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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Apr 16. 2024

카페입지조건이 의미없는 이유

결핍의 시발(始發)

이미 카페창업수는 치킨창업을 넘어섰고, 사실 우리는 배달의 민족 이전에 커피의 민족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커피는 일상화된지 오래, 도시와 시골 상관없이 전국 방방곡곡 어디라도 갈수만 있다면 그 어디든 카페가 있어도 납득가능한 정서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해 저는 지금의 위치, 구도심의 작은 골목, 구옥건물 1층에 카페를 시작하게 됩니다.



No 주차장, No 유동인구, No 상권

일반적인 카페 입지조건과는 정반대인 이곳에 마치 청개구리처럼 카페를 열면서 저도 초반에는 자리 잡기 꽤 힘들겠다 마음의 준비를 아주 단단히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보다 더 최악이었습니다.


자잘한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몇 개만 언급해 보자면,


첫째. 노후화


전 개업하자마자 이정재 배우의 연기를 직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풀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시 바로 카페 맞은편 고시원건물에서 ’오징어 게임‘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오징어 게임’입니다)


촬영전날 제작부에서 촬영협조를 위해 카페에 들렀는데, 로케이션 헌팅 중에는 이 카페가 없었는데 도대체 언제 생긴 거냐며, 그들은 멘탈이 나가기 일보직전처럼 보였지만, 저 또한 당시 개업하자마자 맞닥뜨린 매출 성적표에 멘탈이 나가기 일보직전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은 내 알바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내심 넷플릭스에 어떤 모습으로 이곳 동네가 등장하게 될지 은근 기대가 되었고,  그 결과


단언컨데 CG 0%


시즌은 넷플릭스 역사상 대성공을 했고 저도 이렇게 성공기를 쓰고 있으니 우리는 서로 윈윈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이곳 골목만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잘 전달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곳 대부분은 70, 80년대에 지어진 구옥들이라 동네 곳곳에서 여름 태풍에는 물난리, 겨울에는 동파사고가 잦고, 사소한 주차시비가 일상이어 어느덧 경찰이 출동해도 그려려니 하게 됩니다.




둘째. 담배골목


최근 지자체마다 관광화를 목적으로 한 지역 스토리텔링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급조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도 굉장히 많습니다만 이곳 골목은 정말 찐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방과 후가 되면, 카페 앞 골목으로 삼삼오오 고교생들이 모여듭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 이곳은 일명 ‘담배골목’으로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곳입니다.


추억이 아닌 현재진행중


역사와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하필 왜 우리 카페 골목인지 몹시 열이 받습니다.

게다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담배라니요.  

저는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카페문을 박차고 나가 그들에게 말합니다.



-여기 매일 제가 청소하는 곳이에요. 카페 앞에서 피지 말고, 다른 곳에 가서 피워주시면 안 될까요?


공. 손. 하. 게.


교복 입고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꼬나무는 그들의 무모함과 행동력이 너무 무서워서 순간 화가 쏙 들어갑니다. 그리고 부탁은 원래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이니까요.




셋째. 노인층 실거주지


구옥을 리모델링할 때부터 많은 지역주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하나같이 일말의 기대감도 없이 ‘왜, 이런 곳에?’ 고개를 갸우뚱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주민들이 실은 대부분 노년층임을 깨닫게 됐을 때, 저 역시 스스로 걱정과 우려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어른들께서 개업 이후 인사말처럼 ‘가겟세는 나오겠어?’ 하실 때마다,  

‘어서  이곳에서 도망쳐!’ 하는 외침이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내가 학창 시절 때만 해도 이곳은 중고교 대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던 젊음의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거의 2, 30년 전 이야기인 것을…


90년대의 풍경을 바로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는, 어제저녁 먹은 건 기억이 안나도, 과거일은 점점 선명해지는, 나 역시 그러한 옛날사람이 된 것을 그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카페위치를 문의하는 전화를 많이 받지만, 카페 주차장이 따로 없다는 말에 실제로 방문하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카페 주변 또한 주차하기 마땅치 않아 공용주차장 이용을 부탁드리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카페에 올 사람은 실제로 많지 않습니다. 의외로 주차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싼 가겟세를 지불하면서 주차장과 상권과 유동인구를 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런 곳에서도

카페는 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최악의 카페입지조건 덕분에

그러한 커다란 결핍이

제겐 중요한 성공의 비결이 되었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맛있고, 디저트가 아주 끝내줘서

4년째 카페를 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비싼 가겟세, 비싼 인건비가 주요 지출로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겟세 10

인건비 30

재료비 30

세금 10

기타 5


(적정 카페운영 지출비율이 보통 이러하지만, 많은 카페들은 가겟세 비율 지출이 훨씬 더 높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 마진율은 무려 50%가 넘습니다. 보통의 카페가 10~15% 인 것에 비하면 말입니다)



그렇게 물가가 폭등했어도

좋은 스페셜티를 원두를 쓰고,

개업 이래로 같은 뉴질랜드 버터와 프랑스 생크림, 유기농 비정제설탕과 무항생제 계란을 사용합니다.

스콘의 가격 또한 처음 2500원 그대로입니다


이 모든 게 가능한 것은

카페입지가 안 좋기 때문이고

제가 알바이자, 직원이자, 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가 크로나에 개업해서,

코로나를 지나,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카페입지가 안 좋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버티다 보니까

항상 이곳에서 그러한 결핍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애쓰는 사이


무서운 고교생

노인분들

놀랍게도 어느새 손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카페 주변 반경으로 실거주자는 노인층이지만, 오래된 구옥 외에 오래된 꼬마빌딩에는 직장인들이 꽤 있었고, 오래된 학교들마다 이전에 비해 학생수가 크게 감소했어도 선생님들이나 행정직원들의 수는 큰 변화 없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여기 카페가 있었네’ 하시며 커피 한잔 하러 오셨다가, 배불러서 안 먹어하다가도 어쩌다 디저트도 드시게 되고, 또 단체주문도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장사는 3개월이, 반년이, 1년이 다 다릅니다

우선 나 자신이 달라지고, 손님층도 넓어집니다.


나의 경우, 일머리가 생기면서 스스로의 시스템이 갖춰지고 보다 생산적,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해냅니다. 점점 같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냅니다.


손님들의 경우, 우리 카페에서 좋은 기억을 안고 가신 분이 또 다른 분을 이끌고, 그분이 또 다른 분에게 카페를 소개하며 단골이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오랜단골과 첫 방문 손님의 재방문율이 동시에 늘어나면서 단골층도 더욱 확대됩니다. 이 곳까지 오시는 손님들의 반경이 점점 확장되는 것이몸소 느껴집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아닐뿐더러 오직,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1년과 3년은 정말 천지차이입니다.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일의 숙련도와 완성도가월등히 높아지고 당연히 이것은 손님들의 높은 만족도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카페가 보물처럼 발견되기 위해서 한 곳에 오래도록 존재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장인 내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오래 벌어주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에 커피도 디저트도 맛있으면 당연히 입소문이 나겠죠.

하지만 그 입소문이 날 시간을 내가 버텨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소리지만 시간은 돈입니다.

필연적으로 어떻게든 창업 초기비용을 아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저의 시발(始發: starting)은 결코 시발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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