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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Nov 18. 2024

(9) 커피언니-2

     

"동글아, 일하자!"

"언니?"     


갑작스럽게 커피언니가 연락이 왔다. 커피언니는 이벤트 회사를 하나 차렸다고 했다. 방학이 이제 곧 시작이니까, 마트 행사일을 자기와 계약해서 하자는 거였다. 전에 일하던 마트보다도 돈을 더 주겠다고 했다. 다만 한 마트에 고정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의 각 지점에 파견 나가서 짧게는 3일, 길게는 15일씩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할까?"     


 북적이는 사람들 틈. 지하철 근처 지하상가에 구석에 넓게 돗자리를 펼쳐놓고, 위에 옷들이 쌓여있었다. 언니는 그곳에 있었다. 작고 낮은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옷을 팔고 있었다. 허리춤에 있는 작은 가방 사이로 현금이 삐죽하게 나와있었다. 늘 밝은 목소리의 예쁜 언니. 한 학기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언니의 얼굴은 내가 알던 얼굴과는 달랐다. 눈두덩이는 갈색빛을 띠고 있었다. 이미 조금 시간이 지난 듯한 옅은 색은 아이새도우색에 스며들어, 어색한 눈화장으로 덮어져 있었다. 웃고 있었지만 웃는 눈가의 미세한 떨림을 안 볼 수가 없었다. 볼살은 더 빠졌다. 야윈 몸이 가늘었고, 낮은 의자에 앉아 구부정하게 있는 그 자세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그 위태로운 몸이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언니.. “

”동글아! 여기서 보니까 너무 반갑다. 동글이 더 예뻐졌네. “


 나는 언니를 보자마자 당황했었다. 적어도 마트의 밝고 반짝이는 은은한 주황빛 아래에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당당하게 서있던 언니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운 길 끝에 겨우 자리 잡고 있었다. 유독 키가 크던 언니였던 지라, 작게 말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고 애처로웠다.   

   

"너무 놀래지 마, 언니랑 이렇게 일하자는 게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그래. 내가 사이에 인터넷쇼핑몰을 했는데, 옷이 남아서, 그냥 싸게 파는 중인 거야. 이것 때문에 부른 건 아니야. 우리 동글이! 마트에서 연결해 주는 일 말고, 내가 주는 일로 받아서 해볼래? 일 잘하는 건 내가 알고 하니까, 내가 전에 있던 곳보다 돈 더 많이 주고 유니폼도 지급해 줄 거고, 판매 물품들도 깔끔한 걸로, 페이 좋은 걸로다가 줄게."

"언니가 알아서 챙겨준다면 전 괜찮은데, 언니 다시 일하는 거예요?"

"어, 아는 언니랑 회사하나 차렸어. 마트에서 보니까 파견직 쓰면서 떼먹는 거 많더라. 우리는 거기서 수수료 조금만 떼고, 사람 파견시키면 딱이다 싶었지! 아는 언니가 업체들 많이 알아서, 행사 되게 많아. 나는 직접 행사를 참여하는 건 아니고, 중개역인거지. 이벤트 회사."

"사장님이시네요. “

”어, 멋있지? 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월급 많이 주는 건 당연한 거고, 월급은 바로바로 넣어 줄 거야! 월급제 말고, 일급제라서 너 일하고 나면, 2~3일 내로 입금 바로 해줄꺼고, 걱정하지 마! 그래도 다 우리 대기업들하고 직접 계약해서 하는 거니까 “


 언니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반짝였다. 그 눈빛은 꿈이었을까. 행복이었을까. 지난 과거를 털어보기 위함이었을까. 언니는 나에게 열심히 설명하였다. 현재 회사는 차려졌고, 실제로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전부 마트에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인맥들로 구성되어 다들 착실하게 일해준 덕분에 언니의 회사를 찾는 고객사가 늘어나면서, 인력이 부족해졌던 거다. 하지만,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여러 사람들을 면접을 보았지만, 역시나 면접으로 뽑은 인원은 관리가 쉽게 되지 않았다고 했다.     

 

 ”멋있어요! 일은 어떠세요? “

 ”정신없어. 전에 대책 없이 벌여놓은 쇼핑몰도 정리하고, 마트에 보내는 인력관리도 해야 하고. 그런데, 재밌기는 해 “


 언니의 손가락을 보았다. 전에 보았던 밋밋하고 볼품없던 반지는 없었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나의 시선은 눈치 없게도 오랫동안 그 손가락에 머물러 있었다. 언니의 눈을 볼 자신이 없어서, 언니의 꺼져버린 볼살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그 손가락이 너무나도 가냘프고 앙상해서. 손가락을 보며 언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렇게 됐어."     


언니의 얼굴에 다시 시선이 갔다. 씁쓸하게 웃는 언니의 얼굴을 보았다. 미소가 예쁜 언니. 언니의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어두웠다. 예쁘지 않았다. 마트 조명 아래에서 밝던 언니는 쾌쾌한 흙먼지 속에 묻혀버린 듯, 그 빛이 희미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언니는 그렇게 있었다.     


"헤어졌어. 괜찮아 지금은."

"네?"

"아니, 양아치인 거 있지?! 내 퇴직금 노린 거였더라고, 내가 비록 계약연장으로 있었지만 꽤 오래 일했었거든. 그 돈 다 내놓으라는데, 반만 줬어. 줬더니 사람이 바뀌더라. 결혼은 무슨.. 사기꾼이었어."

"아.. “

”사랑하는 줄 알았지. 나를 필요하는 줄 알았어. 내가 벌어오는 돈이나, 내 몸이 아닌. 나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줄 알았어. 같이 늙어갈 내 꿈인 줄 알았어. 그런데 그 꿈은 결국, 그냥 꿈이더라. 꿈나부랭이 같은 거. “

".. 그럼, 언니는.. “

”궁금하지? 시간 돼? “     


언니는 말하고 싶어 했다. 나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안타까워하는 눈빛이 부담스럽지 않은 듯했다. 가볍게, 쉽게 말하는 언니의 말. 말의 속도, 말의 높낮이. 표정. 그 미세한 것들은 다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저 뱉고 있었다. 토해냈다. 지난 시간의 서러움과 억울함은 없이, 그저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던 것들을 말하고 있었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했다.    

 

" 그래도 들고 나른 내 퇴직금의 반. 그거 받아왔어. 그리고 지금까지 준 돈 중에서도 일부는 조금 받았어. 큰돈은 아니어도. 뭔가를 하긴 했나 보더라. 사람 써서 수소문해서 찾아갔더니 기다렸다듯이, 돈 던져주더라고. 근데 또 내가 그걸 자존심도 없이 넙죽 받아왔어. 돈이라도 받아와야지. 나 싫다는 사람한테 매달려 뭐 해. 근데, 자존심 버린 김에, 지금까지 준 돈 계산해서 더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건 못했네. 바보 같지? “     


 언니는 웃고 있었다. 나에게 그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밤에 본 드라마인 것처럼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즐거워했다. 원망. 배신. 그런 것들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분노보다 자신에 대한 자책이 컸다. 자신이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과거이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난 과거는 과거고. 덕분에 그 지긋한 마트 떠나서, 사장님 하잖아. 매일 마트에서 언제 잘리나 하고 불안해했었거든. 이제는 사람들 교육하고, 파견 보내면 되니까. 좀 더 나은 미래지? 내가 급하게 여기 부르긴 했는데, 일단 나랑 일 할 거지? “

 ”네. 월급만 잘 주시면요. “

 ”나도 돈 떼여봐서 알자나. 돈으로는 장난 절대 안 쳐. “     


 그렇게 나는 언니와 같이 일하기로 했다. 마트에서처럼 꾸준하게 한 달을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언니의 연락이 오면 사무실에 들러서, 판매하게 될 물건에 대한 간략한 포트폴리오와 유니폼을 받았다. 그때마다 언니를 볼 수 있었다.


 ”동글이, 이번 행사는 ㅇㅇ지점이고, 이번 행사 물품은 이거야. 한 3일간 진행하는데, 그다음에 또 행사가 있는 게 있거든. ㅇㅇ지점 하고, 바로 q지점에서 이 물품으로 행사 진행하면 좋을 것 같거든. 이건 2주짜리. 연달하서 하는 게 동글이 너도 좋잖아. “    

 

 사무실은 반지하에 있었다. 지상과의 연결은 작은 창문이 다였다. 다 열리지 않는 반만 열리는 개폐식 창문. 필름이 붙여진 흐릿한 창문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실내에 떠도는 먼지들이 보였다. 지하 특유의 쿰쿰한 냄새와 쨍한 햇살이 묘하게 잘 어울렸다. 사무실은 어둡지만 밝았다. 사무실은 어수선했지만 따뜻하고 포근했다. 어딘가 모르게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런 사무실 속에 앉아 있는 언니는 능숙했다. 사람을 배치하고, 물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일을 맡게 되면, 해당 지점에 미리 방문해서 위치를 찍어오기도 했다. 언니는 열정적이었다. 반짝였다.     


”이번달은 한 달 다 채워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연달아서 행사 3개 가능하지? “

”저는 좋아요. “

”동글이는 방학 때만 일하니까, 최대한 일수 다 채워서 일할 수 있게끔 스케줄 짜줄게. “     


언니는 나의 매니저이자 돈을 주는 진짜 사장님이었다. 언니와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적인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사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묻지 않았다. 일하는 사이. 딱 그 정도. 사장님과 직원의 선을 그었다.     


”이번달도 월급 많이 들어왔어. “

”언니가 잘 잡아주네. “

”사장님 일 잘해. 멋진 사람이야. 배려심도 많고. 착해. “     

 

 엄마에게는 커피언니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마트일을 하면서 알게 된 예쁜 언니. 그리고 마트를 그만뒀었는데, 이제는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어엿한 사장님이 되어 나를 고용하겠다고 한 멋진 언니라고만 했다. 


 나의 커피언니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이 많을수록, 정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언니의 삶을 다 이해하진 못 하였지만, 언니는 이제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정을 끊어내고, 일을 하면서,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 사람에게서 꿈을 찾는 것이 아닌, 오로지 자기 자신 속에서 꿈을 찾았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월급도 잘 챙겨주고 일도 잘하는 우리 사장언니.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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