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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지인 Jul 16. 2024

손님은 자유를 싫어합니다

개인 카페사장의 길

"여기는 앉는 자리가 없나요?"


'그.. 그럴 리가요… 여기는 카페인걸요..’


아직도 카페 첫 방문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손님들이 종종 계십니다.

이러한 손님의 오해에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흔한 카페 테이블과 의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집합금지 이후에도, 심지어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부단히 코로나 방역에 힘쓰고 있는 줄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정말 앉을 데가 없나요?


40년이 넘은 구옥 1층을 개조해 만든 카페로

이전에 가정집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카페문을 열자마자 10센티 남짓한 턱이 있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려는 분이나

혹은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간혹 계십니다.





카페 안에 모든 테이블과 의자는 직접 목공소에서 주문제작, 의자의 경우 벤치체어 스타일로 창틀의 높이에 맞춰 제작해, 낮습니다.


이것이 가내수공업이다!



카페 천정이 낮은지라

가구들의 높이 또한 낮게 만들어서

카페전면부의 세 개의 큰 통창과 함께

카페의 작은 내부를 최대한 넓어 보이도록 말입니다


무적권 넓어보이게


의자는 row & wide 하게 만들어서 손님들이 마치 평상에 앉아있는 것처럼

아빠다리를 하든 엄마다리를 하든

편안하게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앉으시는 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건 배추


테이블 또한 작지만, 단독으로도 혹은 2,3개를 붙여서 인원수에 맞게 넓게 사용하게끔 했고,

뿐만 아니라 90도 회전하면 의자로도 사용가능한 테이블 체어로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엥? 이것은 의자인가, 테이블인가?!



이것이 그토록 손님들을

애매모호, 오리무중, 아리까리하게 할 줄이야..

헷갈려하시다가 이내 겸연쩍어하시는 모습에


손님 탓이 아닙니다, 제 탓이어요

를 맘 속으로 연발하며

역시 '보통 is the best' 임을 절감합니다.




맘대로 자유롭게 선택하시길

용도껏 자유롭게 즐기셨으면 했지만

그것은 그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세요' 또한 어떤 메시지입니다.

고객은 우리의 메시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자유롭다는 것이

꼭 편안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객님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유롭게 카페를 즐기셨으면 했던 것들이 고객에게 결정을 강요하는 일종의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손님은 그저 카페에 편하게 앉아서 커피 한잔하고 싶을 뿐인데 말입니다.


어차피 우리네 삶은 결정해야 할 일들 투성이인데,

굳이 카페에서까지 와서 이게 테이블인가 의자인가 이 따위에다 에너지를 써야 하다니


주인장 맘대로 해주는 오마카세가 유행하고,

결정장애가 마치 유행병처럼 번지는 바쁘다 바뻐 현대사회에서 말이죠.



메뉴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다시피 성공하는 가게는

단일메뉴인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카페에서는

손님이 음료와 디저트를 고르는 순간조차

선택의 범위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손님이 오래 고민한다 싶으시면 취향을 물어보고

재빨리 추천을 몇 개 해드려야 합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 또한 불편한 감정이고, 이것은 카페에 대한 이미지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수백 종류의 디저트를 만들고, 그럼에도 또 새로운 디저트를 연구하고, 매일 변경되는 디저트라인업을 인스타에 올리고, 홍보하고,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그런 식으로 고객들을 점점

고민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뭐가 많기는 많은 것 같은데, 정작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디저트카페 말입니다.


그렇게 노력과 매출은 결코 비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잘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던 때
가장 보통의 디저트만 판매하는 지금 매출은 더 높다는 나만 불편한 진실


왜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했을까요

인생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그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매 순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어른인 것을

간혹 차라리 누가 그냥 시키는 대로 결정하는 대로 그냥 따라가며 살고 싶을 때도 있건만



손님은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야 합니다.

쉽고 편해야 다음에 또 가고 싶습니다.


그것은 오직 카페사장의 몫입니다.

매번 선택해야 하니까요.


프랜차이즈카페가 아닌 이상

음료뚜껑을 돔형으로 할 건지, 리드형으로 할 건지, 하물며 빨대길이조차 몇 센티로 할 건지 조차 선택해야 합니다.



개인 카페창업을 결정하고,

수많은 커피머신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수많은 원두종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수만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때뿐일까요?

개업 이후에도 지겨우리만치 내 결정만을 기다리는 것들이 줄줄이 비엔나입니다.

당연하지요. 사장이니까요.


하지만 신중히 그리고 빠르게 선택하고,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게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카페사장의 삶은

여전히 끊임없는 선택 위에 있음을 절감하며


오늘도 카페라테에 일반우유와 무당연유를 혼합해 더 꼬숩하고 진한 라테를 만들 것인가

그렇게 되면 단가가 너무 올라가는데... 를 고민하다 일단 보류를 선언하며

카페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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