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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n 04. 2024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_
그들은 나에게 수갑을 채웠다

현지에서의 일상 1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점, 5월 초에 자칭 ‘이태리 털기’ 프로그램을 만들어 뜻 맞는 친구 6명이서 이태리에 왔다. 첫 기착지는 로마, 그 유명한 로마에 다시 왔다. 나는 이미 로마를 10회 이상 다녀왔다. 이태리 법인장 재직 중에 가족과 3회, 지점 방문과 연결하여 모두 10여회 이상 다녀온 곳이다.


많이 다녔구나라고 질문을 할 수 있으나, 로마는 결코 몇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도시가 아니기에 10여 회의 방문도 부족할 수 있을 듯하다. 유적지 한 곳과 그곳의 작품만 감상하더라도 반나절의 시간이 필요하니 최소 50여 곳 유적지만 보려 해도 25여 일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알수록, 이해할수록 로마의 스토리에 빠지게 되니 10여 회의 방문도 턱없이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로마가 매력적임을 아는 듯, 로마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관광하기엔 최적의 시즌이다. 한중일의 아시아 지역, 미캐의 북미지역, 브아칠의 남미지역, 스노핀의 북유럽지역 그리고 뜨거운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모여들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카페, 아이스크림가게, 호텔, 여행사, 택시 등 관광객 특수의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기에 이 특수와 함께하는 특이한 한 분야가 있다. 이 분야는 시즌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보이지만 시즌이 절정에 이르러 관광객이 늘수록 더 바빠진다. 바로 소매치기 분야이다. 이 분야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집시들의 전문 영역이었다. 로마 소매치기는 집시들 라이프와 접목되어 길거리에서 다양한 행태의 전문기술로 시연되면서 이들만의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소매치기의 역사도 제법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집시보다 전문꾼들이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고 활동량도 과거보다 많다. 팀으로 움직이며 수법도 더 정밀해지고 있다. 웬만큼 경계하지 않으면, 사실 웬만큼 경계를 해도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당한다.


여러 번 왔지만, 로마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기대로 이번엔 로마를 구석구석 다니면서 공부하리라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지하철, 트램, 버스, 택시 등 모든 가용한 이동수단을 파악했다. 물론, 소매치기에 대한 사전 대응 훈련(?)도 했다.


첫째 날, 우리는 로마 Termini지하철역으로 나갔고 그곳에서 카타꼼베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하는 지하철을 탔다. 아침이지만 다소 붐볐다. 줄을 서 있었고 지하철을 탑승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리고 타는 복잡한 상황에서 밀리지 말라고 뒤에서 젊은 친구가 등을 떠밀어주었다. 모르는 친구가 등을 떠밀어 도와주는 순간, 직감적으로 소매치기라 생각했으나 문이 닫히고 지하철은 움직였다. 등을 떠밀던 친구는 타지 못하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으로 메는 가방에 지갑을 넣었고 등이 떠밀리는 순간에도 온 신경을 가방에 집중했기에 탑승할 때까지 별 다는 접촉을 느끼지 못했다.


지하철이 움직이는 동안 하차할 역(驛)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메고 있던 가방을 단단히 쥐고 서 있었다. 그런데 마주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이 발 밑에 뭐가 있다고 나에게 손짓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서 있던 곳 밑, 발 옆에 낯익은 지갑이 덜렁 누워있었다. 내 지갑이었다. 그 순간, 당했다는 생각을 했다. 등을 떠미는 순간, 나의 온 신경은 등을 떠미는 뒤의 젊은 남자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같이 타던 옆 사람은 신경을 못 쓴 거였다. 아뿔싸, 이미 늦었지만 대략의 사태 파악이 되었다.


지갑 안에 있던 유로, 달러, 원화만 쏙 빼가고 신용카드와 주민증은 그대로 둔 채 지갑을 열차 안에 떨어뜨려 둔 거였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같이 탑승할 때 옆에 있던 이태리인을 찾으러 다녔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태리에서 근무를 했다고 아는 척을 한 것이 부끄러웠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예행연습까지 주도하였는데 그런 내가 당했으니 더 민망하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여행 첫날, 제대로 신고식을 치렀으니..




이 사건은 가벼운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메인 스토리이다.


그럭저럭 로마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일행은 밀라노로 향했다. 밀라노 시내에 가까운 곳에 있는 부띠크호텔에 여장을 풀었고 쉴 사람은 쉬는 동안 나와 영철이는 밀라노 수로로 유명한 나빌리오로 걸어 나갔다. 이 지역은 밀라노 패션 위크 행사도 하는 등, 매우 분주하고 카페, 펍이 즐비하여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유명지다.


가벼운 차림으로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젊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우리에 가까이 붙어서 쭉 따라왔다. 이들을 인지하는 순간, 매우 불편한 느낌이었다. 10여분 따라온 뒤 이들이 우리 앞을 막아섰다. 그리곤 경찰임을 밝히고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과거 밀라노 근무시절에도 길거리에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 사복 경찰을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었고, 로마에서의 소매치기 사건으로 나와 영철이는 예민해졌다. 그리고 이성은 이들이 가짜 경찰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신분증은 호텔에 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온 상태였기에 신분증 요구에 응할 수도 없었고 가짜 경찰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어갔다. 이들이 나와 영철이의 팔을 잡자, 그것도 뿌리치고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급기야, 이들 중 한 명이 허리춤에 있던 수갑을 꺼내 나의 손목에 채웠다. 나는 크게 저항, 항의하였고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큰소리가 나자 주변에서도 관심 갖기 시작했다. 수갑을 채운 뒤, 이들은 신분증 요구를 계속했고 나는 신분증이 호텔에 있어서 보여줄 수 없다고 응수하고 경찰 배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의 어느 누구도 경찰 배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묵고 있는 호텔이 어디냐고 되물었다. 이때 나의 머리는 움직이고 있었고 호텔을 알려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에게 잡혀있는 동안 호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신분을 보장할 방법으로 근무했던 법인에 전화하여 변호사와 통화하게 해 주었다. 회사 변호사와 통화한 뒤 이들은 수갑을 풀어주었고 가도 좋다는 말을 하고 사라졌다. 나는 다시 회사 변호사와 통화했다. 이들이 경찰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변호사 브로벨리도 이들이 경찰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고 했으며 나의 신분을 확인해 주고 필요하면 자신이 현장에 나오겠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회사 변호사가 현장에 나오겠다는 말을 듣고 수갑을 해제 한 뒤 사라졌으니 석연치 않은 부분이었다.  




과연 이들이 경찰이었을까?

사기범일당이었을까?

호텔로 돌아와 이들에 대해 여기저기 물어본 결과 모두는 한결같이 경찰은 무슨, 사기범이라는 의견이었다. 대단한 놈들이다.


이들은 경찰 행세를 하고 수갑을 들고 다니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어수룩한 관광객을 대상으로 금품 갈취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의 경우, 경험과 구력이 있었기에 만만하게 당하지 않았던 것이 된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경찰이었다면 나와 영철이는 매우 겁이 없는, 경찰을 의심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경찰이든, 사기범이든, 우리의 경험에 의한, 순간 판단에 의한 강단 있는 대응이 아무 일 없이, 상황을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우리들 사는 세상이 빠르게 진화를 하니, 우리 삶 주변의 것들도 빠르게 진화하는 듯하다. 사기는 더 교묘, 대범해지고, 소매치기도 수법이 고단수가 되어 간다. 이런 일들이 여행지에서 잦게 발생하면 의심 지수도, 예민 정도도 높아질 듯하다. 여행은 피곤한 도전이 되는 것이고...


다만,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간단해질 수 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피하지 못할 것이면 그것대로 즐기는 것이 방법이 듯, 이러한 에피소드가 여행의 일부라면 이 또한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이 재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돈을 내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즐기는 방탈출 게임처럼…


이태리가 다 이렇다고 오해는 하지 마시길 당부드린다. 이태리는 꼭 다녀와야 할 나라이고, 역사의 현장이고, 문화의 아이콘이다. 공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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