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하는 사람들
”왜 여기서 일하냐고! “
”집에 가서 이야기해. 지금 일하는 중이잖아. “
"이것도 일이라고-"
얼굴이 하얗고 야리야리한 몸을 가진 이모였다. 늘 고운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아무렇게나 뒷머리를 잡아 올림머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옆머리의 잔머리 하나하나까지 빗어 곱게 물결 곡선으로 고정하여 우아한 느낌으로 정돈된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만진 듯한 고운 머리를 한 이모는 늘 유니폼이 어색한 사람이었다. 몸짓은 항상 여유로웠다. 느리고 답답하지 않게 하늘하늘한 움직임이 고운 이모였다. 이모는 메밀차를 팔고 있었다. 이모는 항상 웃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앞에는 얇은 테 안경을 낀 마른 중년의 남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뭐가 부족해서, 이런 곳에서 일해! “
"그만해요."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 쪽팔리게 이러지 말고."
”이런 곳?! 쪽팔려?! 당신 뭐야?! 떳떳하게 돈 잘 벌고 있는 사람들한테 시비 거는 거야?! “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에 쉬러 가던 간장 이모님은 메밀차 이모 곁에 서있었다. 그러다가 남자의 말에 화를 냈다. 곧 보안팀에서도 사람들이 왔다. 무전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온 사람들은 쉬이 말리지는 못했다. 메밀차 이모의 주변은 북적이고 있었다. 꽤나 시끄러웠다. 일하던 사람들도, 장을 보러 온 사람들도, 놀러 온 사람들도 둘러둘러 구경하고 있었다. 당황하는 이모는 사람들에게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자신을 당황케 하는 사람은 남편임을 소개했다. 다급한 상황에서도 꽤나 정중한 소개였다.
”여기도 엄연히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에요. 여기서 말할게 아니고 집에서 말해요. “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 줄 알아! 김교수가 나보고 힘드냐면서-“
”그러니까, 나중에 이야기하자고요. 오늘은 강의 없어요? “
남자는 시계를 들어 보였다. 반질반질한 갈색 가죽에, 금빛 테두리가 둘러져 있는 평범한 디자인의 시계였다. 하지만 어디인가 모르게 여러 해를 지나면서 길들여진 시계에는 애정이 묻어나 보였다. 가죽의 결이, 햇빛에 잘 그을려 세월의 흔적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아, 집에 가서 이야기하지. 8시 전에는 들어갈 거야. 저녁은 먹고 들어가지. “
다급하게 돌아가는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흠칫했다. 당황하는 기색도 보였다. 그를 얼굴을 붉히며 주변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 와중에 밥이야기라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메밀차 이모는 알겠다며 대답을 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었다. 이모의 고개는 아주 자연스럽게 허리 아래로 굽히고 굽혀 말리고 있었다.
”남편이 교수래매. “
”근데 왜 일한데? “
”집에 있기 갑갑했나 보지. “
”사모님이네? “
”안 그래도 말하는 거 고상하더라. “
순식간에 이야기는 퍼졌다. 메밀차 이모님은 일을 하고 싶어 마트에 왔다고 한다. 교수인 남편에게는 별도의 말을 하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마트에 장을 보러 온 동료 교수가 메밀차 이모를 알아보고는 남편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두 눈으로 확인을 하겠다며, 집이 아닌 마트로 온 것이었고, 확인해 보니 기가 차서 소리를 질렀다는 뻔한 이야기였다.
”일하는 거 힘들지 않아요? 사람들도 엄청 무시할 텐데. “
”왠 걸요. 재밌어요. 사람들도 구경하고, 좋아요. 사는 거 같아요. “
”이전에는 뭐 했는데요? “
”주부였어요. 계속 “
”주부이기 전에는? “
”대학원생이요. “
”어머, 대학원까지 나왔어요? “
”네 “
메밀차 이모는 마트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 편이었다. 다만 깊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은 아니었다. 메밀차 이모가 싫다서라기보다, 사람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구구절절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법이 없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기만 했다. 물어보지 않는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의견을 물어보는 말을 하면 늘 다 괜찮다고만 하면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이모에게 시끄러운 일이 생겼고,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인가 보다- 라며 물어보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모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묻는 말에는 다 대답해 주었다. 대단한 비밀이 아니라듯이,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메밀차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간결하면서도 길었다. 국립대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대학원을 가서 석사, 박사과정을 하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 문학이 좋아서 글을 쓰던 메밀차 아주머니는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남은 것은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 교수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직장을 가져보려 하니 마땅치가 않았다. 학벌만 있고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젊은 날의 학위는 나이 든 사람에게는 그저 케케 묵은 종이조각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일을 하려 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남편이 교수라고 하면 왜 일을 하려고 하냐며 오히려 집에서 고상히 쉬라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취미를 가져보려 했다. 딱히 관심을 가지고 해 볼 만한 것은 없었다. 다시 공부를 해보려고 했지만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다. 더 이상의 공부와 취미는 이모에게 삶의 동기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과는 이야기의 단절로 외로움을 주었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를 하며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개인의 성취감. 나라는 사람. 무언가를 할 줄 알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
집안 울타리 말고는 타인과 엮이는 사회집단에 경험이 없던 메밀차 이모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할 수가 없어서 우울했다 한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걸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활기가 띄는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이력서에는 대학교까지만 쓰고, 남편은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데, 생활비를 벌어볼까 하고 왔다며 일하게 해달라고 했단다. 그저 그런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두고, 아이를 다 키운 여자의 취업면접은 간단했다.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이름과 사는 집의 거리, 나이만 볼뿐이었다. 그렇게 메밀차 이모는 마트에서 ‘나’라는 사람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메밀차 아주머니는 몰래 일하고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시간은 행복했다.
”왜 마트일이셨어요? “
”마트는 사람이 참 많이 오가잖아. 외로울 틈이 없어. 그리고 활기차. 물건 가격을 보면서 심각해지기도 하고, 할인된 가격에 설레하면서 물건을 담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어. 그렇게 사람들을 보다가 내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살짝살짝 말을 걸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았어. “
”힘들지는 않으세요? “
”매일 출근할 곳이 있어서 좋고, 사람 구경하느라 바쁘고, 좋아. “
”진상손님도 있잖아요. “
”그런 사람들도 재밌어. 이런 사람도 진짜로 있구나. 하고. “
이모님은 웃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티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트 일을 하기 전까지의 힘듦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잘 털어놓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까지 물어봐주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이모는 설레하고 있었다. 늘 인자하게 웃으면서 여유롭던 몸짓이 타고난 성품이었다기보다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해서 나오는 모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고학력자. 직업 좋은 남편을 가진 여자. 무엇 하나 빠지지는 않지만, 마음의 허공이 컸던 메밀차 이모. 역시나 나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공부를 했고, 학력을 다 갖추고 이루었다. 누구에게나 쉬이 소개할 수 있는 남편과 잘난 자식들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한 여정지로 마트 일이라는 것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물어볼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동글이는 좋아하는 시인이 있니? “
”시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
”그래도 공부하면서 여러 시를 접했잖아. 그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어? “
”모르겠어요, 이모는요? “
”나는 한용운. 아니? “
”님의 침묵이요? “
”맞아. “
”승려이자, 독립운동가라고 배웠어요. “
”맞아. 일생이 참 파란만장하고 자신에게 항상 솔직하고 드센 사람이었어. 그런데 시는 참으로 부드러운 여성적인 어조로 노래한단다. 그 시가 참 아름다워. “
”그래요? “
”응 “
메밀차 이모님은 가끔 좋아하는 시 구절이 있다며 시를 읊기도 했었다. 수능에서 배운 시가 아니라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 이모님들은 가끔 그런 메밀차 이모를 보면서 일부러 유식하다고 자랑하는 거라면서 흉을 보기도 하였고 있어 보인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그 시를 안다며 유명한 구절을 함께 읊기도 했다. 어린 시절 공부하며 즐거웠던 이야기를 하는 이모도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라며 가요 대신 시구를 읊던 시대의 낭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다들 과거에 신념이 있고, 낭만이 있고,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마트에서 일하면서 퍽퍽한 일상 이야기만 하고, 삭막한 뉴스이야기에 단순한 말만을 반복하던 사람들에게는 반짝이던 때를 품고 있었던 이들이었다. 메밀차 이모가 던진 시를 시기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다. 시 한 편이, 시 구절 하나가 잃어버린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였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상기시켜 주었다.
메밀차 이모는 시인이었다. 여러 시대의 여러 나라의 시인들의 시구를 읊는 이모는 우리에게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