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의 유언>

추리소설

by 산들강바람

제11장: 거울 속의 범인


1. 유리 제국의 심장부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국회의원 회관의 최상층 사무실. 전직 서장이자 현직 국회 의원인 '그'의 집무실은 사방이 거대한 통유리와 거울로 장식되어 있었다. 반사되는 빛들은 실내를 비현실적으로 밝게 만들었지만, 그 화려함 이면에는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이 감돌았다.


수현은 가슴 안쪽에 20년 전의 '노란 우비 조각'과 비자금 장부가 담긴 USB를 품은 채 홀로 그곳에 섰다. 그녀를 맞이한 것은 정계의 거물이 된 전직 서장의 서늘한 미소였다.


"한 경위, 자네 스승인 차도진이 가르치지 않던가? 형사는 증거를 가지고 경찰서로 가는 거지, 정치인의 집무실로 오는 게 아니라고."


그는 여유롭게 시가 향을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의 시선이 자신의 품 안을 집요하게 쫓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베테랑 수사관의 눈에 비친 그의 여유는, 무너지기 직전의 둑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위태로운 균열과도 같았다.


2. 거울 속의 진실: 조작된 영웅의 초상


"경찰서로 가지 않은 이유는 서장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최 형사 같은 '세탁부'들이 여전히 제 동료라는 이름으로 제 등 뒤에 서 있으니까요."


수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벽면의 대형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화려한 배지를 단 노회 한 정치인과, 진흙탕을 굴러온 초라한 차림의 형사가 극명하게 대비되어 비쳤다.


"이 거울, 참 좋군요. 서장님은 매일 아침 이 거울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20년 전 호수에서 아이를 밀어 넣던 그 손으로 국민의 손을 잡을 때, 양심에 오타가 생기지는 않던가요?"


수현의 도발에 서장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는 품 안에서 노란 우비 조각이 담긴 투명 봉투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김 편집자가 남긴 마지막 오탈자는 바로 이겁니다. 당신이 아들을 위해 모든 걸 덮었다고 믿게 만든 뒤, 실제로는 당신의 구두약이 묻은 이 우비 조각을 증거로 남겨둔 거죠. 당신은 아들을 지킨 게 아니라, 당신의 범죄에 아들을 공범으로 끌어들였을 뿐입니다."


3. 고립무원: 끊어진 무전


그때, 수현의 귓가에 꽂힌 무선 이어폰에서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려왔다. 외부에서 대기 중이던 강민호와의 통신이 차단된 것이다. 동시에 집무실의 육중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 경위, 자네가 간과한 게 하나 있군. 여긴 법정이 아니라 내 왕국이야."


서장이 리모컨을 누르자, 거울 뒤편에서 무장한 보안 요원들과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최 형사의 수하들이자 경찰 내부의 배신자들이었다. 그들은 수현을 반포 위하며 총구를 겨눴다.


수현은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외부 지원은 차단되었고, 내부의 적들은 실탄을 장전했다.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공포 대신 차가운 투지가 서렸다.


4. 함정 속의 함정: 거울의 반사


"서장님, 제가 혼자 이곳에 올 만큼 무모해 보이십니까?"


수현은 자신의 스마트워치를 가볍게 두드렸다. 9장에서 김 편집자가 자신의 시계 뒷면에 남겨진 잉크 낙인을 인지하지 못했듯, 서장 역시 수현이 들어오기 전 집무실 곳곳에 배치한 '거울의 배신'을 눈치채지 못했다.


"자네가 뭘 하든, 여기서 나가는 건 증거 물 뿐이야. 자네는 '우울증으로 인한 극단적 선택'으로 기록되겠지. 스승 차도진처럼 말이야." 서장이 비릿하게 웃으며 명령했다. "처리해."


요원들이 수현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수현은 거울 벽면의 특정 지점을 향해 소형 플래시를 터뜨렸다. 강렬한 섬광이 거울에 반사되어 요원들의 시야를 가렸고, 그 짧은 틈을 타 수현은 서장의 책상 밑으로 몸을 날리며 외쳤다.


"지금이야, 민호 씨! 송출 시작해!"


5. 반사의 역습: 렌즈 뒤의 심판자


"송출 시작해!"


수현의 외침과 동시에 집무실 사방을 메우고 있던 거울들이 기괴하게 일렁였다. 단순히 장식인 줄 알았던 거울 벽면 곳곳의 특수 코팅이 벗겨지며, 그 뒤에 숨겨진 렌즈들이 붉은빛을 내뿜었다. 수현이 미리 포섭한 본청 사이버 수사팀과 강민호가 합작하여 설치한 실시간 스트리밍 장치였다.


"이게 무슨...!" 서장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그의 집무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들이 일제히 켜졌다. 그곳에는 지금 이 현장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있는 뉴스 속보 채널과, 수십만 개의 댓글이 폭주하는 라이브 방송 창이 떠 있었다. 서장이 내뱉은 "자네는 극단적 선택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살벌한 폭언이 이미 전국으로 퍼져나간 직후였다.


"서장님, 당신이 사랑하는 거울은 빛만 반사하는 게 아닙니다. 진실도 반사하죠." 수현은 책상 밑에서 몸을 일으키며 차갑게 읊조렸다.


6. 무너진 유리 제국: 근접 사투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성을 잃은 최 형사의 수하들이 총을 버리고 단검을 뽑아 들며 수현에게 달려들었다. 수현은 베테랑 수사관다운 몸놀림으로 책상 위의 무거운 크리스털 명패를 휘둘러 첫 번째 공격자의 손목을 타격했다.


챙그랑!


거울 벽이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수현은 깨진 유리 조각 하나를 집어 들고, 등 뒤에서 덮쳐오는 요원의 허벅지를 정확히 찔러 제압했다. 그녀의 옷은 이미 유리 파편과 먼지로 엉망이었지만, 눈동자만큼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매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그만해! 다들 멈춰!" 서장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화면 속의 여론은 들불처럼 타오르고 있었고, 건물 아래층에서는 그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한 검찰 특수부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7.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서장은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리볼버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20년 전 강철수 형사가 사용했던, 도진이 증거물로 보관하다 분실 처리되었던 바로 그 총이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계집애 하나 때문에 무너질 것 같아?"


서장의 총구는 수현이 아닌, 자신의 머리를 향했다. 끝까지 죄를 인정하기보다 파멸을 택하려는 그림자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그러나 수현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죽음으로 도망치지 마십시오. 당신이 죽인 건 연주와 강 형사님뿐만이 아닙니다. 당신을 믿고 괴물이 된 당신의 아들, 그리고 평생을 죄책감에 살다 간 내 스승의 영혼까지... 당신은 살아서 그 모든 무게를 견뎌야 합니다."


8. 잉크의 마지막 한 방울: 체포


집무실의 육중한 문이 폭파하듯 열리며 검찰 수사관들과 강민호가 들이닥쳤다. 서장의 손에 들린 총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화려했던 국회의원 배지는 수사관의 손에 의해 비참하게 뜯겨 나갔다.


수현은 바닥에 떨어진 낡은 리볼버를 증거물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거울 속의 수현은 더 이상 스승의 그림자에 가려진 제자가 아니었다. 스스로 빛을 내어 안개를 걷어낸, 온전한 한 명의 '수사관'이었다.


"서장님, 당신의 마지막 페이지는 당신이 쓴 오탈자로 가득하군요. 이제 교정은 법정이 할 겁니다."


수현은 품 안에서 도진의 만년필을 꺼냈다. 잉크는 이제 정말로 바닥이 났지만, 그녀는 빈 펜촉으로 서장의 이름 위에 굵은 선을 그었다. 20년 전 멈췄던 시간이, 비로소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수필] 창을 열어 마주한, 생(生)의 첫 번째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