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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Apr 09. 2024

일매출 140만 원의 비결

가장 보통의 서비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고, 끝내 코로나도 종식됐지만, 그 끝에 내가 그리던 풍경은 없었습니다.


카페 안은 삼삼오오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하고, 배달라이더분들이 쉴 틈 없이 카페 문을 드나들며 고객들에게 디저트를 나르는, 우리가 흔히 아는 매우 익숙한 그러한 카페 풍경 말입니다.


당황스럽게도 매출은 우상향 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코로나 때는 배달매출로 버틸 수 있었는데,

갑자기 배달이 뚝 끊기더니 (배민고객센터에 우리 매장주문시스템에 문제가 있나 확인한 적도 있었음)

카페방문손님조차 이전에 비해 줄어드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원래 모든 건 코로나탓이었는데

이젠 코로나탓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입지 탓을 했습니다.


-유동인구가 없어서 그래. 번화가였다면 달랐겠지.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날씨 탓을 했습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누가 나오겠어

-이렇게 날이 좋은데 다들 나들이를 갔겠지.


어떤 날은 경기 탓을 합니다.


-이런 시기에 장사가 잘 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그리고 마침내, 손님 탓을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스페셜티 원두 프릳츠를 모르네.

-뉴욕에서 줄 서서 먹는 르뱅쿠키를 처음 들어보나?

-동네가 후지니, 손님 수준도 비슷해지는 듯, 이곳을 벗어나는 게 결국 답인 걸까, 아니면 이제라도 마케팅업체를 알아봐야 하는 걸까.

 



그렇게 내가 판 커피보다,

내가 마신 커피가 많아지더니

불평불만이 무덤처럼 쌓여가더니

당일 매출에 따라 기분이 미친년 널뛰듯 하더니


서서히 매출이 우하향하면서

급기야 매출 22000원을 기록하게 된 날,

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건 내 탓이었습니다

모든 건 내 탓이었습니다

모든 건 내 탓이었습니다





1호선 제물포역 2번 출구, 작은 골목의 구옥카페

이곳은 서울도 아니고, 뉴욕도 아닙니다.


번화가의 비싼 가게세를 감당할 수 없어

이곳에서 카페를 시작한 것은

순전히 나의 의지입니다.


소상공인 대출을 받은 것도 나의 의지이고,

계란, 밀가루, 버터 등 원재료 가격이 무섭게 오른 것은 팩트이지만, 물가상승과 이런저런 이유로, 남는 게 없다며 가격을 올린 것은 분명 나의 의지입니다.


그런데 쿠키 한개, 커피 한잔, 설탕 1g까지 꼼꼼히 단가를 따져가며, 절대 1원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매출이 떨어질수록 인색하게 굴어대는 사장이 있는 그딴 카페에 누가 가고 싶을까요


손님이 없는 이유를

손님에게 찾고선

손님에게 책임을 전가하던 것을 멈추고,


손님 한 사람사람이 너무 귀해서,

여기까지 와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서

‘이곳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을 때,


고민 끝에 마케팅에 돈 쓰지 말고 차라리 손님에게 그 돈을 쓰자라는 생각으로


-첫 방문 해주셔서 다음에 또 오시라고 드려요

-재방문해주셔서 감사해서 드려요

-비 오는 이런 궂은날에 와주셔서 감사해서 드려요

-많이 구매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서 하나 더 넣어드렸어요


각종 이유를 대가며 서비스를 챙겨드렸을 때,

매출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손님이 없는 이유를 찾던 나와


날이 좋으면, 날이 좋아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서비스를 드리는 나와는


분명 다른 카페사장일 것입니다.


작은 골목에서 어떻게든 눈에 띄고자

그렇게 카페인테리어에 힘을 잔뜩 줘놓고,

다른 곳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디저트를 만들어 놓고,


죽상한 얼굴로 땅이 꺼져라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정작 나 자신이 카페물을 흐리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고용주가 있었다면 당장 쫓아냈겠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저의 고용주이자, 고용인이기도 한

1인 카페의 사장이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면서

나 자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습니다.



굳이 우리 커피가 스페셜티 원두라는 것을 언급하는 대신, 고객의 취향을 기억했다가 (연하게, 진하게, 달달하게, 얼음 많이) 다음에 오시면 기억해서 해드리고, 에이드를 시키시면 과일청을 더 많이 넣고, 스파클링 워터를 따로 챙겨드리기도 했습니다.



개업 이후로 만든 디저트 종류만 무려 200여 가지..!

가장 최신의 디저트 트렌드를 쫓거나,

다른 곳엔 없는 디저트를 시도하겠다며

디저트카페는 디저트 연구소가 아님에도,

디저트 종류만 잔뜩 남발한 결과였습니다.

그것을 저는,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가장 보통의 디저트, 친숙한 디저트 만을 남기고 모든 디저트를 메뉴에서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서비스를 드렸습니다.





서비스 앞에 장사 없다

그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오직 다정함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두 번째 결론입니다.


개업을 하고 나서 매출이 바닥을 치기 직전까지도

카페는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입소문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개업날 카페에 오셨던 손님을 모두 기억합니다.

그만큼 숫자가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항상 우리 카페 고구마치즈케이크가 젤 맛있다고 애정해 주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나보다 더 나의 디저트를 좋아해 주시는 분에게 단순한 감사 이상의 애정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도 모르게 더 많이 웃게 되고 더 많이 챙겨드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 고구마치케를 찾으셨습니다

아가씨 때도, 결혼해서도, 임신을 하고 막달이 돼도, 출산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자주 오던 손님이

한 달에 한번 오시다가,

반년에 한번 오시기도 하지만,

어느덧 우린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메뉴를 대폭축소하는 과정에서 그분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고구마치즈케이크를 더 이상 팔지 않게 되었을 때 끝까지 고민했던 건, 오직 그분께 미안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분이 117만 원의 디저트 단체주문을 해주십니다. 가정의 달도 크리스마스시즌도 아닌, 그저 어느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매장영업까지 합해서 이날 매출은 140만원



결국 높은 매출은 단골손님이 올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후미진 골목에 있는 카페에 계속 재방문해 주는 것 만으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그것은 단순히 맛있는 디저트와 커피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생후 100일된 최연소 손님과 함께 출산후 첫 외출로 카페에 오신 나의 자부심이자 가끔씩 오래 보는 사이가 된 단골손님 성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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