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병원으로 가끔 들르던 동네 산부인과 선생님이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와, 임신성 당뇨까지요?
진짜… 임산부가 겪을 수 있는
안 좋은 건 다 겪고 있네요."
"그러게요. “
"이 정도면 나중에 책 써도 되겠어요."
정말 그랬다.
항인지질항체증후군, 태반조기박리, 임신성당뇨, 임신성 고혈압. 나는 임산부가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표지판을 다 지나오며, 외줄 타듯 하루하루를 버텼다.
임신성고혈압은 자칫 임신중독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그 신호 중 하나가 갑작스러운 체중 증가라고 해서, 나는 배가 불러올수록 매일 몸무게를 예민하게 확인했다. 시간적 여유는 많았지만 마음의 여유는 한 톨도 없는 나날을 보냈다.
나는 평소 혈압을 자극할 만한 것들—선정적인 기사, 자극적인 프로그램—등을 최대한 멀리했다. 하지만 인생은 게임이 아니니, 모든 장면과 상황을 내 입맛대로 고를 순 없었다.
하루는 친정에 온 남편과 출산 준비물을 상의했다. 그동안 ‘무사히 낳는 것’에만 매달리느라 출산 후를 위한 준비는 손도 못 대고 있었으니까. 그날은 남편과 아기 침대를 고르는 일로 의견이 엇갈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편의 의견도 충분히 타당했는데, 그 순간에는 내 말에 바로 ‘그래’해주지 않은 남편에게 너무 서운했고, 속상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쳤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일렁임이 가시질 않았다.
'진정하자. 혈압 오른다.'
되뇌일수록 감정은 더 요동쳤다. 남편의 동의를 얻지 못한 내가, 무슨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작은 대화 하나하나가 폭풍처럼 나를 덮쳤다. 우습지. 결혼 후 우리가 겪었던 다툼들에 비하면 정말 별거 아닌 대화였는데, 그땐 그게 왜 그토록 서럽고 억울했을까.
막연하게 울고만 싶고, 가슴이 울렁거리고…
그 기분은 밤까지 이어졌고, 결국 나는 베개를 들고 엄마 방으로 갔다. 엄마는 조용히 곁을 내주며 말을 건네왔다.
"작년에 부산 여행 간 거 기억나?
요트투어 참 재밌었지~~
너 아니었음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봤겠니. “
평소 칭찬에 인색한 엄마가, 나를 띄워주며 기분을 풀어주려 애썼다. 그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고, 나도 엄마의 다정함에 기대 편하게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불붙은 감정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또,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아니 생길 거야.‘
그런 불안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았다. 엄마 방에서 잠깐 잠든 척을 했던 난 갑자기 벌떡 일어나 내 방으로 돌아갔고, 혈압계를 팔에 둘렀다. 예상대로 혈압계에는 180이 넘는 미친 수치가 찍혀 나왔다.
‘안 돼. 혈압이 올라서
남은 태반이 또 떨어져 버릴지도 몰라!’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일단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백팩을 꺼내 미친 사람처럼 짐을 쌌다. 오랜 입원 경험 덕분에 짐 싸기는 익숙했다. 순식간에 짐을 다 싼 나는 내 움직임에 깬 부모님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해 다시 혈압을 재니 여전히 몹시 높은 수치가 나왔다. 내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그대로 다시 고위험 산모실에 격리당했다. 예전에는 고위험산모실 자리가 안 나서 어렵게, 어렵게 들어갔었는데 연초가 지나서일까? 이 무렵의 병실은 한산했다.
침대에 눕자 자꾸 눈물만 났다. 내가 왜 우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조용히 차곡차곡 쌓여온 불안이 터져버린 거겠지. 근데 그렇게 불안해서 스스로 병원에 걸어 들어왔으면 이제는 차분히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나는 혈압측정조차 무서워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간호사들이 다가오면 나는 무슨 아이처럼 울어댔다.
“혈압 조금 있다가 재면 안될까요? 엉엉엉"
“저 제 자리 불 켜고 자도 될까요?
너무 무서워요. 엉엉엉”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다. 그런데도 간호사 선생님들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해 주셨다.
“엄마가 될 거잖아요? 이런 걸로 울면 안 되죠~~“
내 어깨를 감싸며 건네오는 간호사님의 그 말이 너무 따뜻하고 다정해서 그 말에 기대어 좀 더 눈물을 쏟아냈다. 웃긴 건 내가 그렇게 폭풍오열하는 와중에 똥끼는 아플 정도로 배 속에서 발길질을 해댔다는 거다. 왜일까. 내 슬픔이 너에게도 전해지고 있는 걸까. 혹시 이 발길질이 너만의 위로일까. 엄마, 울지 말라는 말 대신?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조금 들었다.
검사들은 이어졌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혈압이 워낙 높아 임신중독증일까 봐 걱정했지만, 단백뇨 수치도 정상이었고, 똥끼의 성장도 주수대로 좋았다.
“그냥 퇴원하셔도 될 것 같아요.”
“예…?”
담당 교수님이 출장이어서 다른 교수님이 대신 봐주셨는데, 그 말은 내게 청천벽력처럼 들렸다. 몸은 불편해도 병원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절박한 마음으로 나를 설명했다.
“선생님… 저 너무 불안해서 집에 못 가겠어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 유산도 네 번이나 했거든요. 같은 일을 또 겪을까 봐… 정말 무서워요.”
“제 환자 중엔요, 일곱 번 유산하고
결국 출산하신 분도 계세요.
그리고 코코 씨 유산은 모두 초기였잖아요?
그 시기는 이미 지났으니까, 이제는 괜찮아요.”
“저… 항인지질항체증후군도 있는데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코코 님 경우는 아기가 너무 잘 자라고 있잖아요.
진짜 심한 항인지질 산모는, 아기가 잘 자라질 않아요.
근데 지금 아기는 주수대로 아주 잘 크고 있어요.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제 혈압이 너무 높아서…
임신중독증이 올까 봐 불안해요.”
“고혈압 자체가 꼭 문제 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코코 님은 고혈압 임산부일 뿐이에요.
불안하시면 혈압약은 처방해 드릴게요.”
내가 꺼낸 어떤 카드에도 ‘계속 입원’이라는 답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선생님, 저 다른 것보다
불안이 너무 심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정신과 협진을 받으면 안 될까요?"
“좋아요. 정신과 쪽에 이야기해 둘게요.
도움이 될 거예요.
그리고 만약 코코 님이 정말 심각한 상태였다면,
퇴원하신다 해도 저희가 붙잡았을 거예요.
지금 퇴원해도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건,
정말 괜찮기 때문이에요. 우울하거나 무서울 땐 동물 영상 같은 거 보세요. 고양이 영상 얼마나 힐링되고 좋은데요.”
그 말을 끝으로, 교수님은 회진을 마쳤다. 그 후 정신과 전공의가 와서 짧게 상담을 해줬지만, 임산부인 나는 복용할 수 있는 약이 제한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는 굳이 부작용까지 감수해 가며 약을 먹을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결국, 약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입원은 혈압약 하나를 처방받으며 이틀 만에 끝났다. 담당 교수님은 웬만하면 약을 잘 안 주시는 분인데, 이번에는 약이라도 들고 나와 다행이었다. 임산부가 약을 먹는 건 분명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땐 오히려 먹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심장내과 외래가 하나 더 생겼다.
번거로울 줄 알면서도, 처방전을 손에 쥐고 병원을 나오는 길의 안도감이 더 컸다.
그 밤, 불안은 나를 데리고 병원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