! 13개로 늘어나는 연차! 결혼축하금과 포상휴가는?? 결혼식에 팀원들 부를 생각이었는데 이젠 어떻게 하지? 회의실에서 자리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나는 권고사직으로 퇴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유부녀가 되자마자 들어간 회사에선 수습기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도망쳤다. 이게 모두 1년 안에 이뤄진 일이다. 요즘은 결혼 또한 사치 중에 하나라고, 결혼도 돈 있는 놈들이 하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나는 안정적인 시기를 맞이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든든한 울타리 같은 신랑은 만났지만 아직도 나에게 맞는 회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으니 말이다.

38세도 희망퇴직을 권유받는 이 시대에 직장이란 그렇게 좋은 패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직장보단 직업이 우선이 되는 사회라고.. 자신의 브랜딩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오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평생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밥벌이는 하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생각해 왔기에, 적당한 곳에 이직하는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직장은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일까, 아니면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축일까?' '아이를 갖고 나면 직장은 어떻게 할 것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 글은 어떻게 보면 혼란한 내가 적어 내려가는 나의 커리어 일기가 되겠다. 다만 이 글이 나와 같은 사회를 살고 있는 자들에게 평범한 공감을 일으킬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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