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하는 사람들
”동글이는 휴학 안 해? “
”네? “
”막 텔레비전 보면, 고시원 들어가서 공부하고, 그러잖아. 그런데 동글이는 꼬박꼬박 일만 하고. “
”그러게요. 저도 그렇게 공부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네요. 특히 휴학은 힘들 것 같아요. “
”그렇지, 하긴, 휴학하는 것도 쉽지 않아. “
방학 때마다 일하는 마트에서는 다들 나를 안다. 짧은 주말에 가끔 하루, 이틀정도도 일을 한다. 마트에 자주 나타나는 나는 마트 이모와 언니들에게 관심거리기도 했다. 이번학기에는 무엇을 배웠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 궁금해했다. 다들 나의 엄마가 되기도, 이모가 되기도 하고, 언니가 되어주기도 했다. 포근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긴 하지만 나의 일자리인 마트는 현실이었다.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면 씻고 누우면 끝이었다. 밥을 먹을 힘조차도 없다. 일하는 내내 입에 단맛이 날 때까지 물건 파는 멘트를 하고, 제품에 대해 물어보는 손님, 행사가격에 문의하는 손님을 상대하고, 여러 이모님과 언니들과 묘한 경쟁도 하고 응원도 했다. 밥 먹는 시간을 제하고 조금 쉬는 그 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서 시계가 돌아가는 것만 보았다. 계속 서있었던 다리를 주무르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드는 순수한 노동. 그렇게 나의 노동에 익숙해질 때쯤. 미래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둘 때 가끔 이렇게 언니들이 질문을 던졌다.
”법대생은 나 처음 봤거든. “
”저는 많이 봐요. 선배, 동기, 후배. “
”다들 공부하지? “
”하는 친구는 하고, 안 하는 애들은 안 해요. “
”너는? “
”그나마 하는 편이에요. 이번에도 아슬하게 장학금 받았어요. “
”역시. 너 고시공부는? “
”이번생은 글렀어요. “
”왜? 시간이 없어서? 그럼 로스쿨은? 뭐 그거 생겼다던데. “
”그것도 글렀어요. “
”왜? “
”돈이 더 많이 필요해요. “
”어머님이 안 보태주신대? “
”수능 끝나자마자 마트 일하라고 하신 건 엄마였어요. “
”아, 강하시다. “
”강하게 키우시죠. “
”그래도 공부 잘하는 딸, 키워주고 싶지 않나? “
”엄마 눈엔 특별한 것 없는, 앞가림 걱정되는 모지리 딸이랍니다. “
”이렇게 야무진데? “
”실속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
”너같이 실속 있는 애가 어딨 니.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좋은 과 들어가고, 등록금도 해결해, 생활비도 해결하는 애가 어딨어. 어머니가 표현을 잘 못하는 걸 수도 있어. 대견해하시겠지. “
”이모처럼 생각 안 하세요. “
”부모가 자식 속 모르듯이, 자식도 부모 속 모른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해. 너 잘하고 있어. “
과일이모의 행사일자는 끝이 났다. 이모는 내게 명함 잘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서울부터 지방까지 다양하게 업체를 잡고 있다고 했다. 미래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나에게 돈은 현실이고, 그 현실을 잘 챙기는 사람의 것이라면서 생각을 다시 해보라고 했다. 내 손에 쥐어진 명함은 나의 미래라기보다 현재이자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확신 없는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려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현실에 투자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 이모의 조언이었다. 결국 내가 하려는 공부도 돈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이다.
”봐라. 페이 괜찮지? 시답지 않은 카페보다야. “
"어, 괜찮아. 나쁘지 않고, 돈도 꼬박꼬박 잘 줘."
엄마는 종종 내게 마트일을 물어봤다. 처음에는 마트에서 일수만 채우겠거니-라고 생각했는데, 스카우트제의를 받아 공식계약을 하고, 각 지점의, 제각각의 대형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 딸을 보면서 그래도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듯했다.
"일해보니, 쉽지 않지? 다들 그렇게 살아."
"그렇더라. 사연도 많고, 그래도 다들 사람들 좋아."
"그렇다고 거기에 잡히지 말고, 너 공부하면서, 더 편한 직업을 가지도록 해야 해. 돈이 다가 아니다."
"뭐래, 시시한 시급 받지 말라고 이거 하라고 한 사람이. 엄마한테는 돈이 다였잖아."
"넌 일하면서 느끼는 거 없니? 당장이야, 일반 사무직보다 돈 많이 벌고, 괜찮겠지. 나이 들어서도 계속 서서 일을 하고 몸이 지쳐. 그래야 돈이 나오는 곳이야. 다른 사람들은 계속 발전하는데, 너는 계속 그 자리야. 근데 그 자리도 언제 사라질지도 몰라. 그런 자리야. 거기가."
”그걸 알면 뭐 해. 휴학도 하지 말라며. 내가 번듯한 직장 잡으려고 공부한다니까. “
”남들처럼 평범하게 해라. 무슨 고시공부 아무나 하니. 남들처럼 그냥 졸업하고, 취업하면 되는 거 아니야 “
”요즘에 취업준비하는 거도 쉬운 줄 알아?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
”내가 잘 몰라도. 너 대학 휴학하면 안 된다는 거는 안다. “
”뭘 알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해? “
”너 대학 다니는 동안이 그냥 걱정이야. 졸업이나 해. “
남들처럼 안정적이고 평범한 직장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휴학의 길을 걸으며 잠시라도 쉬어갈 틈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에게는 휴학이라는 시간이 처참히 버려질 것만을 생각했다. 자신의 딸은 특별나지도 않고, 그냥 유별난 학과에 들어가서 괜한 헛바람이 들어있을 것을 걱정했다.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보다 제 살길 찾으면서 순리대로 바로바로 취업하길 원했다.
"너 취업 잘되는 과 가길 바랐다. 그런데 네가 법대 간다더라. 나는 법대 하면 판검사, 변호사 말고는 모른다. 그런데 그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 줄은 안다. 그 특별한 직업. 네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세상을 알길 바랬다. 쉽지 않다. 번듯한 회사 들어가지 못하면 할 일이 많지가 않아. 열심히 해야 해. 그걸 느끼면서 니 위기감도 느껴. 머리 꽃밭 만들지 말고. “
사실은 엄마도 마트에서 일을 했었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엄마가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네 아주머니의 소개로 대형마트에서 짧게나마 일을 했다. 그러다가 마트에서 미끄러지면서 허리를 삐끗하고 일을 못하게 되었다. 산재처리 요청을 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아빠와 엄마는 마트와 싸웠고, 겨우 받아낸 작은 보상금을 받았다. 마트는 그런 곳이었다. 싫을 법도 한 마트인데, 그 마트에 나를 일하게 한 거였다. 수능을 마치고 갓 성인이 된 딸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래와 함께 두런두런 모여서 하는 일 말고, 실제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른들과 함께 그 삶의 무게를 느끼기를 원했다. 나는 순수한 노동아래에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과의 삶을 비교하면서 더 나은 삶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20살이 느끼기엔 너무나도 어려운 주제였다.
”동글아. “
”네, 이모“
과일이모의 전화였다. 이모는 나에게 종종 연락을 하고는 했다. 좋은 자리가 있다고 하면 연락이 오기도 했다. 번번이 거절을 했지만, 과일이모는 계속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저번에 이야기했던 거보다 더 좋은 자리인데-“
”이모, 제가 고정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서요. 죄송해요. “
”지금 딱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서, 아깝잖아. 이것도 시기가 있어. 이쪽에 소질도 있으니까. “
”잘 모르겠어요. “
”공부는 어떻게 되어가는데? “
”그냥 한 학기씩 겨우겨우 보내고 있어요. “
”장학금 받으면서? “
”네. “
”그렇게 장학금 받으면서 졸업하고 나면, 뭐 하려고? “
”네? “
”그렇잖아. 고시공부도 아니고, 공무원 준비도 생각 안 하는 거 같던데. “
”공무원 준비하면서 과 공부 병행하는 거도 힘들어서요. “
”요즘에 몇 시간 자니? “
”.. “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지만, 쉽게 살 수 있으면 쉽게 사는 거도 나쁘지 않아. 내 밥벌이 내가 정직하게 해서 번다는데, 누가 욕하니. 밥벌이 못하면 또 어때. 사람 사는 거 복잡하다 하지만, 단순하게 살려면 단순하게 살아지는 게 사람이다. 알지? “
”네 “
”다음에 또 연락할게, 그때는 일 말고, 안부전화로. 힘내고- 답은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해. “
취업이 잘되는 과. 문과인 나에게는 딱히 선택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남들에게 대학이름은 못 내밀어도 전공정도는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법대에 들어갔고, 법공부가 대수인가 했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보다는 한번 해보고 싶다. 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가벼운 마음에 따르는 현재와 미래의 모습은 한없이 무거웠다. 하루하루 지내가는 시간은 나에게는 너무 짧았고, 짧은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나의 육체는 항상 한계에 부딪혔다. 답이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갈래는 많다. 하지만 이리저리 따지고 보는 나의 현실에서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체적인 삶. 능동적인 삶. 자기 주도적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맞는 것인가.
과일이모는 그 뒤로 몇 번 연락을 했다. 잘 지내는지, 공부는 잘 되는지만 물었다. 마트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과일이모의 전화가 반갑기도 하고 그리워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이모의 연락은 뜸해졌고, 끊겼다. 마지막 통화는 이모가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