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그러나 아직.

by 복코코



처음에는 간호과장님이 나를 찾아오신 이유를 몰랐다.

'내가 오래 입원한 환자라 인사하러 오신 건가?'와 같은 순진한 생각을 했다가 몇 분 뒤에 그 이유를 알았다. 과장님은, 내가 슬- 퇴원해 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연초는 출산이 몰리는 시기다. 지금은 병실들이 비어있어도 곧 복작복작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 보면 연초인데도 병동이 그동안 한산했던 게 신기한 거였다. 아무튼, 그래서 과장님은 퇴원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부터 찾아오신 거였다. 내 피고임과 별개로 똥끼는 잘 자라고 있었고, 마침 내가 원하면 퇴원해도 된다는 교수님 허락도 떨어진 상태였다.


“네 근데 전 좀만 더 있다 퇴원할게요.”


병원 입장에선 이상했을거다.

보통의 산모들은 퇴원 허락이 떨어지면 고민도 없이 바로 나간다. 병원은 답답하고, 음식도 맛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자니까. 그런데 나는,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조금 더 남고 싶었다. 왠지 퇴원하면 또 무슨 큰일이 터질 것만 같아서, 도저히 지금은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과장님은 "피고임은 병원에서도 당장 어떻게 해드리긴 어려워요~"라며 상냥한 말투로 에둘러 원하는 바를 비췄지만 나는 모르는 척,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결국 얼마 안 가서 나는 퇴원했다.

간호과장님 때문은 아니었고, 내 퇴원을 앞당긴 사람이 있었다. 잠깐 딴소리지만, 교사들의 은어 중에 '명퇴 도우미'라는 게 있는데, 퇴직을 고려하게 할 만큼 교직에 진절머리 나게 만드는 학생을 그렇게 부른다. 2인실 내 옆자리로 며칠에 한 번씩 갓 출산한 산모들이 새로 들어왔는데, 그 무렵 들어온 분이 딱 그런 존재였다. 퇴원 도우미.



"1인실 자리 없대?"

"응 지금은 다 찼고 나중에 자리 나면 알려 준대."

"아 1인실 가고 싶은데~~"



새로 온 부부는 1인실을 원했지만 자리가 없어 여기로 오게 된 듯했다. 갓 출산한 산모가 1인실에서 편안히 지내고 싶은 마음, 백번 이해한다. 그런데 다인실에 왔으면 어느 정도 옆 사람을 배려해 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꺄악 너무 귀여워."


트롤리에 실려온 아기를 보며 부부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이, 20주 똥끼를 품고 있던 내게는 꿈같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소음이 새벽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늦은 새벽, 굳이 "찰칵찰칵"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대는 건 대체 무슨 똥매너람. 뭐라고 한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지만,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나는 혼자니까. 보호자도 없이 그 부부에게 뭐라고 할 만큼 담대하지 못했다.


다음날, 문병을 온 친정엄마 눈에도 그 모습이 여과 없이 비쳤는지 엄마는 바로 간호사실로 달려가 항의를 했다. 간호사 분들이 무슨 죄일까. 에휴. 마음만 불편해졌다. 여러 생각 끝에, 나는 굳이 여기 남아서 감정 소모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나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다행히 며칠 뒤 외래 진료가 잡혀 있었기에, 그때 똥끼 상황을 보고 필요하면 다시 입원을 하기로 했다.




퇴원 후엔 바로 친정으로 향했다. 주 6일 일하는 남편이 나를 돌봐주긴 어려울 테니 혼자 집에서 지내는 것보단 엄마 아빠랑 있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 방에는 컴퓨터랑 각종 책들이 7년 전 내가 결혼할 때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덕분에 머무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퇴원 후 오랜만에 예전부터 다녔던 동네 '서브 병원'에도 들렀다. 나는 워낙 불안이 많아, 피를 보거나 배가 아프면 바로 여기로 와 진찰을 받곤 했었지.


"어머, 오랜만이다. 잘 지내셨어요?"


내 과거 이력을 줄줄이 꿰고 있는 선생님은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차저차 최근까지의 상황을 말씀드리자 선생님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어휴, 힘든 일 많이 겪으셨네요.

사실 제 후배도 얼마 전 임신 중 태반조기박리로

결국 아기를 보내게 됐거든요."


"헐 진짜요?"


산부인과 의사라고 해서 그런 일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당연한 얘기지만, 새삼 놀라웠다. 결국, 다 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에게 닥친 슬픈 일도, 내가 겪은 일도, 그리고 운 좋게 똥끼가 살아남은 것도.


태반조기박리는 원인이 너무 다양해 특정하기 어렵다고 들었지만, 나는 확신했다. 임신 후 급격히 오른 혈압 때문 일거라고. 임신 전 나는 오히려 저혈압이었다. 그런데 임신하고 나서 초기부터 혈압이 130을 넘겼고, 양수검사 날엔 150대라는 저세상 수치도 찍었다. 평생 저혈압이던 내가 저런 수치를 볼 줄이야.



일단 출산까지 혈압을 더 면밀히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에 교수님께 혈압약을 요청드렸지만, “그 정도는 약 먹을 수준 아니에요." 라며 단칼에 거절당했다. 다른 병원들은 나 정도면 다 약을 준다는데, 나는 왜 안 주는 걸까? 납득하기 어려웠다.

혈압약도 받지 못한 나는 이제 스스로 혈압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내가 로봇도 아니고, 혈압을 어떻게 스스로 조절해? 게다가 임신성 고혈압은 식이조절로도 안 된다는데. 그럼에도 '혈압을 낮춰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 탓에 혈압계 공포증까지 생겼다. 혈압계 앞에만 서면 심장이 미친 듯 뛰었고, 때문에 제대로 혈압 측정조차 어려웠다. 교수님은 계속 이러면 임신중독증 위험이 있다며 내게 경고하셨지만 정작 중요한 혈압약은 또 주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거의 정신병자처럼 매시간마다 혈압을 쟀다. 집에서 혼자 재는데도, 공포심에 첫 수치는 늘 저세상 수치였고 몇 번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재면 그나마 130대까지 떨어졌다. 그래봤자 그것도 높은 수치지만말이다. 이 무렵 내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건 '명화 그리기'와 '보석십자수'였다. 아무런 대가가 따라오지 않는 단순노동, 단순작업.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들인데 이런 거에 몰두하다 보면 쓸데없는 걱정과 힘든 마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불안으로 마음이 힘든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추천하고 싶다.





어느덧 임신 21주에 접어들어 지난 16주에 했던 양수검사의 마지막 관문- 미세결실검사 결과를 받을 때가 되었다. 그동안 하혈 때문에 입원해 있는 와중에도 계속 이 검사 결과가 신경 쓰여서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원래 교수님께서 미세결실검사까지는 굳이 안 해도 된다고 하셨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말을 들을 걸. 걱정이 너무 많아 내가 잠식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염색체에 문제 있으면 어쩌지?'


'그 문제가 혹시 발달장애를 유발하는 결함이면?'


'작은 문제도 아니고, 아기를 보내야 할 정도로 크다면?'



병원에 누워있을 때도, 퇴원 후 친정에서 쉴 때도, 할 일 없는 나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만 쌓아갔다. 그렇게 걱정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자신이 한심하고 혐오스러워지기까지 했지.


'애 보내려고 검사한 거야?'


'나도 미세중복 있는데 잘 컸잖아. 공부도 잘했는걸?'


'엄마인 내가 똥끼를 못 믿고 이렇게 불안해하는 게

너무 추하다…'


검사 결과 나오기 전날,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결과가 어떻든, 우리 딸과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그날 일기에도 썼다.


'누가 뭐래도 똥끼는 내 딸이다.'
그 결심을 꾹꾹 눌러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