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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3. 강의 진도보다 조금 더 중요한 것

20대 초보 강사의 생생한 인사이트

by 시도




노인복지관에서의 첫 강의를 마친 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고민의 토픽은 바로 '진도'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가르쳐본 건 과외와 학원 강사 일을 할 때였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정해진 진도에 따라 치고 나가야 하고, 숙제도 내 줘야 하고, 숙제를 안 해오거나 집중을 하지 않으면 진지하게 한 마디 해야 했다.



이곳에서 동영상 어플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전체 강의기간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어플 사용 방법을 강의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꽤 꼼꼼하게 짰다. 강의 한 타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까지 다 정해두었다. 만약 내가 강의안을 20장 분량 정도로 만들었다고 친다면, 나는 적어도 15장 이상은 그 날 마무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분들이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만큼 유용한 무언가를 알차게 전달드려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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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내게 진도를 빠르게 나가야 한다고 채찍질하지 않았고, 그저 이건 내 성격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인구가 워낙 적어서 버스 노선이 한정되어 있기에, 걸어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를 걸어오시는 분들도 계셨다. 20대인 나에게도 버거운 더운 날씨에 걸어서 와 주시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수업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의 내가 간과한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중고등학생과 시니어 분들은 연령대만 다른 것이 아니라, 수업을 듣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이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수업에 적용해야 할지를 처음에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중고등학생들은 매일 꾸준히 학습하며 배운 내용을 잊지 않고 학교 시험에서 점수를 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내 수업에 들어오셨던) 시니어 분들은? 시험을 보고 점수를 내야 하는 분들이 아니라, 배움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급하게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는 배운 내용을 충분히 활용해보고, 이 배움 자체에서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끼시도록 진행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었다.










하루는 수업에서 아주 재미있는 주제로 수강생 분들이 담소를 나누시기 시작했다. 나도 담소를 나누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또 '진도병'이 스물스물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컷 편집까지는 공부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지금 생각해보면 5분에서 10분 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부분인데도, 그 때는 이게 나름 큰 고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을 안다.

내가 정해 놓은 강의 진도보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수강생들의 '마음'이다.



만약 내 수강생 분들께서 빠르게 결과물을 내기 위해 이 수업을 들으시는 것이라면, 내가 처음 생각한대로 진도에 맞춰 착착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답에 가깝다.



하지만 시간을 좀 더 가치있고 즐겁게 쓰고 싶으셔서 이 수업을 들으시는 거라면, 진도에 너무 매달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이 어플을 즐겁게 공부하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맞았다. 강의 한 달 차쯤 지난 시점에서 이 생각을 바로 강의에 적용했다. 실습용 동영상도 더 재밌는 것으로 바꾸고, 수강생 분들이 관심 있어하실 만한 시즈널 이슈에 대한 실습을 다시 기획했다. 가족 분들 또는 지인 분들과 이 배움의 결과를 나누며 2배로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게, 결과물을 메신저로 공유하는 것까지 수업에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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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 분들이 밴드에 업로드하신 실습 결과물








이렇게 수강생 분들과 직접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강의 방향성에 대한 인사이트를 많이 얻었다. 그리고 이 인사이트는 꼭 어르신 분들께만 적용 가능한 것이 아니라 강사 일을 하면서 어디에든 녹여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직도 정말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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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으로 참여하셨던 수강생분께서 주신 질문과 답변




처음 시작했을 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던 초보 강사였음에도, 노인복지관 수강생 분들은 항상 호의적으로 내 수업을 들어주셨다. 나 역시 나의 첫 수강생 분들께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다. 약 6개월 정도 노인복지관에서 강의를 진행했고 아직도 그 때 찍었던 사진과 기록들은 여전히 삭제하지 않고 보관 중이다. 지금은 또다른 강의처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될 때마다 그 때의 기록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나의 첫 강사 생활이 시작된 노인복지관에서의 강의 경험은

나에게 또다른 강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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