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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y 19. 2024

미국 대기업과 협상, 그 이론과 현실
: Part II

협상이론의 종합 사례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내용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전편을 먼저 읽어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https://brunch.co.kr/@417061919d91410/79


이 글은 실제로 있었던 사례입니다. 미국 대기업과의 협상에서 철저한 준비, 정보 파악, 시나리오 수립, 순간적 판단, 열린 감각으로 조금의 밀림도 없이 협상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내었고 거래선도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결정을 한 사례입니다. 협상의 이론에서 거론되는 모든 상황들이 집약된 사례이기에 협상이론과 현실에 대해 같이 볼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미국 대기업과 협상하는 각 부분마다, 협상이론을 붙여서 실 상황과 이론을 비교하면서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 검정 글씨 : 실제 협상 사례

 - 푸른 글씨 : 협상이론


[ Part II ]

나는 당초 준비한 시나리오 중에 최고 인상률 가격을 먼저 제시했다. 허지만, 우리의 최종 목표는 대당 5~8% 가격 인상이었다. 협상단 책임자로서 순간적인 판단을 했다. 미팅룸에 2시간 30분 고의적으로 늦게 나타난 이유는 이들도 충분한 가격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고 기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들의 예상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할 경우, 그 순간 호구가 되어 가격 인상 주도권을 뺏기게 되는 상황으로 판단했다.

▶ 협상이론 : 협상에서 유리한 포지션에 있을 경우, 첫 공세를 강하게 하는 것이 좋다. 가격이 핵심이라면 이니셜 가격을 공격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좋다. Anchoring 전략으로 상대방이 나의 목표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말하거나 흘려두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게 내가 기대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를 던져주는 것은 상대방도 그 레벨에서 움직이도록 틀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생각과는 달리, 상대방이 엉뚱한 제안을 하여 협상 자체가 진행이 안되거나 결렬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협상은 결렬될 수도 있지만 결렬은 서로에게 손실이다.


사업은 '목표'와 친해져야 한다. 목표 없는 사업은 있을 수 없고 목표는 항상 150% 정도의 기준으로 책정하는 것이 좋다. 해낼 수 있고 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목표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 마지노선은 5%, 목표 인상률은 8~10%이었지만 25%의 인상률을 나는 먼저 제시했다! 이들은 분명 흥분을 할 것이고 구매 총책 Frank는 악역을 맡아서 서류를 던지고 미팅룸에서 바로 나갈 것이고 쥴리는 프랭크에 이어서 험한 소리를 하고 따라 나갈 것이고 패트릭은 남아서 우리를 달랠 것임을 예상했다.    

·        RP(Resistance Point) : 5% 가격 인상

·        Target Price : 8~10% 인상

·        Initial Price : 25% 인상

·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최고의 대안) : H社로 전환 판매 ( 당시 H社도 Display 가격 인상, 부족한 물량으로 인해 상시 협상할 준비가 된 상태였음 )  

·        정성적 양보: 2개 분기 가격 동결 (향후 2개 분기 연속으로 가격 인상 할 수 있는 상황. 이럴 경우, D社는 2개 분기에 인상될 수 있는 가격 계산을 하여 판단을 하도록 유도. 우리는 향후 2개 분기 가격 인상을 미리 선 반영하여 이익을 확보하고 Display panel 업체와의 협상에서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상황) 

▶ 협상이론 : BATNA는 반드시 있어야 하고 , 없다면 있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나의 RP를 설정하고 상대방의 RP를 파악해야 한다. 상대의 BATNA와 RP를 파악하기 위해 상대방의 얘기를 잘 들어야 하고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 이니셜 가격은 Anchoring 효과를 만들기 위해 공격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단, 나의 입장이 충분히 강하지 못할 때는 이니셜 가격은 높게 하는 것은 역공을 당할 수 있다.


“프랭크, 다음 두 분기 가격은 지금 대비 25% 인상한다. 대신,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최소 2개 분기 동안은 가격 인상 없이, 동결하겠다” 

▶ 협상이론 : 메인 공략 목표는 공격적으로 제시하고 상대방의 RP를 변화시키는 매력적인 제안을 같이하는 것도 좋은 협상 전략이다. 25% 가격 인상은 충격적인 수준이지만 다음 2개 분기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제안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고 시장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흘려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내 제안을 받아들이면 이만큼의 가치가 있다" 혹은 " 내 제안을 수용하지 못해 더 큰 곤란에 처해질 수도 있다", " 시장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등의 얘기로 상대방을 흔들고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당시 상황으로는 Display panel 가격이 분기별로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을 하는 분위기였고 공급 부족 상황은 향후 6개월 내에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시장에서는 예상되었다. 당사는 핸들링하는 Display panel 물량이 세계 최대였기에 Display Panel 구매에서 대만, 중국, 한국의 Vendor들 상대로 구매 파워가 있었고, 당사 자회사 Panel display 물량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였다. 이런 연유로 이번 가격 인상 후에 2개 분기 가격을 동결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었다. D社는 계산을 해야 했다. 1개 분기 가격 인상률에 집착하여 협상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 가격 인상을 수용하고 물량을 먼저 확보 및 두 번째 분기 가격까지 동결을 택할 것인지를…

▶ 협상이론 : 제안에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블러핑이 아니고 실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제안에 대한 근거를 자신 있게, 논리 있게, 확보된 정보로 설명하여 내 제안이 거부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준비가 부족하거나, 시장상황을 넘어서는 블러핑은 반드시 역공을 맞게 된다.       

    

협상에서 일단은 성공이다! 2시간 30분이나 고의적으로 늦게 나타난 이유는 가격인상에 대한 방어책의 하나로서 기싸움을 위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그들의 작전(?)에 말려 예상보다 적은 인상률을 제시했을 경우, 오히려 우리가 호구가 되기 십상이었다. 25%라는 파격적인 가격인상 제시에 프랭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쥴리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감춰지지 않았다.

▶ 협상이론 : 내가 유리한 협상 포지션을 취하고 있을 때는 상대방이 예상하는 수준을 뛰어넘는 제안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상된 수준, 예상된 수순으로 진행을 하는 것은 이미 협상력에서 밀린다는 의미이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제안이 필요할 때도 많다.

 

아주 잠시 수상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프랭크는 예상대로 가격 인상을 통보한다는 서류를 허공에 던져버리고 씩씩거리며 나가버렸다. 쥴리는 당사와의 거래가 중단될 것이라는 악담을 쏟아 내고 뒤따라 나가버렸다. 패트릭은 생각보다 험악한 분위기에 놀란 모습이었고 어정쩡 히 서있다가 따라 나가버렸다. 첫 가격 협상 미팅은 5분도 안되어 끝이 나버렸다. 우리 팀원들도 이들의 뒷모습에 약간 상기된 것도 같았지만 여러 경험을 한 나의 마음은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오히려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거친 반응은 포기나 항복을 의미한다.

저항하지 못하기에 과격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며

대화할 수 없기에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협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미사업하는 이가 아니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승리의 쾌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상기된 거래선 협상단의 태도에 살짝 겁을 먹은 실무자 태우가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른 걸까요? 협상이 결렬되면 어쩌지요?”한다.


“기다려 봐. 카운터협상안을 들고 들어올 테니”


나는 자신 있게 동료를 안심시켰다.

▶ 협상이론 : 협상은 분위기이다. 그 분위기를 잘 만들어가는 사람이 유능한 협상가이다. 긴장 속에서 여유를 찾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협상가가 전문가이다. 그만큼 상황 파악, 준비가 된 것이고 상대방 대비 정보 불균형의 우위에 있는 것이다.


사업가에게 자신감은 진정한 무기다사업은 거래로 이뤄지고, 거래는 상대와의 협상으로 성사되며, 협상은 내 것을 상대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포기시키거나 최선의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짧든 길든 협상 자리에서 눈빛부터 온몸에서 발사되는 자신감은 필수다.


이들이 나가고 1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점점 굳어지는 동료들의 표정과는 달리 나의 마음에선 이겼다! 는 쾌재까지 들리는 듯 나는 미소 짓고 있었다.


결국, 문을 박차고 나간 지 1시간 30분 뒤, 프랭크가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들의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게임은 끝났다. 사업에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은 패배를 인정한 것과 진배없다. 여기서 이겼다는 확신을 지닌 나는 오히려 더 여유 있게 상대를 위로하는 위치로 바뀌게 되었고 상대는 조르기, 아니면 우기기, 아니면 근거 없는 주장하기, 심지어 협박(?)하기 등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 협상이론 : 일단 승기를 잡은 순간부터 더 진중해야 한다. 표정 관리부터 상대방 심성관리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쏟아내는 불편한 얘기들을 즐기듯이 들어주는 마음의 여유도 가져야 한다. 협상에서 내가 이겼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고 상대방이 불편함, 굴욕감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

 

단지 한 가지 말은 마음에 걸렸다. 공급 과잉이 왔을 때 가격 인하는 각오하라는 말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기선은 잡았다고 확신을 했다. 


한참의 넋두리를 쏟아 낸 뒤에 프랭크는 자기의 가격과 조건을 제시했다.


“다니엘, 20% 인상까지 수용하겠다. 향후 2개 분기 가격은 동결이다. 그리고 공급 물량은 확보해줘야 한다.”


프랭크가 제시한 가격은 의외의 수준이었다. 비록 내가 제시한 25%보다는 낮으나, 목표한 가격 8% 인상보다는 10% 이상 높은 수준이었기에 내심 놀랐다. 예상한 프랭크의 제시 가격은 최고 15% 수준으로 보았던 것이었다. 깔끔한 마무리를 보여주기 위해 표정 관리를 하면서 잠시의 시간을 소비한 후, 프랭크의 제안을 수용하고 공급 물량은 보장해 주기로 했다. 

▶ 협상이론 : 상대방의 카운터 제안 내용에 대한 이해를 잘해야 한다. 협상 결렬 ( Walk away)을 위한 제안인지, win-win 협상 결과를 위한 제안인지, 시간을 끌기 위한 제안인지, 선이 굵은 제안인지,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제안인지 등에 대해 빠른 판단을 하고 마무리를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무리가 필요하다. 특히 장기적 거래관계 유지가 필요한 거래선인 경우에는 더더욱 필요하다. 양보가 필요한 경우, 절대 급진적인 양보를 하면 안 된다. 단계별 양보가 중요하고 효율적인, 아름다운 양보는 다음 협상에도 유리한 포지션을 취할 수 있게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진행되어 온 이들과의 가격 협상 중에서 이번이 최대의 쾌거였다. 같이 온 후배와 동료들의 긴장된 표정은 풀어졌고 프랭크와는 찐한 악수와 저녁 식사를 약속하고 미팅을 마무리하였다. 


나는 여기서 거래선의 굵직한 시야와 담대한 의사결정을 경험했다. 공급부족은 생각보다 심각해지는 상황이었기에 이들은 가격을 더 인하하는 것보다 물량 확보를 먼저 선택한 것이다. D가 글로벌로 크게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실지로 그 후 약 3분기 동안 공급이 부족하여 가격보다 물량 확보가 더 어려웠고 우리는 먼저 큰 폭의 가격 인상을 승인한 프랭크에게 공급을 안정적으로 제공했다.


사업에서, 협상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특히 가격 협상에서는 기선, 주도권 확보가 되어야 한다. 을의 위치에서도 주도권을 놓치면 원하는 바를 달성하지 못한다. 협상은 사람 간의 기싸움과 같다. 준비 없는 기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다. 그러나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논리로 준비한 뒤 펼치는 기싸움은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RP, Initial Price, Target price, BATNA, 양보, 보상 등의 협상 요인들이 준비되어야 기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작용하는 본인의 감각도 믿어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열린 감각에 들어오는 느낌, 그 느낌이 가는 대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본 가격 협상 사례가 좋은 예다. 장세를 읽으면서 준비한 시나리오와 찰나의 판단으로 결정한 가격(안)이 상대방의 인식을 자극한 것이다. 상대방 또한 예상치 못한 수준의 가격 인상으로 공급 부족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고 장세 판단과 열린 감각으로 결정을 한 것이다. 결국 거래선과 나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다. 거대한 시선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어야 하고 열린 감각으로 찰나의 판단을 선택한 윈윈(win-wi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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