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생활의 시작
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스무 살 이후 대학을 다니고, 직장에 다니다 퇴사하기 전까지 7년의 시간 동안 나는 수도권에서 쭉 생활했다.
오랜만에 들렀다가 다시 떠날 곳이 아니라 적어도 몇 개월 이상 다시 이곳에서 지낼 생각을 하니, 가뭄에 콩 나듯 들렀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돌아왔구나,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이 곳으로. 어린 시절 이런저런 꿈을 가졌던 내 고향으로.
본가에 있었던 내 방은 없어진 지 오래였지만 다행히 남는 방이 하나 있어 그 방에서 생활했다.
곧 떠날 거라고 생각하니 내 방은 굳이 없어도 되겠다 싶었다. 이 곳에 길어봤자 몇 개월 지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짐을 다 풀기도 귀찮았다. 심지어 부모님께서 곧 인근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려고 준비 중이셨기에, 그 안에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휴가를 받아서 잠깐 본가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전에 했던 직무와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서 퇴사를 했는데, 내가 지금까지 '일'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 거쳐본 건 '취준'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과정 뿐이었다. 그렇기에 마치 관성처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이력서부터 한 줄씩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난 이력서를 쓰고 다른 회사에 지원하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다행히 어학 성적은 아직 만료되지 않았고, 기한이 없는 자격증들도 든든하게 내 이력서를 지켜주었다.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를 새롭게 써야한다는 건 좀 막막하긴 했지만, 그래도 퇴사 후 열심히 운동하고 건강을 챙기며 '취준'을 하니 좀 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은 열심히 입사를 준비하고, 틈틈이 운동하며, 나름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여느 때와 같았던 하루에, 나는 집에서 15분 거리 카페에서 또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거의 루틴처럼 자기소개서를 쓰곤 했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읽고 있던 입사 공고 속 직무 소개는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내가 평소 관심을 갖던 분야이긴 했지만, 이 날은 왠지 '이것과는 살짝 다른 일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들었다. 아예 여러 일들을 해보는 것도 재밌겠는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기에, 살면서 한 번도 도전해본 적 없는 '프리랜서'라는 업무의 형태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퇴사 후에 꼭 해보기로 다짐했던 일들을 잠시 잊고 살았는데, 한 번 다른 생각으로 빠지니 퇴사 후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줄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쯤은, 1년 정도는 다른 길로 가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 평범하게 취업준비를 하고, 평범하게 입사해 평범하게 회사를 다녔던 시간을 떠올리니, 딱 1년 정도는 내 맘대로 살아봐도 될 것 같았다. 내 평생 중에 이 시간 조금 내 맘대로 쓴다고 큰일날까, 싶었다.
그 길로 자기소개서를 쓰던 사이트를 닫고 내가 관심 있었던 일에 대한 키워드를 포털에 열심히 검색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기회의 문도,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