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산 꼭대기에서부터 눈더미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by 윤수현



1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창 너머로 미처 따라오지 못하는 설경이 군데군데 잔설을 품고는 메말라 있다. 몇 번 왔던 길인데도 남편은 교차로에서 길을 잃었다. 15도 각도로 뒤틀려 있는 작은 갈래길들 사이에서 남편은 15도씩 계속 헤매고 있다.

오른쪽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수는 거실 피아노 위에 걸려 있는 액자를 생각해 냈다. ' 正心' 퍽 잘생긴 먹 글씨다. 온 누리가 묵화의 향기로 뒤덮인 날 완성된 글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뚫린 가슴을 채우지 못해 모두들 허둥거리고 있을 무렵, 수는 결혼하지 않고 아버지 모시고 살 거라고 거짓 아닌 거짓말을 했었다. 그 어린애 말을 그대로 믿으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핑곗거리 찾기에도 미련스러워질 때쯤 결혼하겠다 말씀드리니 몹시도 서운해하셨다. 그날 이후로 아버진 아무 말씀도 없이 먹을 가셨다. 온 집안에 묵향이 진동을 하고 안방이 화선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인 어느 날, 아버지는 죽음처럼 깊은 잠에 빠지셨다.

'正心' 아버지의 결혼 선물이다. 아버지의 혼이 담긴 묵향이 아직도 살아서 그윽한 향을 풍기고 있다.








아버지를 모시러 가는 수의 마음은 착잡하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고, 양미간은 한껏 찌푸려져 달라붙을 지경이다. 아버지가 남동생 가까이로 가시기로 결정했을 때 수는 아주 잠깐 홀가분함을 느꼈었다. 오랜 짐을 벗어 버릴 수 있다는 해방감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모셔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는 남편 때문에 수도 결국엔 아버지를 설득했었지만 끝내 당신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셨다. 아버지에게 딸은 출가외인인 것이다. 남동생이 반강제적으로 집을 전세 놓기로 결정했을 때도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말씀을 못하셨다. 다른 자식들에게 면목이 없기도 하셨겠지만 당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며,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자동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창밖은 이미 진한 어둠이 내려 안고 있었다. 결혼하고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수의 집에 오셨던 아버지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도 손님처럼 어색해하셨다. 수는 서둘러 굴비를 노릇하게 굽고, 시금치를 소금물에 살짝 데쳐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쳐내고, 무나물을 적당히 살캉하게 볶았다. 불고기는 부드럽고 짜지 않게 간 맞추고, 미역국은 심심하게 끓여내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올려서 아버지가 드실 이른 저녁상을 준비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다 드셨다. 아버지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셨다. 기력이 좋으실 때는 우리가 가면 손수 음식을 해 주셨다. 우유를 넣어 부드럽게 입 안에서 살살 녹는 호박전을 수는 아주 좋아했다. 집에 와서 아무리 우유를 많이 넣고 해 보아도 그 맛이 아니라서 팔자신가 보다 했었다.


내려가면 에미가 이렇게 차려 주겠지?

아버지는 모과차로 입가심을 하시면서 혼자 말씀을 하셨다. 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밤새 한 잠도 못 주무시는 아버지를 수는 안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일찍 아버지를 모시러 온 남동생의 차에 수는 아끼는 원목 흔들의자를 실었다. 아버지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리고 차에 오르셨다. 수는 아끼는 체크무늬 담요를 펼쳐 아버지 무릎을 감싸서 덮어드렸다. 수는 아버지의 메마른 손등을 천천히 쓰다듬고는 문을 닫았다. 시동이 걸려 있던 차는 오래지 않아 출발했다. 수는 마침내 차 뒤꽁무니마저 사라지고도 한참을, 길 끝 한 점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서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수에게서 떠나가셨다.





2





나는 눈 속에 갇혀있다.

며칠 째 소리 없이 무섭게 내리던 눈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조차 없애버린 채 그쳐 버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에 지친 소대원들이 눈을 치우고 있다. 그들에게서는 이미 어떠한 행위에서 의미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형태도 전열도 남아있지 않은 진지를 만드느라 영혼 없는 삽질들을 해댄다. 희미하게 굴곡진 기억을 더듬어 판다. 오래지 않아 푸르뎅뎅한 얼굴들이 눈 속에서 떠오른다. 형태가 남아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팔 한 짝이 굴러다닌다. 눈 속에 처박혀 있는 시체들이 아군인지 적군인지는 이미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어서 빨리 이 증오스러운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름도 없는 비참한 죽음들을 마주하면서도 이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단지, 그들의 눈에서는 광기가 번뜩일 뿐이다. 소대원들에게 악을 쓴다. 핏기 없는 영혼들이 삽질을 해댄다. 언제 또 적들이 밀려올지 알 수가 없다. 개미떼 같다. 끝도 없이 눈앞으로 달려든다.


이 고지는 서울로 통하는 국군의 주요 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다.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싸워야 하는 이유다. 아니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죽기 싫어 죽여야 한다. 불개미 떼처럼 달려드는 놈들을 죽여야 하는 이유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투개미들이 이곳에 몰려와 있는 것만 같다. 여기가 지옥이다. 우리들에게 이미 싸워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살기 위해서 죽기 싫어서 놈들을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있다. 공포가 우리를 미치게 한다. 빨리 최대한 몸을 숨길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놈들이 몰려 올 차례이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야 했다. 오일이면 끝 날 거라던 전투는 이미 십 일을 넘기고 있었다. 지옥이다. 더 이상 보탤 수 없을 만큼의 검붉은 어둠이 온 고지를 내려 누르고 있다. 긴장으로 온몸의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가고, 그와 반대로 온몸의 신경은 꼿꼿하게 날을 세운다. 차가운 냉기가 흐른다. 순간, 밑에서부터 밀고 올라온 낯선 듯 익숙한 얼굴이 우리를 마주 보고 있다. 타 당 탕, 한꺼번에 터진 총소리가 날 선 고지에 울려 퍼진다.




3





일본으로 떠난 형의 죽음이 전해진 건, 형을 위해 백일기도를 떠난 엄마가 폭설에 갇혀 집에 돌아오지 못한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온 세상이 눈 속에 갇혀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날들이 계속되던 그날, 길도 없는 눈 속을 뚫고 우편배달부는 형의 죽음을 전했었다.


나는 툇마루 끝에 쪼그리고 앉아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정처럼 맑은 물방울들을 넋을 놓고 세어보고 있었다. 전보를 받은 건 정확히 백 하고도 넷을 셌을 때였다. 갑자기 눈 세상의 끝에서 나타난 그를 보고 놀라기도 전에 그는 내게 건네주었다. 형의 죽음을. 내 손 끝에서 떨어져 나간 전보는 새하얀 눈 속에 처박혔다. '빨간 죽음'은 새하얀 눈 속에서 푸드덕거렸다. 하지만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속 날개 짓을 해댔다. 가녀린 어깨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날개 짓을 하다가 잠시 멈추었다. 나는 가장 반짝이면서 가장 깨끗한 장독대 위의 눈을 두 손으로 떠서 그 위에 덮었다. 나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또 한참을 지켜보았다. 다리가 견딜 수 없이 절여 왔다. 더 이상 '빨간 죽음'의 움직임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살며시 '빨간 죽음'의 윗부분을 헤쳐 보았다. 파르르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빨간 죽음'이 울고 있었다. 눈물로 인해 붉은 색깔이 연하게 번져 있었다. 점점 더 연하게 번져 가고 있었다. 다시 날개 짓을 하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으로 살포시 '빨간 죽음'을 손바닥 안에 감싸 안고 헛간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털신 안으로 하얀 눈들이 자꾸만 들어와서 거추장스러웠지만 틈틈이 조막손이 눈길을 내어 놓은 덕에 별 어려움 없이 헛간에 다다를 수 있었다. 형이 일본으로 떠난 후, 어머니의 냉기를 피해 숨어들곤 하는 곳이다. '빨간 죽음'은 얌전히 손바닥 안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있었다. '빨간 죽음'을 비밀 공간의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나무판자를 덧댄 곳에 우연히 작은 공간을 발견한 후론, 그곳에 나만의 비밀스러움이 더해지고 있었다.








일본 유학을 그토록 원한 건 형이 아닌 나였었다. 나의 우상이었던 형은 정작 사관학교에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간직한 든든한 체격과 조각처럼 수려한 얼굴, 믿음직스러운 됨됨이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기에 충분했다. 심약하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내게, 형은 아버지이고 친구이고 신과 같은 존재였다.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게 시작된 엄마의 알 수 없는 모멸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슬며시 형의 방으로 찾아들었다. 그의 냄새가 좋았다. 그가 싱긋 웃으며 나를 반기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랐던 슬픔이 서서히 사라짐을 느꼈다.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그의 등에 기대고 앉아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강인하고, 믿음직스럽고, 신비스러운 힘을 내게로 충전하곤 했다. 어머니의 형에 대한 집착은 나날이 병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형을 대하는 그녀의 애정은 아들이 아닌 사랑하는 이를 향한 것인 듯 착각을 일으킬 때도 종종 있었다. 결국, 형은 도망치듯 일본으로 떠나고 말았다. 내게는 원하는 기회를 결단코 줄 생각이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엔 형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악을 썼었다. 내가 절절하게 가고 싶어 했던 그곳으로,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가장 사랑하는 형을 내게서 떠나보내고 마는 그녀의 모짐에 거품을 물며 악을 써댔다. 당신이 내 엄마이긴 한 거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나는 네가 싫다. 니 아비를 꼭 빼닮았어. 죽기는 왜 죽어. 계집질에 신명이 났을 텐데.


헛간으로 달려간 나는 무조건 구석으로 찾아들었다. 한쪽 구석에 높다랗게 쌓아놓은 볏짚을 헤치며 가장 모서리 진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다행히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손끝에 온 힘을 모아서 그중 허술한 곳의 볏 집을 파내기 시작했다. 구석 쪽은 차곡차곡 쌓이지 않아 단단함이 덜했다. 들어앉을 정도의 공간이 생겼다. 엉덩이 쪽부터 밀어 넣고, 바깥의 풍경이 잘라져서 스며드는 벽 쪽을 보고 쪼그리고 앉았다. 생각보다 아늑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졸음이 밀려왔다. 무릎을 양팔로 감싸고 얼굴을 묻었다.


활짝 핀 목련 꽃잎이 하늘하늘 날린다. 온 세상이 날린다. 목련 꽃보다 더 활짝 핀 아름다운 어머니가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아버지의 품에 안겨 춤을 추고 있다. 그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사랑에 빠져 있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는 그녀는 가끔 행복에 겨워 아버지를 올려다본다. 그녀의 복숭아빛 뺨 위로 목련 꽃잎이 내려앉는다. 사랑스러운 그녀는 웃고 있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도 빙글빙글 돌며 그들의 행복에 취해있다. 달큼함이 담뿍 담겨 갈증을 느끼게 하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점점 울음소리로 바뀌어 간다. 순간, 그녀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러댄다. 하얀 목련 꽃잎이 온 세상을 향해 흩날리고 있다. 온 세상을 덮을 듯 흩날리던 목련 꽃잎이 서서히 땅 위로 잦아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우람한 밑둥치가 드러나고 안개가 걷히듯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세월 그 자리의 주인이었던 듯 당당하고 거만스럽다. 쭉 뻗은 우람한 둥치를 따라 굵은 가지들이 자유로이 한껏 뻗어 있다. 순간, 저게 뭘까? 우람한 줄기와 쌍둥이처럼 또 하나의 줄기가 뒤 쪽으로 평행선을 그리며 뻗어있다. 수줍은 듯 줄기 뒤 쪽으로 숨었다 나오기가 장난스럽다. 신기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까이 다가선다. 아악,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이 웃고 있다. 굵은 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면서 웃고 있다.

소스라쳐 깨어보니 검은 어둠이 꽉 차 있다. 온몸의 땀이 서서히 식으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엄마는 그로부터 삼일 후에 눈이 녹아 말갛게 드러난 길을 따라 집에 왔다. 형을 위해 백일기도를 끝내고 돌아온 엄마의 얼굴엔 묘한 달뜸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웃음기 어린 두 눈엔 묘한 흥분도 서려 있었다. 꿈에서 아버지에게 안겨 미소 짓던 그 얼굴이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어머니는 형한테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버지의 배신, 죽음으로 인한 두 번째 배신으로 엄마의 영혼은 달빛에 빛나는 푸르른 칼날처럼 위태롭게 보였다.


우편배달부가 다시 왔다. 내 머릿속은 암흑으로 가득 찼다. 희망의 기운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슴은 절망으로 오그라들었고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온갖 뼈마디는 이미 힘을 잃고 있었다.


형의 시신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왜 그곳에 갔을까. 몇십 년만의 폭설이 퍼부어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거부하는 그 설산을 그는 왜 굳이 찾아갔을까. 그리곤 쏟아져 내리는 눈더미들과 함께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나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엄마를 둘러싼 검은 어둠은 엄마가 거부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함께 그녀의 눈동자 뒤편으로 숨어 그녀의 검은 방에 갇혀 버렸다.





4





전주엘 다녀왔다.

그녀는 아프다. 암세포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그녀에게서 얼마 전에 연락이 왔을 때, 그녀에 대한 증오가 미움이 아니란 걸 알고는 절망했었다. 외로움에도 이제는 이력이 나서 견딜만하지만, 꽤 긴 시간 그녀에 대한 증오로 버티는 날들이 있었다.

그녀는 누워 있다. 일인용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만이 그녀가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혼수상태와도 같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흐느끼듯 엷은 숨소리가 잠깐 스쳤다.









모두가 전쟁을 멈추고 싶어 했던 그 시기, 열두 차례나 지옥을 왔다 갔다 했던 그 고지에서 살아남았다. 모두가 악마가 되어가고 있을 때도 그녀만을 생각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 꼭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의 얼굴을 찾을 수가 없었다.


푸른색으로 덧칠해져서 낯 선 살짝 열려있는 철문을 밀었을 때, 쨍하며 손에서 미끄러지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푸른 철문 안쪽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나의 첫사랑이자 나의 아내였던 그녀는 거기에 없었다. 내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였던 그녀는 거기 없었다. 지옥에서조차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랐던 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그들은 허둥거렸다. 그녀는 선채로 무너져 내렸다. 살아 있는 줄 몰랐다고 악을 썼다. 나의 생존을 확인하는 그녀의 풀어진 눈동자가 머문 곳에는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가 넋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천천히 그녀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다. 나는 신이 이 순간에 내게 주신 관대하심의 힘을 빌려 그녀를 짝사랑했던 친구에게 주먹을 날렸다. 나뒹구는 몸뚱이를 향해 발길질도 했다. 그녀의 뒤에 숨어 있던 작은 여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푸른 철문을 조용히 닫고 나왔다.








그녀는 아직도 자고 있다. 내게도 잠은 이렇게 소리 없이 기어들곤 했었다. 때론 차라리 휴식과도 같은 이런 잠이 고맙기도 했었다. 그녀가 텅 빈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줄곧 보고 있었다는 듯 지친 표정이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조차도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천천히 다가가 귀를 가까이 댔다. 등 뒤에서 병실문 닫히는 소리가 무겁게 들렸다.


그녀에게 다녀온 후 며칠을 죽음처럼 깊은 잠을 잤다. 먹고 싶지 않아도 시간이 되었으니 먹어야 하고, 잠이 오지 않아도 시간이 되었으니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의미 없는 긴 날들이 이어졌다. 그 아이의 전화를 받은 건 그로부터 한 달을 넘기는 어느 날이었다.


ㅇㅇㅇ씨 계신가요?

접니다만.

저는 ㅇㅇㅇ씨 딸입니다. 시간 되시면 뵀으면 하는데요...


세련된 중년의 여인이 마주한다. 찻집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크림색 정장 차림의 그녀 덕분에 우중충한 찻집에서 우리 자리만 조명을 받은 듯 환했다. 깊은 눈매가 낯설지가 않다. 짧은 시간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만났던 적은 없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뱃속의 아이 때문에 조급했을까. 성급한 거짓말을 믿어버린 것이. 명치 쪽이 아파왔다. 휘청거리는 발걸음에 쓰러질 것 같다. 어딘가에 잠시만이라도 앉고 싶다. 미안하다고 보고 싶었다고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의 힘겹던 숨결이 귓속에서 윙윙거렸다.





5





아이들이 다녀갔다.

이곳 요양원으로 온 지도 벌써 한 달을 넘기고 있다. 감옥이다. 같은 방을 쓰는 이들은 총 5명이다. 밖으로 낮은 야산이 내다보이는 창문 옆으로 내 침대가 있고, 발 밑 쪽으로 가로로 놓인 침대에는 젊은 시절에 건달이었던 김 씨가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었다. 내 침대 옆쪽으로 두 개의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바로 옆 장 씨는 어찌나 말이 많은지 두통에 시달릴 지경이다. 그 옆의 또 다른 김 씨는 반면 지나치게 말이 없다. 그는 나처럼 누워만 있다. 건달 김 씨 아래로 놓인 침대 주인 차 씨는, 건달 김 씨에게 아양 떨기에 바쁘다. 오늘도 일 층 로비에서 분위기 잡는지 침대들은 비어 있다. ㅇㅇ요양원 삼백사 호실 여기도 작은 사회다.


아들은 밤낮으로 전화를 해도 통화를 할 수가 없다. 불쑥 찾아온 어느 날, 아버지 건강 때문에 공기 좋은 곳으로 모신다고 했었다. 오늘도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도 바쁠 것이다. 이곳으로 온 이후로 난 한 번도 삼백사 호실을 나가지 않았다. 요양원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병풍처럼 낮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 쪽으로는 정리되지 않은 규칙적이지 않은 논들이 인적 없이 펼쳐져 있다. 그 고지처럼 황량하다. 밤마다 놈들이 몰려온다.


오전 7시 30분 아침 식사가 나왔다. 윤기 없는 흰 쌀 밥에 멀건 김칫국, 콩나물 무침, 어묵 조림은 힘이 없다. 잠깐 숟가락을 김치 국에 담가본다. 김치 국이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국그릇에 밥을 만다. 콩나물 무침도 만다. 어묵 조림도 만다. 물을 조금 마셔 입가심을 한다. 오늘도 도우미 아줌마는 눈치를 못 챘다. 식판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고 착하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아이처럼 다룬다.


내 몸은 하루하루 더 가벼워지고 있다. 아이들이 왔을 땐, 다행히도 몸 상태가 최고였다. 공기가 좋아서 아버지 건강이 좋아졌다고 다들 만족했었다. 번호 3번이 붙어 있는 사물함에는 큰 아이가 가져온 매실 진액이 있을 터였다.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싶다. 침대 머리맡에 붙어있는 호출 버튼을 누를까 하다가 그만둔다. 창밖을 내다본다. 이름 모를 새가 날아갔다.


나는 어디서부터 길을 잘 못 든 것일까. 내가 가고자 했던 그 길로 갔으면 모든 것들이 달라졌을까. 그랬을까. 엄마로부터 도망치듯 군복을 입지 않았다면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까. 몸에도 영혼에도 맞지 않는 군복을 입고 삐거덕거리던 시절, 군수 물자를 빼돌리는 협잡꾼들과 타협을 했었다면 모든 것들이 달라졌을까. 그들의 회유를 거절하고 계속되는 그들의 최후통첩을 묵살했을 때 내게 돌아온 것은, 그들의 따가운 눈총과 함께 모든 상황은 반대로 내게 불리하게 짜여 있었다. 결국엔 진급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딱 한 번 그가 찾아왔었다. 그리곤 며칠 뒤에 TV 뉴스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국방장관이 되어 보도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도덕적이고 청렴하게 포장된 채, 나라를 구한 영웅이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은 언제나 나와는 정반대에 있었다. 창밖을 본다. 하늘은 여전히 말이 없다. 표정은 조금은 달라져 보인다.


저녁 5시. 식사가 나왔다. 하얀색 플라스틱 식기의 뚜껑을 하나하나 열어서 한쪽으로 포개 놓았다. 윤기 없는 흰 쌀 밥에 멀건 김치 국, 콩나물 무침, 찰기라고는 없어 나풀대는 어묵 조림. 나는 또 하나의 의식을 치렀다. 국그릇에 흰 쌀 밥과 콩나물 무침과 어묵 조림을 만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 컵을 갖다 대고 입술만 살짝 축인다. 나의 몸은 더욱 가벼워졌다.





6





임실 호국원. 아버지는 왜 아무 연고도 없는 이 먼 곳을 고집하셨을까. 수는 엄마를 생각했다. 삼십 이년 만에 아버지 옆으로 합장을 했건만 엄마는 이승이 아닌 곳에서조차도, 아버지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모두가 외롭기만 하다. 몹쓸 고독이다.


아버지는 당신 시대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과도 불화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의 헤게모니에 그 누구도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철저하게 당신만의 왕국을 세우셨다. 아버지가 당신의 왕국을 견고히 세우면 세울수록 고독의 깊이는 더해갔다. 아버지는 언뜻 보면 고독을 즐기는 듯 보였지만 끊임없이 고독과 사투를 벌이고 계셨고, 언젠가는 누군가가 당신의 성을 허물어 주기를 치열하게 기다리신 것은 아닐까 하고 수는 아주 잠깐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관측 이래 최대의 폭설이다. 눈은 계속 퍼부어댔다. 온 나라가 눈 속에 갇혀 있다. 눈이 그치기를 기다리는 인파로 호국원 대합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TV를 가득 채운 거대한 설산을 배경으로 아버지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미 산속으로 반쯤 숨어버린 아버지 위로 산꼭대기에서부터 눈더미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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