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3월

by 복코코




양수검사 결과지는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충 훑어보고 앞 장으로 돌아가 요약을 다시 읽고 나서야 알았다.


‘아, 다 정상이라는 거구나’



기뻤다. 분명히 너무 기뻤다.

그런데 곧이어 탁, 하고 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면 어떡해?' '저러면 어떡해?'


그동안의 수많은 걱정들 탓에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져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직 결과가 다 안 나왔다는 이유로 똥끼에게 정을 덜 주려 했던 때도 있었다. 유산이, 이별이 익숙해서 그렇다는 건 변명이다. 이렇게 자식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엄마라니. 짧은 기쁨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스스로를 향한 묵직한 자책이었다.

나는 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을까.



어쨌든 양수검사, 정밀초음파 같은 큰 검사들이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는 정말 마음 편한 임신 후기를 보내보자고 다짐했다. 늘 "나는 고위험 산모니까~"하는 핑계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들여다보니 오히려 정신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산책이라도 하라며 성화인 부모님 말에 못 이겨 백 살 먹은 노인처럼 천-천-히 아파트 단지 안을 돌기 시작했다. 확실히 햇볕을 쬐니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는 듯했다.




아기 용품을 보러 백화점에 나간 날도 있었다.

친구 아기 선물이 아니라, 내 아기를 위해 처음으로 아기 옷 코너에 가봤다. 형형색색의 작은 옷들. 무엇하나 안 예쁘고 안 귀여운 것이 없었다. 하지만 뭘 미리 하는 게 또 조심스러웠던 난 옷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그런 내 소극적인 태도를 본 엄마가 나서서 겉싸개, 속싸개 등 신생아 용품을 풀세트로 사버렸다. 출산까지는 아직 멀었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아서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2월의 마지막 날 저녁. 가족끼리 거실에 모여 귤을 까먹는데 원래 기침을 자주 하는 아빠가 귤을 먹다 또 콜록대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아빠에게서 몸을 뺐다.

임신한 이후로 감염에 예민해져 있던 나는, 무의식적인 내 행동을 알아차리고 몹시 부끄러워졌다.


'아빠는 원래 기침을 달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야 그렇게 예민 떨 거면 그냥 무균실에 들어가 살아-.‘


나 스스로도 내 예민함이 너무 꼴 보기 싫어서

그렇게 자책했다.


그다음 날, 아빠의 기침은 좀 더 심해졌고,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아빠를 끌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아빠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왔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부끄럽지만 그건 아빠 걱정 때문이 아니었다.


'나 어제, 아빠 기침 정통으로 맞았는데...?‘


이때는 이미 코로나가 유행한 지 오래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겪고 지나간 시기였다.

그런데 임신 준비한다고 늘 집콕하며 조심하던 나는

당시 찾아보기 힘든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려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만약 이번에 내가 걸린다면, 처음이라 증상이 절대 약하게 오진 않을 거였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아빠에게 화가 치밀었다.


'기침을 하기 시작했으면,

감기 기운이 온 거 같으면,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말았어야지!‘


당연히 이런 말을 직접 뱉은 건 아니지만, 예민해진 나는 혼자 화를 못 이겨 씩씩거렸다. 그리고 이내 스스로를 다그쳤다.


'아냐, 아빠에게 무슨 죄가 있어.

그게 코로나일 줄 누가 알았겠어.'


'너가 아빠에게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떡해.

아빠만큼 날 위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럼에도 일렁이는 감정을 멈출 수 없었다.

평소 누구보다도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자부했던 내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괜찮을 거야.

걸릴 거였으면 지난 3년 중에 진작 걸렸겠지.'


애써 행복 회로를 돌려봤지만

곧이어 내게도 목 통증과 기침 증상이 찾아왔다.

그래도 자가키트에는 아무 반응이 없어서 나는 그냥 환절기 인후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통증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찌르는 통증으로 바뀌자 더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새벽 두 시, 기침에 잠 못 이루던 나는 새 자가키트를 뜯었고 이번엔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와, 이런 두 줄은 필요 없는데?

헛웃음이 나왔다.


나에 이어 엄마도 확진 판정을 받았다.

게임에 빠져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동생만 유일하게 코로나를 피해 갔고, 아빠, 나, 엄마 셋이 함께 투병 생활을 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는 증상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내가 가장 심하게 앓았지.


나는 바로 열이 39도를 찍었다. 아픈 건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임산부의 고열이 태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르자, 무서움이 온몸을 덮쳤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어서 물수건으로 이마와 배를 수없이 닦았다. 이렇게라도, 똥끼에게 피해가 조금이라도 덜 가기를 바라며.


'진짜 나는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네.'


'차라리 지난 3년 동안 한 번쯤 걸려둘걸.

두세 번 걸린 사람은 증상도 약하다던데.'


스스로의 상황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일단 뭐라도 도움 되는 걸 하자는 생각에 수액이라도 맞아 보려고 인근 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아직은 코로나 환자의 내원을 꺼리는 병원이 많았다. 그래도 운 좋게 한 군데, 나를 받아주다는 곳이 있길래 부리나케 달려가 병원 베드에 누웠다. 수액으로 조금이나마 몸이 식어주기를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내 체온은 계속 39도를 맴돌았다.



하루이틀 지나자 다행히 열이 잡혔고 이제 남은 건 기침과의 싸움이었다. 기침 정도야 참으면 될 것 같아서

처방받은 기침약은 되도록 안 먹으려 했다. 그런데 기침이 세게 나올 땐 배에 강한 압박이 느껴져서 이게 오히려 똥끼에게 안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다 참다 기침약도 한 포씩 먹기는 했다. 아픈 사람이 약 먹는 게 사실 당연한 건데, 임산부다 보니 약 한 번 먹을 때마다 걱정과 죄책감을 가득 안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처량하게도.



이렇게 내가 생고생을 하는 와중에 신기하게도 우리 엄마는 너무 쌩쌩했다. 원래 체력 하위 1%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엄마는 몸이 약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지? 처음에는 신기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는 나를 위해 정신력으로 버텼던 것 같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하며 센 척하던 엄마는, 내가 코로나에서 거의 회복되어 갈 무렵부터 증상이 확 나빠졌다.



하루는 시끌시끌한 소리에 잠에서 깨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가 창백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 있고

아빠는 119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왜 안 좋았던 일은 이렇게 고화질로 선명히 기억에 남을까. 엄마는 병원에 실려갔다가 바로 퇴원했지만 며칠 후 또 119의 신세를 지게 되었고, 두 번째 퇴원 후에는 먼 옛날 완치된 줄 알았던 공황 증세가 다시 찾아왔다. 십수 년 만에 엄마는, 오랜 시간 발길을 끊었던 정신과 진료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이게 다 뭐지. 엉망진창이었다.

이제는 모든 불행이 내 탓 같았다.

내가 힘든 딸이라서, 부모님이 이렇게 된 것만 같았다.



"엄마 나 그냥 우리 집으로 돌아갈게! “

3월이 끝나갈 무렵,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