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진 오후

창밖의 비 내리고

by 산들강바람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릴 때마다, 내 마음도 조용히 울린다.

작은 내 방은 싸늘하다. 이 싸늘함은 단지 온도의 문제가 아니다.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비에 젖은 듯 축축하다.


밥을 지어먹으려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딸깍, 딸깍.

익숙한 소리 뒤에 따라와야 할 불빛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 순간,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불이 꺼진 건 가스레인지였지만,

왠지 내 안의 무언가도 꺼진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는 날.

비는 내리고, 방은 싸늘하고, 불은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저 조용히 앉아 있어도 된다고,

누군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창가에 앉아 비를 바라본다.

빗소리는 생각보다 따뜻하다.

불은 꺼졌지만, 마음은 조금씩 데워진다.

이 싸늘한 오후도 언젠가는

따뜻한 기억이 될 수 있을까.


비를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어릴 적,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꼭 따뜻한 국을 끓여주셨다.

그 국물 속에는 무와 파, 그리고 엄마의 손길이 담겨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 따뜻함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지금은 그 국물보다 더 그리운 건,

그 국을 끓이던 엄마의 뒷모습이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무언가를 고치려는 마음보다,

그저 멈춰 서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삶은 늘 움직이라고 말하지만,

가끔은 멈춰야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비는 여전히 내린다.

창밖의 풍경은 흐릿하지만, 마음은 조금 선명해진다.

불이 꺼진 오후,

나는 조용히 나를 다시 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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