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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까대기 주혁이(2)

1부. 일하는 사람들

by 김현정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평일의 오전에는 마트가 비교적 조용하다. 그런 날에는 직원들이 더 많은 날로, 드문드문 있는 손님들의 눈을 피해, 하나 둘 모여서 잡담을 하곤 했다. 눈치가 보이던 나는 내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 장을 보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놀러 온 사람들.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인 이곳의 마트는 넓었고, 쾌적했다.


”주혁이! “

”어! “

”오늘 쉬는 날 아니야? “

”쉬는 날. “

”장 보지도 않는 놈이 여긴 왜 왔대? “

”여기가 편해서. “

”미쳤구먼. “


주혁오빠는 쉬는 날임에도 마트에 왔다. 사복을 입고 마트 구석구석을 배회하고 있었다. 옷만 다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고, 빈 물건들을 보면서, 인혁오빠에게 물건을 들고 내려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

”응- 손님은? “

”평일 오전이라 없어요. “

”그래 “


주혁오빠는 나에게도 짧게 말을 건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러 갔다. 기껏 쉬는 날에 왜 이렇게 마트로 와, 사람들과 말을 나누고 있는지 몰랐다. 그래도 일하는 곳이 아니던가? 사람들이 좋고 분위기가 좋다지만, 마트에 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밝게 웃고 있는 오빠에게서는 진득한 땀냄새 대신 좋은 향수 냄새가 났다.


”주혁이는 집이 없대.“

”네? “

”집에서 쫓겨났다나 봐. 마트일 한다고 했다가. “

”왜요?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

”4년제 국립대, 전액 장학생. 대기업도 다녔는데, 그만두고 이거 하잖아. 주혁이네 부모님이 뒤집어져서 난리 났었어. “

”아.. “

”그러고는, 쉬는 날에도 여기 와서 저러고 있다. “

”누나- 내 욕하는 중이지? “


커피언니를 보고 주혁오빠는 나에게로 왔다. 속닥이면서 자신을 향한 두 눈동자가 따가웠던 모양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가온 주혁오빠의 두 손에는 시식할 음식들이 가득 있었다. 큰 두 팔에 안고 있는 먹거리들은 뷔페를 연상하게 했다.

주혁오빠의 이야기는 의외였다. 당연히 학창 시절에 놀다가, 할 일이 없어서 이곳에 왔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커피언니의 이야기는 과장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결코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욕은 무슨- 그냥 네 이야기했다. “

”했네 했어. 뭐 했대? “

”너 인마!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 가서, 때려치우고, 이 일하고- 쉬는 날에도 마트 와서 서성인다고 했다. 왜! “

”정말이야? “

”네. “

”사실이네. “

”정말요? “

”정말 요는 무슨 말이야. 믿기지 않아? 좋은 대학에서? 좋은 직장에서? 아니면 다? “

”다요. “

”응 – 다 맞아. 나 공부 잘했어. 좋은 회사도 다녀봤어. 표정이 딱 우리 부모님 표정이다? “


나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어그러진 표정이었다. 말이 되지 않았다. 유독 주혁오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여름에는 창고에 들어가서 물건들을 빼오면서 땀에 절여진 모습을 봤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기가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던져버리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빠는 젊었고 어렸다. 구태여 모든 것을 해봤다 듯한 표정으로 이곳에 머물고 있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 이제 간다-“

”어디가? “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민폐지. 이제 놀러 가야지. “

”어디 가게? “

”바다! “


주혁오빠는 그렇게 마트를 나섰다. 그의 뒷모습은 언제든지 돌아올 집을 나서는 모습이었다. 주혁오빠는 마트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마트의 직원들이 가족이었다. 그는 편안해했다. 주혁오빠의 이야기는 궁금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나와는 다른 사람 같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날이 지나고도 주혁은 늘 팔자걸음에 껄렁대는 모습과 함께, 주스를 한 두 캔 씩 일부러 부서뜨렸다. 그리고 갈증을 달랬다. 사계절 내내 오토바이를 타면서 땀내를 풍기고 있었다. 늘 허허 웃거나, 마트 천장을 보면서 멍하게 서있는 사람이었다.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어린 내가 봐도 그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그가 어려 보였다.

주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도 아이들과 노는 것 대신, 쉬는 시간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공부를 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높은 대학보다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그리고 졸업을 하더라도 취업이 잘되는 대학과 과가 목표였다. 그는 그렇게 성실하게 꾸준하게 성과를 이루어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업도 하였다. 대기업의 로고가 박힌 명함을 받았고, 가족들은 좋아했다. 부모님께는 생활비를, 남동생에게는 용돈을 주면서 집을 이끌어간 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몇 해가 흐르고 나자, 한없이 성실한 생활이 부담으로 느껴졌다. 힘들었던 것이다. 자신의 성실함은 성격처럼 보였다. 그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풀린 모습을 보면, 변했다며 다시 성실해져라고만 했다. 피곤한 모습을, 지친 모습을 알아주지 않았다. 가족들 마저 그런 그를 다독여주고 위로해 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회사를 그만 두면 어쩌나, 용돈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속이 빤히 보이는 말들만 했었다. 주혁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자신의 노력은 그저 성실한 사람이고 한없이 책임감 많은 사람이라는 것만을 강조하면서 당연스럽게 여겨지고 있었다. 당연스럽게 노력하지 않는 그는 잘못된 사람으로 보았다. 그는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마냥 놀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몸을 쓰는 일을 해볼까 했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일. 단순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일을 그만둔 자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일은 그만뒀지만, 집보다는 밖을 배회하는 일이 더 많았다. 밖을 배회하던 어느 날, 친구집에 놀러 가기로 하고, 친구집 근처의 마트를 와서 집들이 선물거리를 하나 사려했다. 그곳은 깨끗하고 넓었다. 일하는 사람, 장 보는 사람들의 활기를 느꼈다. 조명이 밝았다. 천장은 높았다. 탁 트인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을 보다가, 높다란 물건을 쌓고 움직이는 남자들을 봤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물건을 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채워놓는다. 무덤덤하게 깊은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간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주혁도 예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빈 물건을 다 채운 꽉 채워진 물건이 마음에 들었다. 조용히 등장했다 사라지는 이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주혁은 이 마트에 오게 되었다. 마트에서는 손이 급했다. 물건은 빨리 빠지는데, 인력이 부족했다. 빼곡하게 쓰여진 이력서가 부담되었지만, 성실함이 증명되는 이력서를 들고 온 주혁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주혁은 마트에서 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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