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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지 Apr 18. 2024

폭식증과 그냥 과식 사이

 요즘의 나는 그냥 좀 많이 먹고 있다. 평소 체중(이라 말하고 최저 몸무게라고 읽는)보다 3-4킬로가량 늘었을 정도다. 작년의 나라면 ‘비상!’을 외치며 거의 굶거나 미친 듯이 운동을 해서 뺏을 정도의 증량이지만, 요 근래 좀 더 자주 행복하자는 생각에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일을 줄였기 때문에, 나는 나를 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니지, 나는 먹을 때 행복하긴 한가? 나는 지금 행복하기 위해 먹고 있는 게 맞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때 폭식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22살 즈음,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외로움, 우울함을 먹는 걸로 해소했다. 아니, 해소하려 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정녕 해소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분명 그건 배고픔이나 식욕이 아니었다. 허기를 느끼거나 에너지가 부족해서 뭔가를 채워 넣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종류의, 텅 비어있는 내 속에 뭐라도 욱여넣는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는 행위는 가장 쉬웠다. 함께 할 상대나, 노력, 스트레스도 부재했다. 돈도 시간도 친구도 없었던 나에게 가장 확실한 만족감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는 음식뿐이었다. 그 결과 체중은 거의 고도비만 직전까지 쪘다.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중3 때 한번(친구들과 멀어져 고립되어 있었다), 고3 수능이 끝난 이후(수능이 망했다) 또 한 번 폭발적인 증량이 있었던 걸 보면... 나의 체중은 우울함과 정확히 비례하는 게 틀림없다.   

 그러다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난 뒤, 돈도 시간도 생긴 나는 운동과 식단관리로 감량에 성공했다. 원래보다 훨씬 더 날씬한 체형으로 변했지만 폭식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우울할 때 폭식한다’는 명제는 내가 날씬해진다고 거짓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끊임없이 주기적으로 우울한 일이 찾아왔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살이 쪘다. 결국 평생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고 나를 괴롭히겠구나라고 생각할 때마다 우울함에 잠기곤 한다. 또 이 우울함이 나를 살찌게 하고 살이 찐 것이 나를 우울하게 하고 또 그럼 살이... 나는 우울함보다 결국 우울해서 살이 찌는 게 문제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어쨌든 22살 때나, 중3, 수능직후만큼 고도비만에 가까운 체중으로 가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봤자 지금에서 살짝 더 오버되는 정도. 하지만 체중에 대한 강박만은 여전하다. 체중강박과 적은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차라리 체중계를 있는 힘껏 외면해 버리면 좋을 텐데, 나는 아침저녁은 물론 집에 있는 날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갈 정도다. 그런다고 체중이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나도 모르겠...

 보통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체중에서 2-3킬로 정도만 늘어도 늘 그 숫자가 내 뒤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에 늘 시달린다. 급박하게 빼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을 거의 굶다시피 했다가 그 뒤에 조금만 먹어도 금방 살이 찌는 몸이 되어버렸다. 분명 운동도 병행해서 감량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뒤로 몇 번의 증량과 재감량을 반복한 뒤의 나는 몸의 대사능력이 고장 나버렸다. 남들보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도 결코 날씬해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거다. 거의 하루에 한 끼만 제대로 먹고도 마르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나를 생각하면 가끔 슬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현재 내 몸을 아주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나는 내가 키가 크고 근육량은 평균 이상에 얼굴에 살이 없는 편인 게 마음에 든다. 예전엔 하체가 튼실한 게 콤플렉스였는데, 요즘은 그냥 내 멋대로 ‘골져스’하다고 생각한다. 배에 힘을 주면 복근이 보일 때도 있다(후훗). 별로인 부분은 과소해석, 괜찮은 부분은 과대해석하며 때때로 자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때 뚱뚱했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 번도 뚱뚱해본 적 없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속으로 ‘어? 저번보다 살쪘네.’라고 생각할까 두려워 며칠 전부터 식사량을 줄이곤 한다. 원래대로 돌아가는데 실패하면 혹시라도 체중에 대한 얘기를 들을까 속으로 전전긍긍하곤 한다. 


 “뚱뚱하다고 어디밖에 안 다니고 그런 안 돼.”

 구구구구남친이 내가 지랑 어딘가에 가기 싫다고 하자 나한테 충고(?) 위로(?) 랍시고 내뱉은 말이다. 나는 그냥 본투비 집순이고 그때 살이 평소보다 쪄있었지만 뚱뚱해서 나가기 싫은 거라고 말한 적 없었는데? 


 “숙녀분께 실례지만 살이 왜 이렇게 찌셨어요?”

 라고 배 나온 40대 아저씨가 말했다. 실례인 줄 알면서 실례인 질문은 왜 하는 걸까? 그게 시험문제에 오답인 줄 알면서도 오답을 적는 짓이랑 뭐가 다른가? 자기가 바보라고 선언하는 건가? 거기다가 ‘숙녀분께’라는 건 또 뭔가? 숙녀가 아닌 사람에게는 실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까? 


 “소개팅하실 거면 좀 더 빼고 나가는 게 좋겠어요.”

 라고 역시나 팔다리는 학처럼 가늘면서 배만 불룩 나온 40대(인지 50대인지 모를) 아저씨가 말했다. 나는 이런 말을 듣고도 그 사람은 ‘살만 조금 빼면 더 인기가 많을 거 같다’는 좋은 의도로 한 말인데, 내가 과민반응하나 내심 자책 중이었는데, 상담선생님께선 너무 놀라며 충분히 상처 받을만 했다고 해주셨던 게 큰 위안이 됐다...


 나는 내 체중, 몸에 대해 정말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고 상처를 줄 목적으로 앞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나에게 그게 얼마나 큰 발작버튼인지 미처 알지 못해 저지른 실수일 뿐이다. 그리고 만약 정말 누가 봐도 그게 ‘약점’인 사람 같아 보였다면 아무도 그걸 건드리지 않았을 거다. 나도 그들이 못생겼거나, 키가 작거나, 무능력한 게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말조심을 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걸 겨우 받아들였는데... 

 



  “네 체형에 가슴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가장 최근에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구남친(그러고 보니 어쩜 하나같이 다 남자들이네?ㅋ)의 대사다. 본인은 술김에 말해놓고 무슨 맥락과 의미로 말한 지조차 기억 못 했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마음의 멍울을 남겼다. 그 당시 그가 헤어지자고 하는 걸 내가 붙잡아서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도 바로 따지지 못하고 며칠을 속으로 끙끙 앓았다. 심지어 내가 그 일에 대해 따지자 보통의 남자(아니 사람이라면) 해야 했을 입에 발린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게 자신의 진심이라 시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문제는 일으켜놓고 그가 입을 다문 사이 나는 또 우울함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말았다. 


 저런 순간이 올 때마다 내 머릿속을 뒤덮는 건, 내 체중을 향한 타인의 공격은 내가 결코 통제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언제 어디서든 불시에 닥쳐올 수 있다는 얘기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도 만나지 않거나(이건 불가능하다), 내 몸을 통제하는 것, 그 두 가지뿐이다. 내 몸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로, 아예 절식을 하다가 눌러왔던 식욕이 폭발해 폭식을 하곤 했다. 


 그런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는 항상 내가 괜찮을 때에도 자신에게 묻는다. 너 정말 잘 먹고 있는 거 맞아? 혹시 우울해서 폭식하고 있는 거 아냐? 우선 지금의 내가 내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 이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아니’다. 얼마 전 자주 들리는 옷가게에서 평소 입던 사이즈를 입었는데 터질 것 같아서 여름이 오기 전에 신속히 빼야겠다고 결심했다. 옷가게를 나오는 길에 나와 같은 옷을 입은 마네킹 위로 아까 탈의실 거울에 비친 내 몸이 겹쳤다. 순간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이 불쑥 솟구쳐 올랐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때가 오긴 올까.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걸까. 그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볼 때면 그런 그가 부러우면서도 그래도 '나는 저런 몸으로 살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내가 싫다. 


 상담을 받으며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서 앞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라는 계산이 대강 섰다. 하지만 체중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노답’이다. 체중을 유지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해답조차 내릴 수 없다.

 내 인생에 이토록 끊임없이 실패하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과업이 다이어트 외에 또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어제 야식으로 야채순대곱창에 과자 한봉을 때리고 며칠 뒤에 있을 약속에 뚱뚱해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오늘부터 4일 동안 굶겠다는 비현실적 계획을 실현하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그래도 어제 먹을 때의 내가 느낀 감각을 떠올리면, 그래도 '폭식이 아닌, 그냥 과식이었다'는 것에 위안 삼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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