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건넛마을에서 오신 어머니

by 송화

온통 노란빛, 붉은빛 나뭇잎으로 물들어진

마을 입구 커다란 느티나무 앞으로

7남매와 아버지, 옥단 이모는 마중을 나갔다.

건넛마을 분이 오신다기에 남매들은

아침부터 집 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했다.

첫째 만철이 오빠와 다섯째 진철이, 여섯째 경철이는 마루와 방을 쓸고 닦고,

둘째 오빠 원철이와 넷째 수철이는 화장실 청소를 했다.

푸세식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깨끗하게 보이기가 힘들기도 하고,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왔다.


”원철이 햄아, 내 자꾸 토할 것 같다.

잠깐만 갔다 올게. “


꾀돌이 수철이의 꾀를 이미 눈치챈 원철이 오빠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수철이 니, 눈깔사탕 안 먹을 거제?

햄 혼자 청소 다 하고,

햄 혼자 사탕 다 먹어도 되제? “


”알았다, 햄아... 진짜 사탕 가지고 있는 거 맞제?

거짓말이면 내 인제 햄 안 볼 거다. 알제? “


”짜슥이 속고만 살았나? 퍼뜩해라.

오실 시간 다 돼 간다. “


정란은 옥단 이모와 부엌에서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닦고,

제법 쌀쌀한 날씨 탓에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 오시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어머니라고 해야 하나... ‘


정란의 손과 머리는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대충 정리한 부엌을 나온 옥단 이모는

물그릇에 물을 떠서 동쪽으로 한 번,

서쪽으로 한 번 절을 하고

손에는 기다란 종이를 들고 요상한 주문을 외웠다.

정란은 옥단 이모가 무당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다가도

한 번씩 무당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이모를 볼 때면 어색하고 때론 무섭기도 했다.


”이모는 그런 거 하면 안 무서워예? “


”무서울 게 뭐가 있노? “


”귀신말입니더. 마을 사람들 말로는

이모는 귀신을 본다카든데, 안 무섭냐고예. “


”야가 지금 무슨 말 하노?

무당보고 귀신 무서워하냐는 말은 또 첨 들어보네.

하하하하 아이고 정란아. 덕분에 웃는다. “


그때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수철이의 목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아!!! 햄아, 내한테 거짓말 안 한다메!

내 그럴 줄 알았다.

눈깔사탕 없으면서 왜 있다고 거짓말 치는데!!! “


”야, 니 안 그러면 농땡이 부릴 거잖아,

내가 니 모르나? 하루 이틀이가? “


”내 앞으로 햄 말 절대로 안 들을 꺼다!

아버지한테 다 이를 거다. “


눈깔사탕이 없는 원철이 오빠에게 속아버리고

열심히 청소를 마친 수철이는 씩씩거리며

방에 계신 아버지에게 갔다.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어 들어가려다 멈칫한 수철이는 다시 문을 닫아 돌아 나왔다.

방에 계신 아버지가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고,

신문지로 곱게 싸서 정리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인자 오실 시간 된 것 같은데,

우리 다 같이 마을 입구에 마중 나가 보는 건 어떻습니꺼? “


옥단 이모의 이야기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전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나. 다 같이 나가 보자. “


정란은 몇 벌 없지만,

가진 옷 중에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막내도 깨끗한 옷을 입히고 세수를 시켰다.

그리고 천 포대기에 감싸 등에 업었다.

모두 같이 냇가를 지나 바로 나오는 마을 입구 느티나무 앞으로 갔다.


”어? 저~~ 기 저분 아니십니꺼?

저기 흰색 옷 입으신 분 맞는 것 같은데... “


이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바라보니

하얀 치마를 곱게 입으시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 넘긴,

키는 조금 작은 분이 가방 하나를 손에 들고 걸어오고 계셨다.

정란은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하여

괜히 등에서 잠들어 있는 막내의 엉덩이를 토닥이기 시작했다.

이모는 아버지에게 핀잔을 주었다.


”정승처럼 가만히 서 계시지 말고 가까이 가셔서 가방이라도 좀 들어드리고 하이소. “


아버지는 우물쭈물하다

그분이 느티나무 근처까지 다가온 뒤에야

앞으로 다가가서 가방을 들어드렸다.

그분은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미소를 지으시며 가방을 건네시고는

손에 고이 가지고 오신 눈깔사탕 6개를

막내를 제외한 6 남매에게 펼쳐 보이셨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그분 곁으로 다가가

사탕을 받고 입에 넣어 오물오물 빨아먹으며 행복해했다.


정란에게 다가온 그분은

막내를 등에 업은 정란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하셨다.


”니가 정란이제?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아이고, 애가 애를 업었네.

이제 아줌마한테 동생 맡기면 된다.

고생 많았다. 그동안. “


그분은 정란의 상체에 묶어진 포대기를 풀어

혼자서 막내를 등 뒤로 업으려고 하다

막내를 손에서 놓칠까 불안해

옥단 이모에게 막내를 맡겨놓고 등을 내미셨다.

이모는 막내를 그분의 등에 올려두고 포대기를 감싸서 묶어주셨다.

아이를 업어본 적이 없는 그분은 손은 서툴지만,

따뜻한 마음만은 확실하였다.

그래서인지 예민한 막내는

그분의 등에서도 포근포근 잠을 잘도 잤다.


”건넛마을에서부터 걸어오신다고 욕보셨는데

오시자마자 애를 업으시고 힘들어서 우짭니꺼... “


이모는 그분이 힘드셔서 내일이라도 도망갈까 봐 걱정되었다.


”힘들긴요.. 이래 순한데요.

보이소, 애기가 등을 안 가립니더,

저하고 애들하고 앞으로 잘 지내봐야지요.

안 그렇습니꺼, 만철이 아버지? “


당황스러운 아버지는 대답 대신

사탕을 입에 물고 있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셨다.


”느그들. 인자 어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알았제? “


그 말씀에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시며 아버지 옆으로 가셨다.


정란은 두 분이 같이 서 계시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모든 것이 똑같은데 한 사람만 바뀌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 가을 찬 공기, 밥 짓는 냄새, 울긋불긋 느티나무.

갑자기 그날 새벽이 떠오른 정란은 아버지를 괜히 재촉했다.


”아버지, 배고파예. 빨리 갑시더. “


이모와 정란은 제일 앞에 서서 걸었고,

남자 형제들은 뒤에서 말 잇기 놀이하며 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맨 뒤에서 같이 걸어오셨다.

정란은 막내가 잘 자는지 걱정이 되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팔을 잡으시는 모습에

깜짝 놀라 고개를 다시 휙 하니 앞으로 돌렸다.

이모는 또다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도망가실 일은 없으시겠네. 그라믄 됐다.... “


”이모는 보지도 않았는데 우예 압니꺼? “


”할머니가 말씀 주시네~“


집에 도착해 이모는 이모부 밥을 차려줘야 한다며 집으로 가셨다.

정란은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들어 옆으로 옮기고 밥을 지을 준비를 하였다.


”정란아, 여기 이제 어머니한테 맡겨도 된다.

내가 맛있는 밥 해줄게. 가서 놀고 있어라. “


”아입니더, 식구가 많아서 힘듭니더.

제가 원래 그전에도 어머니랑 같이

상 차리는 거 돕고 음식 나르고... 헙! “


순간 자연스럽게 나온,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다 놀란 정란은

손으로 입을 막고 서서 얼음이 되었다.

첫날부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정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끔뻑거렸다.

어머니는 그런 정란의 모습이 귀여워 웃으셨다.


”정란아, 언제든지 얘기해도 된다.

말 못 해서 병나는 것보다는

얘기하면서 훌훌 털어 버리는 게 훨씬 낫다.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실컷 얘기해라.

앞으로 우리 잘 지내보자. “


”그라믄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됩니꺼? “


”어, 실컷 해라. “


”저.. 이제.. 학교 가도 됩니꺼....? “


”그럼! 내가 니 학교 보내 줄라고 여기 왔다이가.

내일부터는 학교 다녀 온나. “


정란은 혹시 이 어머니는 천사이신가 생각했다.

갑자기 나타나셔서 눈깔사탕도 주시고

막내를 보살펴주신 덕분에

정란의 등이 오랜만에 자유를 찾았는데

이제는 학교도 갈 수 있다니!

정란은 후다닥 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책가방을 챙기며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한참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여유를 가진 정란은

어떤 한 생각의 줄기에서 멈추었다.


죄책감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그렇게나 세상에 둘도 없이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였는데

잠시 가진 여유와 편안함에 홀려

어머니를 잊었다는 죄책감이 밀려와

책가방을 팽개치고 부엌으로 갔다.


...막내 제가 업을 께예.. 그러는 게 좋겠어예.


”아이다. 니는 가서 편하게 쉬어라,

더 놀지 뭐 하러 왔노? 인자 밥 다 됐다.

쪼매만 기다려라, 알겠제~? “


활짝 웃으시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이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정란은 짜증 섞인 말투가 삐죽 튀어나왔다.


”제가 업는다고예, 막내 원래 제가 키웠어예.

이리 주이소. “


정란의 표정과 말투에 당황한 어머니는

애써 웃어 보이시며 막내를 정란의 등으로 올려주었다.

때마침 막내가 깨어서 울어버렸고

정란은 미리 만들어놓은 죽과 물을 챙겨 마루로 나갔다.

어머니는 음식을 다 하신 뒤 상을 차리시고

아버지가 계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나오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지 신경이 곤두서있는 정란이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방에서 흘러나왔다.


”정란이 밖에 있으면 잠깐 들어와 봐라. “


막내를 원철이 오빠에게 맡긴 정란은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옆에서 눈물을 닦고 있는 어머니를 보고

흠칫 놀란 정란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머니 계시면 말 못 하겠습니더. “


”해봐라. “


”진짜예? 진짜 합니꺼? “


”그래 “


”막내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낳은 제 동생입니더.

그래서 제가 업겠다고 했는데예. “


아버지는 말문이 막히셨는지,

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옆에서 눈물을 닦던 어머니는 아버지 얼굴을 한번 보시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정란아, 어머니가 첫날부터

니 마음 알아주지도 않고 그랬는갑다.

내 딴에는 그동안 니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어서 빨리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

동생을 업었던 건데 니가 이래 섭섭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데이.

이 집에 이래 틈이 없는 줄도 모르고 나는... “


갑자기 눈물을 쏟으시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시며

아버지의 어깨에 기대어

말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버지가 태어나 처음으로

정란에게 호통을 치셨다.


”니 퍼뜩 잘못했습니다 하고 사과 안 하나!!

이게 무슨 예의 없는 행동이고! 아버지가 그래 가르치더나!“


평소 무뚝뚝하고 말수는 적지만 행동만은 늘 따뜻했던 아버지셨다.

남매들에게 야단치시거나,

매를 드시거나,

소리를 치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으셨다.

오늘같이 앞뒤 맥락이 없는 호통은 더욱더 없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 처음 만나 생판 남이나 마찬가지인 어머니 편을 드시며

정란에게 소리를 치시니

정란은 물론 밖에서 듣던 남자 형제들까지도

깜짝 놀라 다들 숨죽이고 있었다.

하지만 곧 정란은 아버지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호통을 칠 수밖에 없는

그만의 따뜻한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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