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오면서 출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젖병소독기를 당근으로 들이고, 손수건과 신생아 바디수트를 미리 세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 초기에 가입한 태아보험에서 전화가 왔다. 17~21주 고위험산모실 입원비(산모 특약) 청구 건으로 현장 조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진단서 다 봤을 텐데… 뭘 더?’
태반조기박리는 보험금이 큰 사고라, '돈 주기 아까웠나 보다.'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가 지금 입원 중인 것도 아닌데, 나와 지금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해서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가려낸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나는 켕길 게 전혀 없으니 일단 만나자고 했다.
손해사정사와의 만남은 별로 길지 않았다. 새롭게 전달할 정보도 없었으니까. 그는 내게 본인이 내 과거 산부인과 기록을 모두 열람해도 되냐고 물어왔다. 임신과 무관한 기록까지 보겠다는 말에 불쾌했지만, 괜히 거절했다가 찔리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다 보세요” 하고 웃어넘겼다.
‘시험관에, 유산 이력에… 병원 기록이 어마어마할 텐데. 다 뒤져보려면 고생 좀 하시겠네.’
며칠 뒤 손해사정사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그게 문제가 있었네요."
"네?"
"가입하실 때 유산 이력을 고지 안 하셨대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전 가입할 때 시험관이고 유산이고 다 말했어요."
어이가 없었다. 유산 이력이 있으면 가입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애초에 설계사에게 전부 말했고 “결격 사유 없다”는 답을 듣고 가입했으니까.
보험사는 내게 큰 인심이라도 쓰는 양 이번 건은 보상해 주지만, 앞으로 동일 사유로는 입원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원래는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가 정말 황당했다. 죄송한데 보험금 안 받아도 좋으니, 그런 일 안 겪고 싶거든요? 억울하고 기분이 상했지만, 굳이 더 싸워서 애꿎은 혈압을 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네” 하고 끊으며 대화를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나는 최대한 평온한 임신 후기를 보내고 싶었다.
정말로 평온한 임신 후기를 보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자잘한 파문이 계속됐다. 소량의 출혈이슈는 툭하면 있었고, 그때마다 서브 병원에 달려가 확인하고—안심하고—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소변검사하러 갔다가 종이컵 가득 선홍색 혈뇨를 쏟아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평범한 방광염으로 판명 났지만 ‘또 무슨 일’이라는 공포는 늘 먼저 왔다. 서브 병원 선생님은 나의 “외줄 타듯 버티는 심정”을 알아주시며 자주 다독여 주셨다.
"복코코씨. 37주부터면 정상 출산으로 보거든요.
대학병원 교수님께 출산일정을 좀 빠르게 앞당겨 달라고 한번 말씀드려보세요. 지금 코코 씨 혈압도 너무 높고, 웬만하면 빨리 빼는 게...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엔 좋아 보여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꼭 한 번 여쭤볼게요."
보통 아기에게는 엄마 배 속이 제일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내 배 속이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확신이 없었다. 나는 교수님께 이른 분만을 요청드렸다.
“분만은 39주에 돕겠습니다.
38주는 학회로 제가 없고, 37주는 너무 이릅니다.”
그날도 혈압수치가 150이 훌쩍 넘게 나왔는데 교수님은 모든 게 다 좋다고 하시며 분만은 39주에 하시겠다고 못 박으셨다. 뭐가 좋다는 걸까. 고위험 산모만 보는 대학병원 교수님 입장에서 나 정도면 상태가 좋은 임산부인 걸까. 로컬병원 의사들이 나를 보는 것과 대학병원에서 나를 보는 것의 온도차는 너무 커서 늘 내가 어떤 임산부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쨌든 대학병원에서 분만을 하기로 한 이상 교수님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39주 분만. 나는 그래,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하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집에 왔다.
그러나 늦은 분만을 추구하는 교수님께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하셨다.
“집에서 매일 혈압을 재다 160/110 중 하나라도 반복해서 넘으면 즉시 오세요.”
평소엔 그 경계 치를 찍어도 반복해서 나오진 않았기에 응급실까지 갈 일은 없었다.
'정말 이러다가 39주에 분만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역시나 내 임신 여정은 그렇게 원만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날이었나. 친정에서 예능을 보며 혈압을 쟀는데 수축/이완기가 둘 다 160/110이 넘는 미친 수치가 찍혀 나왔다. 흥분도, 긴장도 없던 평온한 상태였다. 혈압계에 오류가 있나 하고 여러 번 다시 재봤는데도 비슷한 수치가 계속 찍혀 나왔다. 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 나는 분만장에 전화를 했다.
"일단 분만장으로 와 보세요."
그 말에 분만장으로 바로 달려갔다. 흥분한 내 혈압은 분만장에서 또 180을 찍었고 나는 고위험산모실로 다시 격리되었다. 이제는 뭐 놀랍지도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혈압이 170을 넘나드는 동지들로 고위험산모실은 가득했다.
"37주 0일에 제왕절개를 실시합시다."
원래 내가 아무리 빠른 분만을 원해도 39주를 고집하셨던 우리 교수님께서 이른 분만을 하자고 먼저 제안하셨다. 이제는 내 혈압이 우리 교수님이 보시기에도 도저히 무시할 수치가 아니었나 보다.
그래. 이제 고위험산모실에서 2주 정도만 더 버티면 되겠구나. 이 정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기다리며 인내하던 어느 날이었다.
"그냥 내일 꺼냅시다."
"네?"
그냥 내 상태를 체크하러 회진 오신 줄 알았던 어느 날, 바로 다음날 아이를 꺼내자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미 2.8킬로로 무게도 충분하고요."
그 외 말들은 놀라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보니 내 소변에서 단백뇨가 조금씩 검출되고 있었다. 임신 내내 두려워하던 임신중독증이 문턱을 넘은 것이다.
오래 기다리던 분만 일정이 잡혔지만,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내일이면 36주 5일. 37주에 닿지 못한 조산이었다. ‘이틀이면 37주인데…’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배부른 소리였다. 39주를 고수하던 교수님이 36주에 낳자고 하실 땐 ‘지금 낳는 득이, 미루는 실보다 크다’는 뜻일 것이다. 임신중독증은 그만큼 무서운 병이니까.
전날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똥끼를 드디어 만나는데도 얼떨떨하기만 했다. 산만한 배를 내려다보았다. 이젠 움직임 하나하나가 배 위로 선명했다. 어느새 똥끼가 손가락을 위로 뻗었는지 배 위에 뾰족한 무언가가 솟았다. 나는 그 자리에 조심스레 손가락을 맞대었다.
너는 알까. 우리가 내일 만난다는 걸.
아마 상상도 못 하고 있겠지.
너무 놀라진 않기를. 내일 만나자.
그렇게, 옅은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