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당일.
내 수술은 전날 잡힌 응급 건이라 정해진 시간이 없었기때문에 아침부터 소변줄을 찬 채로 불려가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다 오전 열시쯤 수술 시간이 잡혔고, 곧바로 수술장으로 향했다.
일반 산부인과에서도 소파술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수술장 풍경쯤은 익숙하겠지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대학병원의 수술실은 규모부터 압도적이었고 교수님과 마취과 의사, 인턴, 간호사 등 수많은 인력이 내 수술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척추마취가 들어가면서 배 아래 감각이 사라졌고 그 와중에 정신은 또렷했다. ‘이렇게 의식이 있는 상태로 배를 열다니. 진짜 신기하다.’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수술장에 흘러나오던 세븐틴 메들리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간호사 중 한 분이 캐럿인 게 틀림없다.)
내 배 쪽에는 시야 가림막이 쳐져 있었지만, 칼이 복부를 가르는 느낌과 똥끼가 마지막까지 밖으로 나가길 거부하며 움직이는 감각은 마취를 뚫고도 생생히 느껴졌다. 결국 간호사가 똥끼를 눌러 아래로 유도했고 — 그 순간.
응애————
처음 듣는 아기의 울음은 여리고 가냘플 줄로만 알았는데, 내 생각하고 정반대로 걸걸하고 우렁찼다.
‘아 역시 우리 딸은 시작부터 다르다.’ — 얼떨떨한 상황 속에서도 그런 생각이 스쳐서 웃음이 나왔다.
똥끼의 작은 얼굴을 내 볼에 잠시 맞대며 짧게나마 인사를 하고 나는 봉합을 위해 수면 마취에 들어갔다. 그렇게 내 출산을 위한 제왕절개 수술은 마무리되었다. 수술을 앞두고 몇 임신중독 산모들의 슬픈 사례가 머리속에 계속 떠올랐었다. 더구나 나는 크녹산도 아스피린도 미리 끊지 못한 산모라 출혈이 걱정이었는데 수혈 없이, 별일없이 수술을 마칠 수 있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똥끼는 37주를 채우진 못했지만 다행히 자가호흡이 가능해 NICU 대신 신생아실로 갔다. 하지만 내 혈압은 수술 후에도 180 아래로 떨어지질 않아서 모자동실은 안 하고 우리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봐주시기로 했다.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은 건 다행이었지만, 신생아의 가장 찰나 같은 순간을 오래 보지 못했다는 게 시간이 지나니 두고두고 아쉬워서 마음에 남는다.
며칠 후, 혈압이 안정되어 퇴원했고 지금까지 치열한 육아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워낙 다사다난한 난임 기간을 보낸지라 출산만 하면 육아는 완전 껌일 줄 알았는데 — 신생아 육아는 또 완전히 다른 세계더라. 하지만 이 난임 기록에서는 그런 이야기까지는 다루지 않고 이 쯤에서 마무리하려 한다.
사실 글을 쓰는 데 그리 오래 걸리는 편이 아닌데, 유산과 난임기록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 쓰는 작업이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기억을 끄집어올려 쓰다 울컥하고, 중간에 힘들어서 며칠을 한 자도 못 쓰기도 하고. 그럼에도 끝까지 써냈다는 사실이, 어떤 이력서보다 내게는 더 큰 증명 같다. 내 인생의 한 시대를, 어쨌든 내가 스스로 마무리 지었다는 뭐 그런.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준 누군가가 있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겠지. 나는 운 좋게 여기까지 왔지만, 내게도 아직 여정을 끝내지 못한 친구들이 있다. 포기하려 해도 포기되지 않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내 친구들의 여정도 당신의 여정도 조금 덜 아프길 바랄 뿐이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에게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의 숨 하나라도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