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여름의 여운
어떤 때엔 미스테리나 추리를, 어떤 때엔 잔잔한 에세이를. 전혀 다른 쟝르의 책과 드라마이지만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도 밋밋함보다는 긴장의 욕구를 모두 경험하고 싶은 나인데 최근에는 정신없이 바빠서인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잔잔한 에세이와 '가족'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읽는다.
우연히 소설가 이정명의 작품_부서진 여름_을 접하게 되었다. 이정명은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으로 알려진 작가로, 최근에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튜브’, ‘당신이 옳다’, ‘아버지에게 갔었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모순’ 등의 작품을 읽었다. 이러한 책들의 연장선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그의 책을 펼쳤다.
이야기는 이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성공한 화가 이한조의 아름다운 전원 생활과 아내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시작된다. 43세 생일을 아내와 함께 준비하며 행복한 순간을 공유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다섯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긴장감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하고, 예기치 못한 이야기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미스터리를 즐기는 나의 감각이 예민해졌고, 여섯 번째 페이지부터는 이 책의 흡입력에 완전히 빨려들었다.
화가로서 절정의 순간을 맞이하고, 행복이 넘치는 순간, 묵묵히 그의 삶을 지탱해준 아내가 있음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던 찰나, 아내가 사라졌다! 그녀는 A4 용지 40쪽 분량의 글 ‘나에 관한 너의 거짓말’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 그 글은 열여덟 살 여고생과 마흔 줄에 접어든 유명 화가의 사적인 관계를 담고 있었다. 조숙한 소녀의 사랑과 자기중심적인 화가의 배신, 그리고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느 날, 해리(아내의 어릴 적 이름)의 언니 지수가 사라지고 경찰의 수색에도 불구하고 5일 후 주검으로 발견된다. 해리는 언니 지수의 죽음의 진실을 알기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고, 과거 사건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실체를 파악해 나간다. 자신이 좋아했던 한조가 사실은 지수를 좋아했고, 한조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언니에게도 원치 않았던 성폭행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니의 죽음은 한조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판단한 해리는 한조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살인자에게 평생을 견뎌도 모자랄 고통을 안길 복수의 방법을 생각한다. 그것은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박탈하는 것이다. 그가 꿈꾼 적조차 없는 성공과 명성, 부와 권위, 안락한 집과 아름다운 아내와 자녀. 마침내 그가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들을 하나씩 빼앗아 가는 것이다. 그가 최고가 된 날, 해리가 왜 그와 결혼했는지 깨닫게 하고 그를 떠난다.
그러나 해리가 알게 된 내용들 또한 정확한 진실은 아니었다. 한조는 이제라도 진실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진실을 드러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조는 진실을 덮기로 결심한다.
인간은 종종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 심리의 본질적인 측면이며, 이러한 선택이 편안함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숨기고 싶은 진실을 외면하거나 덮어두려는 경향이 있으며, 때로는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비밀을 감추기도 한다. 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일까? 진정 인간의 감각이란 사실이 아닌 것인가? 왜 진실은 사실에 근거하지 못하는 것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며 진실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말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인생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초래하거나 결말을 비틀어 놓을 수 있다. 이는 막대한 고통을 초래할 수 있으며, 그 고통이 두려워 진실을 감추고 비밀로 남겨두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비밀은 결코 고립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처럼, 인간은 진실과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두려워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 두려움, 그리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비밀을 감추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감춰진 비밀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더욱 큰 고통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 끝까지 비밀을 감추기 위해 불필요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비밀과 거짓말은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비밀과 거짓말. 어찌 보면 이 둘은 서로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 하다. 비밀이 끝까지 감춰지면 진실이 될까? 비밀이 들통나면 거짓말일수밖에 없을까? 생각해볼 질문이다.
숨기고 싶은 비밀을 드러낼 때, 오히려 고통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숨겨야 할 것들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맞서 싸우면서 의연하게 풀어나가는 것이 어떨까? 진실은 때때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 진실을 직시함으로써 우리는 편안한 자유를 얻게 된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진실은 언제나 승리한다"고 간디는 얘기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행위이지 않을까?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이 과정에서 우리는 단순히 고통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진실을 통해 해방과 내면의 평화를 얻게 된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는 자신의 주인에게 자유를 준다”라고 얘기했다. 이처럼, 진실을 직면하고 감춰진 비밀을 드러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