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하는 사람들
출근하는 길은 보통 늦은 아침이다. 바쁘게 출근하던 이들을 전부 보내고, 느린 거북이마냥 뉘엿뉘엿 나온다. 바글바글 했을 버스는 사람들을 회사로 옮겨주고 난 뒤, 텅 비어 있다. 나는 빈 버스에서 조용하게 음악을 들으면서 마트로 향했다. 더운 여름이어서 그런지 그 빈 공간이 더 느릿하게 보이고 고요하게 보였다. 좁디좁은 직원 문. 작은 철문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는 일을 시작한다. 지글거리는 듯한 저 철문 손잡이를 잡고 싶지가 않았다.
”동글이! “
”안녕하세요. “
더운 여름. 이글거리는 도로를 걷는 순간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지글거리는 커다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 주혁 오빠가 보였다. 주혁 오빠는 키가 컸다. 짙은 쌍꺼풀이 있었는데 검은 피부 덕에 더 이국적으로 느껴졌다. 두 뺨은 짙은 사춘기를 보낸 흔적이 남아있었고 머리는 늘 덥수룩해서 외모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이 더운 여름에도 오토바이와 함께 코디한 듯한 옷을 보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덥지 않으세요? “
”응? “
한여름에 더운 옷차림과 더불어 오토바이 위에 올려둔 헬멧을 가리켰다. 덥수룩한 머리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은 저 헬멧 때문이겠지.라는 생각에 새삼 몸이 주혁오빠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안전제일! “
씩 하고 웃으면서 주혁오빠는 땀에 젖은 머리를 털고 작은 철문의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뜨겁지는 않을까, 하면서 앞에 서성이던 나는 아무렇지 않게 손잡이를 잡고 들어가는 주혁오빠 뒤를 따라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이모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내가 일하는 곳으로 갔다. 시식대를 밀면서 인사하는 터라, 목소리만으로는 닿지 않아서, 고개를 까닥이면서 지나갔다. 이모들은 활기찼다. 마트의 내부는 시원했다. 살 것 같았다. 더운 여름에 이렇게 에어컨이 잘 나오는 곳 아래에서 일하는 것도 축복이라는 엄마의 말이 귀를 스치는 듯했다.
”주혁아! 여기! “
”나 물건 내려줘야 해! “
”알았어! 기다려! “
주혁오빠는 음료, 주류 코너의 까대기를 담당하고 있었다. 껄렁껄렁하게 걸어오는 팔자걸음이 특이했다.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고 허리는 구부정한 모습이 이상하게 허세가 담겨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상했다. 왜 저렇게 걷는 건지. 주혁오빠의 걸음걸이를 빤히 보고 있었다. 주혁오빠는 팔레트에 물을 잔뜩 실고 오고 있었다. 주류와 음료들이 비어있는 것을 보면서 체크하고 있었다. 주혁오빠 옆에는 인혁오빠도 함께 있었다. 둘은 항상 같이 다녔다. 마트 내에서는 혁이들이라고 부르면서 이모나 언니들이 먹을 것을 자주 챙겨주기도 했다.
”주혁아! 너 오늘도 지각했지?! 내가 말했지. 너 또 늦으면-“
”죄송해요. 막혀서 그랬어요. “
”이 여름에? 그것도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놈이? “
”내가 오늘은 버스 타고 왔으면 어쩌려고요? “
”버스 탔어? “
”과장님, 거짓말이에요. 오늘 오토바이 타고 왔어요! “
”야! “
과장과 인혁, 주혁은 그렇게 음료 코너 앞에서 장난치며 웃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혁과 주혁만이 장난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속을 태우고 있는 과장의 표정은 새빨갰다. 과장도 그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놓고 미워하기에는 그들의 행동이 천진난만하여 화내는 이만 무안하게 만들 뿐이었다.
”주혁오빠, 점장님 아들이에요? “
”그럴 리가. “
”그런데, 매번.. 괜찮아요? “
”혁이들이 사랑받아. “
커피언니에게 슬쩍 물어봤었다. 주혁오빠와 인혁오빠의 장난스러운 태도와 지각을 일삼는 행동을 보고자 하니, 점장님 아들이 아니면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입 밖으로 나왔다. 커피언니와 나와 속삭이며 이야기하는 동안애도 혁이들은 능청맞은 움직임으로 과장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젊은 애 둘이가, 그것도 힘 좋은 애들이 오랫동안 일 하잖아. 물건도 무전 치기 전에 척척 알아서 깔고. 쉬는 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잘 쉬었다가, 까대기 잘 치니까. 능청스럽게 화도 안 내고. “
”다른 사람들은요? “
”음료 코너는 까대기 치는 거 힘들어. 한겨울에도 땀범벅이야. 저긴. 그래도 혁이들 오고는 저기 코너 까대기는 문제 없어졌지 뭐. 가끔 본인들 담당 아닌데, 일손 남으면 창고에서 다른 물건들도 내려주고 해. 저렇게 보여도 애들은 착해. “
의외로 성실하게 일하는 혁이들이었다. 그중 주혁오빠는 인혁오빠에 비해 사람이 크게 말이 없고, 일을 잘하는 것에 칭찬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물과 음료, 주류가 빨리 빠진다. 특히 시음행사가 들어가기 시작하면 물건 빠지는 속도는 엄청났다. 가만히 서서 시음을 하고, 물건들이 빠지면서 내 머리 위에 있던 물건들이 내 허리쯤 내려올 때. 항상 주혁오빠가 보고 물건을 채워줬다. 물건을 채울 때마다 그들은 머리부터 등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상반신만 물에 빠진듯한 모습이었다. 가끔은 팬티까지도 젖었다며, 이모들에게 투정 부리기도 했다.
”동글아.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마. “
”네? “
”나 창고 갔다 온 지 얼마 안 됐어. 안 불쌍해? 너도 좀 쉬어. 가만-히 서있어도 물건 잘 빠져. “
”아.. “
”야, 열심히 일하는 애한테 시비 거냐. 가자. “
인혁오빠는 물건이 빠지는 속도에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장난스런 그 손 끝은 가벼웠고 악의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런 인혁오빠를 달래면서 끌고 가는 건 주혁오빠였다.
주류와 음료를 반반 섞어서 채워오기도 했다. 그렇게 한번 음료들을 채우고 나면, 물건들 위 랙에서 숨어서 쉬곤 했다. 선반은 생각보다 높이까지 있었다. 올려다보면 밝은 조명 바로 아래까지 있어서, 올라간 오빠들은 허리를 숙이고 움직이는 걸 겨우 볼 수 있었다. 특히 음료 코너 쪽의 선반들은 물건을 진열해 놓은 칸 위에도 묶여있는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 틈을 두어 쉬곤 했다.
”망봐. “
”올라가! “
캔 박스를 선반 위로 올렸다. 그리고 일부러 한 두 캔씩 뚫어 손상시켰다. 서로 캔을 망가트리면 어쩌냐면서 능청스럽게 연기하고는. 입에 털어 마셨다. 캔의 옆구리가 터져있었다. 가끔 그렇게 먹곤 했다. 그 모습에 놀라서 커피언니와 다른 이모들을 번갈아 보자면, 힘들게 일하니까 저렇게 한 두 개정도는- 눈감아주자는 분위기였다. 가끔 진상손님들에게 당해 울 것 같은 언니들 곁으로 가서 좋아하는 음료를 열쇠로 터트려서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새어 나오는 음료를 받아먹으며 허둥대다 다 마신 언니들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혁이들은 선반 위에서 낄낄대며 웃고 게임도 했다. 내려와서 와인코너의 언니들과 놀기도 했다. 오빠들은 마트 내에서 또는 창고에서 노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기보다 시간 때우러 오는 듯한 한량처럼 느껴지면서 그들과 보이지 않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마트에 까대기 치는 오빠들 있거든. “
”까대기? “
”그 팔레트에 물건 싫어서 나르고, 물건 진열해 주고 그래. “
”힘들겠네. “
”힘들지. 주스랑 물, 술 같은 거 담당들이거든. 그런데 막 마트 물건 일부러 손상시켜서 먹고, 놀고 그래. 양아치 같아. “
”그래? “
”한 오빠는 막 오토바이도 타고 다니는데, 왜- 그 폭주족 같은 오토바이. 그거 타고 다니는데 좀 무서워. 문신도 있어! “
”그거 비싼 오토바이 아니야? 돈이 어디 있어서. “
”오토바이 좋아해서, 돈 모아서 샀다더라고. “
”돈 잘 주나 보네. 그 돈을 모아 야할 텐데. 젊은 사람들이 생각이 없어."
"그래도 착해. 착하긴 해."
마트에서 일하는 이야기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했다. 하루종일 서있다가 돌아오고 나면 너무 피곤한지라.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내 일과를 알릴 틈이 없었다. 오늘은 오빠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들이 좋지 않았다. 마트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이모와 언니들을 만나고, 직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감을 나누었지만, 당최 혁이들에게는 정이 가지 않았다. 불량스러운 사람들. 학창 시절에 좀 놀았을까, 그래서 마트에서 저렇게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보이는 것들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그들을 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