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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Dec 09. 2024

(12) 간호사 -1

1부. 일하는 사람들


"이번에는 어디?"

"저기 ㅇㅇ동에 ㅇㅇ마트. 이번에는 맥주."

"여름이니까 잘 나가겠네."

"근데 맥주 시음하고 팔면, 진상 많대."

"그럴 수 있지."

"언니가 시음하는 맥주캔 절대 뺏기면 안 된다고 했어."

"아직 언니야? 사장님 아니고?"

".. 사장님 말고 언니라고 하랬어." 

    

방학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때와는 달리, 과목별 시험이 다 끝나는 순간이 방학의 시작이었기에, 방학에 대한 설렘도 없이 바로 일이 시작되었다.      


 ”동글이 언제부터 방학이니? “

 ”이번에 시험들이 다 빨리 쳐서, 다음 주면 바로 일 가능할 것 같아요. “

 ”그래- 그럼 이번주 주말에 잠깐 사무실 나와서 유니폼이랑 팸플릿 받아가, 지점하고 알려줄게 “     


 나의 방학은 늘 이런 패턴이었다. 시험이 끝나면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잠을 자고 생활할 집은 존재하지만, 다음학기의 생활을 위해서 해야 하는, 당연한 다음 스케줄이었다. 그렇게 나는 방학을 맞이하며 마트에 나갔다. 커피언니와 일을 하고부터는 한 마트에 귀속되어 있지 않았다. 이동할 수 있는 내의 동네에 대형마트들을 찾아갔다. 제품만 다를 뿐, 일은 같았지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기는 힘들었다. 잠깐잠깐 스쳐가는 나는 그들의 분위기를 따라갈 수도, 낄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자, 손님이 맥주 조금만 줬다고, 더 달라고 해요. 그럼 어떻게 할 거예요? “

 ”음.. 손님-아까 드시지 않으셨나요? 제가 한 바퀴 더 돌고 오시면 드릴게요? “

 ”하아... 드려야지! 싸울 거예요?! 손님 하고?! “

 ”죄송합니다.. “

 ”자, 아영 씨는. “

 ”네? “

 ”맥주 어떻게 할 거냐고. “

 ”더 드려요. “

 ”그래! 더 주면 돼! 싸우지 말라고. “    

 

 여름철의 맥주행사는 각 맥주 브랜드별로 들어올 수 있었다. 보통 한 업체만 들어가는데, 여름철에는 2곳에서 3곳까지 들어올 때도 있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한 언니가 같이 맥주시음행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던 찰나에 해당 마트의 과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른 시험 같은 것이었다.    

 

 ”그럼, 캔맥주 째로 달라고 해, 어떻게 하면 돼요? 아영 씨? “

 ”절대 뺏기지 않습니다! 시음잔에 더 부어드립니다. “

 ”시음잔은 감칠맛 나서 안 되겠대, 그냥 달래! 어떡하면 되지? 희영 씨? “

 ”드릴 까요? “

 ”말이라고 해요?! 안돼! 무조건 안돼! 그건 사고야! 시음맥주 캔을 통째로 줄 거야?! 무료자선행사해요? 지금?! 잔에 더 부어 주되, 캔은 사수해요. 알겠어요?! “     


 과장은 화가 많았다. 우리를 보며 답답해했다. 우리가 많이 모자란 듯 다그쳤다. 이렇게까지 화를 내면서 고객들 앞에서 핀잔을 주어야 할까 했다. 시음행사 시작하기 전. 손님들은 우리를 보면서 수군거리면서 지나갔다. 손님들의 시선과 과장의 모욕적인 언사가 너무나도 싫었다.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것들만 들어와 가지고. “


처음에는 좋게 생각했다. 어린 사람들이 와서, 맥주 시음을 하니,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마트에서 사고가 날까 봐 우리를 엄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우리를 대한 과장이 별로라고 생각했다.      


 ”거기 마트 과장, 히스테리 엄청 부린다더라. 특히 외부업체에서 들어온 파견직 갈구는 게 그 사람 취미라고 할 정도더라. 그냥 그 과장 지나갈 때마다 웃으면서 넘겨. 알았지. 동글아? “     


 사장언니의 말이었다. 출근 직전에 말해준 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심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대놓고 무시할 줄은 몰랐다. 대들고 싶었고, 무시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같은 직원으로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파견직일지라도, 우리도 손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왜 우리를 그렇게 무시하는 것이냐 물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게 할 일인가.. “

 ”그러게요. 어렵네요. “

 ”반가워요. 내가 언니 같은데 편히 말해도 되죠? “

 ”네. “     


 희영언니는 원래 간호사였다. 대학병원 간호사.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나와 부속병원에도 들어간. 그런 자리를 박차고 마트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파견직 일을 한지는 3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언니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취업이 보장되는 좋은 학과를 갔다. 그리고 알아주는 큰 병원의 간호사 언니가 무엇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힘들었어. 그냥 갈굼도 그렇고. 나 보면 알잖아. 내가 좀 답답해. “

 ”아니에요. 저는 그런 거 못 느꼈는데요. “

 ”대학병원이라, 스케줄대로 일을 해야 하고, 내 생활은 깨지고. 여러 사람들한테 스트레스받는데, 또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온다? 그렇게 들어오는 월급은 내 족쇄가 되더라고. 힘들어도 해야 하나 하면서. “

 ”많이 힘들었구나.. “

 ”그만뒀을 때는 집에서 난리가 났어. 그리고 이 일 한다고 했을 때도 난리가 났지. “

 ”지금은? “

 ”똑같아. 욕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은 가족들 안 봐. “

 ”그 정도야? “

 ”뭐.. 이해받고 싶지는 않아. 나는 힘들다고 일했고, 지금 일이 낫다고도 했는데-“

 ”외롭지 않아? “

 ”별로. 혼자 시간이 더 편해. 좋아. “


  퇴근시간의 탈의실은 늘 북적였고, 시끄러웠다. 마트를 퇴근하는 언니들과 이모들의 퇴근하는 시간은 설렘과 행복.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활기 속에서 언니의 표정은 쓸쓸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언니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있었다. 언니의 락커룸에 있는 가방은 명품가방이었다. 비싼 가방. 비싼 구두. 하지만 그걸 하고 있는 언니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락커룸 안에서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가방이나 구두 할부하고 다니는데, 나이트하고 집 돌아가는 길에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더라고. 탈모도 오고.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간호사 말고 다른 거 알아보는데, 일할 곳이 없더라. 그러다가 마트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단 취업은 됐고 나 따로 갈구는 사람 없고, 혼자 그냥 서서 시음, 시식하면 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또 해 떠있을 때 일하고, 해 지면 잘 수 있잖아. “     


 옷을 다 갈아입은 언니는 다른 사람이었다. 당당했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방을 쓱 쓸어 보이며, 내일 보자며 인사하는 언니의 등을 보았다. 언니가 걸친 명품은 언니가 노력했던 시간의 과거였다. 그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이 원했던 길을 가보고 돌아선 선택을 했다는 것에 대한 당당함이었을까. 명품이라서 언니가 멋져 보였던 건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명품의 가격조차 몰랐다. 막연하게 비싸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명품을 든 언니가 멋있다기보다, 그런 과거를 뒤로한 언니가 멋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언니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였다.

  언니와 나는 그렇게 며칠을 함께 했다. 행사를 하다 보면,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지나가면 얼마나 할인하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직접 시음해 보고 느껴보라고 말을 붙인다. 그 말은 쉴 새 없이 떠드는데, 그러는 동안 내 목은 마르고, 입은 달디달아,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얼마나 고되었는지 알게 된다.  잠깐의 쉬는 시간은 우리에게 단잠이었고, 침묵을 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렇게 희영언니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다. 이런 환경을 언니는 만족해하고 있었다.     


 ”나 이번에 행사 들어간 곳에 같이 들어온 언니 있거든? “

 ”그런데? “

 ”원래 대학병원 간호사였대. “

 ”근데 왜 마트에서 일해? “

 ”힘들었다나 봐. “

 ”힘들어서 마트에서 일한다니. 버텨야지,“

 ”진짜 힘들었나 봐. 마트일이 더 낫대. “

 ”뭐가 낫니, 사람들이 엄청 무시하는데. 그리고 월급은 뭐 많이 받니. 대학병원 간호사가 훨씬 더 많이 벌텐데. 나는 감사합니다-하고 다니겠다. 엄마 친구 딸도 대학병원 다니는데-“  

   

 엄마는 나의 이야기 속의 언니를 한심스러워했다.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을 가서, 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돌아선 사람의 나약함에 대해서, 끈기 없음을 말했다. 그리고 실패한 삶인 것 마냥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하는 일이 단순히 휴식기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인데-하는 염려도 하였다. 엄마의 시선은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다 뭐가 더 나은 직업인지 저울질을 하면서, 저울질에 비해 뒤떨어지는 직업을 선택하면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볼 것이고, 뒤떨어지는 직업을 선택한 사람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꼬집을 것이다. 그 저울질 속에서 고심한 마음 따위는 알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상과 현실의 마찰에서 언니는 현실을 택했다. 지금까지 노력한 것들이 나의 길을 아님을 알고 돌아선 언니의 용기를 아무도 응원하지 않았지만, 그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언니는 참으로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가더라도 그 길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알고, 포기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 내 인생을 용감하게 선택할 수 있을까? 그 선택이 타인들에게 바보 같다며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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