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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y 12. 2024

미국 대기업과 협상, 그 이론과 현실

Part I

이 글은 실제로 있었던 사례입니다. 미국 대기업과의 협상에서 철저한 준비, 정보 파악, 시나리오 수립, 순간적 판단, 열린 감각으로 조금의 밀림도 없이 협상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내었고 거래선도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결정을 한 사례입니다. 협상의 이론에서 거론되는 여러 상황들이 집약된 사례이기에 협상이론과 현실에 대해 같이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미국 대기업과 협상하는 각 부분마다, 협상이론을 붙여서 실 상황과 이론을 비교하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다소 가독성이 떨어지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검정 글씨 : 실제 협상 사례

 - 푸른 글씨 : 협상이론


미국 Texas 소재 거래선 D사 미팅을 위해 나, 개발팀장과 개발수석, 마케팅 그룹장, 그리고 Account Manager와 실무자를 포함하여 6명이 팀을 꾸렸다. 이번 방문은 D사에 공급하는 Display 완제품 가격을 인상해야 하는 협상 과제와 지난 1분기 실적을 리뷰하는 Quarterly Business Review(이하 QBR) 미팅을 잘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미션을 포함하고 있었다. 거래선과 분기 단위로 지난 분기 실적 및 차 분기, 차차 분기 판매 목표를 정하고 세부 실행과제(Action Item)를 설정하는 미팅을 QBR이라고 한다. 시장의 상황이 크게 요동치지 않는 한, 이 QBR미팅에서 공급하는 제품 가격의 적정변동폭을 협상하여 정하기도 한다.


매 분기별 진행하는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힘든 과제가 가격 협상이다. 가격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공급자는 가능한 적게 내리도록 막아야 하고, 구매자는 큰 폭의 가격 인하를 위해 공격적으로 덤벼든다. 반대의 경우, 공급가를 인상해야 하는 경우는_드물게 발생하지만_ 공급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세밀한 전략을 수립, 최소 5가지 이상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여 협상에 임한다. 그리고 가격 인상을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반면 구매자는 가격 인상을 저지하거나 최소화하기 모든 가용한 협상 전략, 전술을 동원한다.  


이번 QBR 미팅은 우리가 유리한 조건에서 진행할 수 있는 미팅이었다. 당시 모든 원자재, 특히  Display Panel 가격상승과 공급부족으로 인해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이었기에 모처럼 공급자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분기 실적 리뷰와 가격 미팅을 분리해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 협상이론 : 협상에 불리한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메인 협상과 연관관계가 약한 토픽 혹은 메인 협상에 불리한 토픽은 협상 전에 분리시켜야 한다. 상대방이 부수적인 토픽을 지렛대로 활용하지 않도록 원천 봉쇄 혹은 분리가 최선이다.


거래선 입장에서는 실적과 가격을 같이 협의할 때는, 어느 한쪽은 반드시 유리한 토픽이 되는 것이니 항상 묶어서 협의하려 하고 분리해서 미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실적이나 가격 중에 하나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게 있으면 그것을 활용하여 다른 주제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형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공급자 시장 상황임을 감안해 ‘공급 물량’을 무기로 가격 미팅을 별도로 해야 함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 협상이론 :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밀리는 상황에서도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만만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협상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협상자를 변경하거나, 협상 룸을 변경하거나, 잠시 휴식 시간을 갖거나하여 분위기 반전을 노려야 한다.


지난 분기의 경우, D사의 구매량이 계획보다 많았고 당사의 이익이 좋았으나, 당사의 공급망 구조_Supply Chain_가 흔들려 Display 공급을 제때에 못한 경우가 3번 정도 있었다. D사 Biz Model의 핵심은 Build-to-order를 통한 직 공급이다. 주변기기 제품의 공급 일정이 늦어지면 D사 PC 판매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에 공급 차질에 대해선 항상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었다. 

▶ 협상이론 : 협상에 불리한 내용(부수적 주제)은 협상 주제에서 가급적 분리해야 하고, 부수적 주제로 더 거칠게 치고 들어와 메인 협상 주제까지 끌고 가기 전에 개선 제안(Corrective action)을 먼저 제시하여 부수적 주제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협상에 불리한 주제는 메인 주제와 같이 다루지 않도록 함이 좋다.


D사 입장에서는 지난 분기의 구매 초과, 공급 차질 이슈를 지렛대 삼아 공급자 시장에서의 가격을 방어하려는 의도가 컸기에 QBR 미팅과 가격 미팅을 같이 하려 했다. 반면, 우리는 상반된 입장이었기에 가격 미팅은 무슨 수를 동원해서라도 별도로 해야 했다. 이 상황에서 제한된 ‘공급물량’이 큰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 협상이론 : 상대방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소재가 있다면, 더 큰 소재로 눌러야 한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누를 수 있는 소재가 없다면, 협상 시간을 단축함이 좋다. 분배적 협상에서는 win-win 보다는 자기 측에 유리한 결과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므로 불리한 소재에 말려들어가면 안 된다. 장기적 거래 관계의 거래선이더라도 분배적 협상의 과정은 냉정하게 하고, 마무리 단계에서 통합적 협상의 분위기로 유도하여 win-win으로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급자 시장이 오면 기회를 최대화해야 한다. 장기적 비즈니스 관계를 가져가야 하는 거래선이더라도 공급자 시장에서는 냉정하게 기회를 활용,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격을 인상해야 한다. 만약 가격 인상을 못하게 되면 역으로 내 사업에 직접적인 타격들을 받게 되어 다음 분기 공급 및 지속적 거래관계 유지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협상이론 : 내게 유리한 협상 상황에서는 강하고 냉정한 포지션을 견지해야 한다. 긴장된 협상이 마무리된 뒤에는 딱딱했던 분위기를 소프트한 분위기로 전환하고 실리적이고 아름다운 양보를 통해 거래선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게 필요하다.  


가격 인상을 못하게 되었을 때 받는 타격들은 이러하다. 우선, 시장에서 호구가 된다.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구매자 눈치를 보는 회사, 가격의 주도권도 못 가져가는 회사, 만만한 회사 등의 이미지가 형성된다. 자연히 모든 협상에서 불리한 상황에 몰린다. 둘째 타격은 재무적 손실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팔면 팔수록 손실이 생긴다. Monitor 사업의 경우, Display Panel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Panel 가격 움직임이 손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셋째, 호구, 만만한 회사의 이미지는 시장에서 신뢰를 잃어 거래 혹은 거래 관계가 약해지거나 중단된다. 

시장은 냉정하다

약한 자에게는 철저히 군림하고

강한 자에게는 무조건 복종한다.

거래와 협상을 해야 하는 사업과 시장상황은 양해와 양보를 기대하기에는 냉정하다




아침 9시에 시작한 실적 리뷰 미팅은 12시 30분까지 예상했던 대로 거칠게 진행되었다. D社는 계획보다 더 구매를 하였지만 D社의 Display 판매 마진은 줄었다. 당사 제품의 구매가격이 前분기 대비 높았던 것이다. 반면, 당사의 공급은 약속한 일정보다 차질이 3차례나 발생했기에 D社 지역 본사에서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량 공급 차질은 당초 계획보다 구매 물량이 단기간에 증가하여 그런 것이고, 가격 인상을 예상하였기에 미리 선 확보를 하려는 D社의 속셈도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D社는 QBR 미팅을 거칠게 몰아갔고 가격 미팅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포석을 깐 듯,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길고 강도 높은 미팅이었지만, 이슈로 제기한 각 건 별로 대책을 수립하여 공유하기로 약속하고 미팅을 겨우 마쳤다. 

▶ 협상이론 :  거친 협상 상황에서는 상대방 속셈이 파악이 되면 맞서서 거칠게 맞장구 칠 필요가 없다. 험악 혹은 거친 분위기로 협상의 긴장도를 높이려는 것에는 반드시 의도가 있다. 이 의도가 파악이 되면 협상의 끝자락에 서서 그 순간을 보는 감각을 활용해야 한다. 즉, 협상의 결과/끝에 서서 역산을 하여 진행 과정을 지켜보듯이 지금 순간의 상대방 액션을 바라보고 다스려야 한다. 빅브라더 마인드로 상대방의 공세를 흡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QBR 미팅 후, 가격 협상을 위해 별도의 미팅 룸으로 이동을 하였다. 오늘의 미팅을 위해 1주일을 준비했다. 거래선이 취해올 상황들을 예측한 시나리오를 10여 개 상정하고 각각에 대한 상황 설정과 역할극까지 하면서 준비했다. 이처럼 가격 협상은 준비 기간에도 긴장도를 높이는 중요한 과제이다.

▶ 협상이론 :  어떠한 협상도 준비된 자에게는 당할 수 없다.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협상이더라도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하며, 갑자기 진행되는 ad-hoc 협상이더라도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 시나리오별 대응전략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격협상을 위해 마련된 테이블에는 가장 먼저 긴장부터 세팅된다.

그런데 이 긴장을 어떻게 빨리 해결하느냐에 따라 테이블세팅비는 수백만 불에서 수천만 불의 값을 펼쳐낼 판으로 변하는 것이다. 대기업의 경우, 협상 테이블의 규모가 크기에 가격 협상단의 준비, 특히 가격 인상 및 인하의 로직 준비는 아주 세밀해야 한다. 당시 D社와의 연간 Monitor 사업규모가 수조 원으로 꽤 컸다. 

▶ 협상이론 : 협상 결과에 따른 가격 조정의 파급효과가 얼마가 될지 감각적, 그리고 이성적으로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D社와의 모니터 사업규모가 분기별 3백만대라고 하면, 가격 1불 인상으로 분기에 3백만 불, 반기에 6백만 불을 버는 것이다. 2달러 인상이면 반기에 1,200만 불 버는 것이다. 5불 인상이면 반기에 3천만 불을 추가로 버는 것이다. 협상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가격 협상에서 밀려 불리한 결과로 이어지면 책임자는 그 부담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연유로 가격 협상 테이블에서도 현장에서 결정 못하고 본사와 상의하면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모습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충분한 준비와 현장 분위기의 감각적인 판단으로 책임감 있는 결정을 현장에서 해야 하고 본사도 그 결정을 존중하는 풍토가 형성된 기업이 더 강한 기업으로 성장한다.

▶ 협상이론 : 긴박하게 돌아가는 협상 테이블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에 본사와 상의해야 한다면 협상력에서 밀리는 포지션이 된다. 자본시장에서는 '엘리베이터 결정'이라는 용어가 있다. 엘리베이터 타는 동안에 빠르게, 현장에서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중요한 M&A 의사결정의 경우, 경쟁사 대비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시간에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협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면 현장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결정을 할 수 있는 준비와 배포가 있어야 한다.

        

피곤하였지만 나름 잘 마친 오전 미팅이다. 가격 협상을 위해 다른 미팅룸으로 이동하여 거래선 협상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나도 미팅룸에 나타나지 않았고 점심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예의인 샌드위치 정도의 다과도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거래선은 우리가 가격인상을 통보할 것을 알고 우리와 기싸움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소 여유를 지닐 수 있었다. 예측 시나리오에서 충분히 감안되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나리오대로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최대한 여유 있는 모습으로 그들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 협상이론 : 상대방은 다양한 협상 전략, 전술을 사용할 것임을 인지하고 그 상황마다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기싸움도 협상 전략이다. 협박, 굿캅 베드캅(Good Cop/Bad Cop), 로볼/하이볼(Low Ball/High Ball), 니블(Nibble), 스노잡(Snow Job) 등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상대방이 전개할 전술에 대해 대비하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초조해하면 협상에서 불리하다. 그리고 시간에 구애받으면 안 된다. deadline에 몰리게 되면 악수를 둘 수 있다.


사업가가 된다는 것은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모습을 지니거나 최민식, 송강호 못지않은 배우로서의 능력도 겸비해야 한다. 영화에서 종종 보듯이 '협상(協商)'이라는 것은 표정관리부터 디테일한 손끝의 동작까지 아주 미세하게 상대에게 들통난다. 조급 하거나 불안한 표정을 들키는 순간, 협상은 우리에게 불리한 게임으로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기에 유능한 협상가는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 채 상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심안(心眼)을 소유하고 교섭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약 2시간 30분이 경과해서야 거래선 협상단 3명이 나타났다. 구매 총책 프랭크(Frank), 어커운터 매니저 쥴리(Julie), 실무자 패트릭(Patrik)이었다. 이들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고 있는 터라, 우리는 여유로운 모습을 유지한 채 한편으로는 진진한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 예상대로 프랭크는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가서 가격 (안)을 제시하라고 했다. 거친 말투였고 불편함이 역력하게 보였다. 다음 역할은 아마도 쥴리가 협상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쥴리는 거래선 내에서도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매니저였다.  

▶ 협상이론 : 초초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상대방이 짠 심리전술에 말려들어가는 순간, 그 협상은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면 상대방이 흔들어도 끄떡없이 상황을 끌고 갈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다면 협상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끌고 갈 수 있다.


본격 협상 내용은 다음 Part II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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