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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Nov 11. 2024

(8) 커피언니 -1


커피언니는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주던 언니 었다. 키가 무척이나 크고, 모델처럼 말랐는데, 갈색 유니폼을 입고, 향수가 진한 예쁜 언니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데도 진한 화장을 했던 언니의 첫인상은 무서웠지만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마트 내에서 애교가 많기로 소문이 나있는 사람이었다.     


“동글아!”

“네?”

“아직 젖살아 안 빠져서 그런가, 동글동글 귀엽고, 피부도 뽀얘서, 동글이. 괜찮지?”

“아, 네.”

“언니- 동글이 귀엽지?”     


일을 하고 이튿날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나에게 동글이라고 부르면서 왔던 커피언니. 아르바이트 첫날, 마트 곳곳에 지나가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예뻤다고 한다. 그래서 동글동글 귀여운 애칭을 하나 붙이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동글이가 되었다. 마트에 사람들은 나를 ‘이아영.’보다 동글이란 이름으로 통일해서 불렀다. 처음에는 나의 둥근 얼굴로 붙어진 동글이란 별명이 싫었지만 곧 적응하고 애착이 갔다. 나의 애칭 덕에 마트에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고, 더욱 챙겨주었다.     


“동글아! 이번에는 호빵이라며?”

“네.”

“나 호빵 좋아하는데,”

“나중에 오세요. 드릴게요.”

“그래- 먹으러 갈게.”

“네.”     


 언니는 점심시간쯤 와서 호빵을 달라고 했다. 갈색 앞치마 속에 투명한 비닐을 담아왔다. 그 비닐과 앞치마 주머니를 펼치며 씨익-하고 웃고 있었다. 매서운 화장 속에서도 서글서글하고 애교 서린 눈망울이 예뻤다. 자연스럽게 잡히는 눈가의 애굣살이 그렇게 선하고 귀여웠다. 언니에게 호빵하나를 챙겨서 주자, 언니는 앞치마에서 커피믹스를 주섬주섬 꺼내어 나에게 담아주었다. 다양한 커피믹스들이 쏟아졌다.     


 “줘도 돼요?”

 “너는?”

 “이거 시식으로 나온 거.. 오늘 좀 많이 남아서.”

 “나도.”     


 호빵시식행사를 하면서 물건을 파는 나는 시식을 손님에게도 하지만, 하나씩 내가 먹기도 하고 주변분들의 간식으로도 주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마조마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시식 행사를 진행하다 보 면 자연스럽게 식거나 너무 익어 퍼져, 시식했다가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은 음식은 얼른 치워버리는 거도 하나의 요령이었다. 아직 시식초보인 내게는 시식량을 조절할 줄 아는 기술도 없었다. 그래서 빵이모에게 호빵을 얼마나 찌면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적당하게 보고 조절하라고 했다. 시식으로 나온 빵들은 넉넉하니까. 나는 그렇게 야채호빵, 단팥호빵, 피자호빵을 꺼냈다. 시식하기 위해 오신 손님의 취향대로 꺼내주기도 하고, 너무 익혔다 싶은 호빵을 꺼내서 조금 말리기도 했다. 호빵은 도톰하고 보드라웠다. 따뜻하기도 하고, 뜨거울 때도 있었다.     


“선글라스 빼!”

“아니, 과장님- 내가 이게 사정이 있어서.”

“눈 보자.”

“그게,,,”

“야! 너!”

“언니-”     


선글라스를 낀 언니 주변으로 인사과장이 왔고, 빵이모와 건식이모가 모였다. 한참을 큰 소리가 났다. 선글라스를 벗은 언니의 눈은 보랏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오늘따라 더 짙은 아이섀도가 얄밉게만 보였다. 과장은 화를 냈다. 언니의 얼굴을 보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 화가, 상처에 대한 화인지, 언니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몰랐다. 험한 말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은 달싹이다가, 화장으로는 안될 것 같으니, 선글라스 끼고 있으라고 했다. 손님이 물어보면, 라식수술을 했다던가, 쌍꺼풀 수술 했다고 말하라고 했다. 선글라스는 절대 벗지 말라고 했다. 누가 봐도 맞은 눈이었으니까.     


“그놈이랑 헤어지라니까!”

“나쁜 사람 아니야. 술 마셔서, 이제 안 그러겠다고 했어.”

“몇 번이냐. 이게. 그것도 얼굴을 이렇게.”

“티 많이나?”

“절대 벗지 마요. 팀장님이든 누가 와도 그냥 넘겨요. 그리고, 우리는 손님맞이하는 사람이에요. 한 두해 하는 거도 아니면서, 이게 뭡니까, 이거 누구 손해예요?! 당신, 한두 번도 아니고.”

“죄송해요. 과장님. 얼굴은 안 맞으려고 잘 피한다고 피했는데, 그만, 맞아버렸네?”

“하아..”

“아이고, 커피야- 가자, 일단 혹시 모르니까, 안대가 낫나?”

“과장님, 안대가 나을까요? 선글라스가 나을까요?”

“웃음이 나옵니까?! 시식준비 중이라 하고, 일단 여사님들하고 더 나은 걸로 해서 내려오세요.”

“가자, 방법 찾아보자.”     


 그때부터 커피 언니의 여러 날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보지 못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날 외에도, 목에 스카프를 두루는 날. 짧은 스커트 아래에 발토시를 하는 날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가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걸로 알았다. 유니폼을 입을지라도, 특별하게 보이기 위한 아이템들이라고 생각했다. 큰 액세서리 하나 조심해야 하는 임시직의 우리는. 귀걸이 하나, 알이 큰걸 할 수 없었다. 최대한 손님들에게 거슬리지 않기 위함이었다. 일괄된 차림, 또는 유니폼을 입고 서서 다른 브랜드가 섞이지 않기 위해서. 그런 우리에게 무언가를 걸치고, 추가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언니가 걸치고 있는 것들이 남들에게는 알려지기 싫은 치부를 가리기 위함인지는 몰랐다.    

 

 “스카프 예쁘지?”

 “미친년. 동글아. 대답하지 마.”

 “그래도 이번에는 가려지는 곳이라 얼마나 다행이야”

 “머리에 꽃 달아서 아주 좋다 너.”     


 스카프를 하거나, 화장을 짙게 하거나, 손목보호대등을 하거나. 그런 아이템을 할 때에 언니는 유독 밝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넘치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동글이는 이제 대학가지?"

"네."

"어디로 가?"

"좋은 대학은 아닌데, 그래도 법학과로 가요."

"동글이 역시 공부도 잘했구나! 법대 들어가면, 그 막 판검사 되는 거야?"

"사시는 쳐보고 싶기는 해요."

"사시? 그런 시험을 쳐야 되는 거야? “

”네, 사법시험이요. 그걸 쳐야 해요. “

”빨리 쳐서, 빨리 대단한 사람 되자. “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1학년, 2학년 때 이수할 과목들이 있어서, 열심히 해도, 2학년부터 시험 칠 수 있는데, 많이 부족해요. 잘 모르겠어요. “

”멋있다. 난 난 그런 멋있는 거 하는 방법도 몰라. 할 줄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찾을 줄 몰라. “

”찾으면 되죠. 하면 돼요. “

”하면 된다는 말이. 참 잔인하다는 거 알아?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 누가 그러더라. 하면 되는데, 못한다는 건, 안 하는 거라고. 안 하는 거 맞는데.. 안 하는 게 못하는 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봐. “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안 하는 거가 맞는데, 못하는 거라는 말이 어떻게 같은 말인지 몰랐다. 하면 된다는 말은 내가 결심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왜.. 결심을 하지 못하는 걸까. 나의 인생인데, 나의 일상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흘려보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커피 언니를 이해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공부를 못했어. 안 했지. 공부 안 해도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거든."

"언니 잘 지내시잖아요. 커피매출도 좋다고 과장님께 들었는데. 잘하고 계세요."

"그렇지. 그래도.. 커피.. 언제까지 할 수 있겠니?"     


언니의 꿈은 모델이었다고 한다. 늘씬하고 키가 크고, 눈도 부리부리하고, 서구형 얼굴로 학창 시절에는 인기가 제법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은 항상 빛이 날 줄 알았다고 했다. 공부는 일찍 히 관심이 없어, 쉬운 거, 편한 거를 찾으며 일을 하다가 지금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 없이, 특별한 노력 없이, 일단은 들어와서 밝게 웃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건을 건네는 일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유니폼을 입은 자신이 작아지고,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주름이 늘어갈 때마다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났어.”

“지금 남자친구분이요?”

“응. 마트에서 일하는데, 매일같이 와서 커피 시음하고, 믹스를 한 박스씩 사가는 거야. 내가 너무 보고 싶었고, 좋았대. 한눈에 반했대.”

“아..”

“그리고 나한테 고백했고, 잘 만나고 있어.”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남자친구와 소중한 첫 추억들을 떠올리는 언니의 얼굴은 행복에 벅차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 아래, 눈에 띄는 화려한 스카프가 거슬렸다.     


“성실하고 착했어. 회사 그만두고 사업하기 시작하면서 예민해진 거뿐이야. 유명하고 좋은 대학도 나왔고, 대기업도 다녔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나를 좋다잖아. 내가 필요하고. 그 사람한테는 나, 누구한테도 필요한 사람이야.”

“언니..”

“가끔 답답한 일 있어서, 술을 마시면 조금 성격이 변하는데, 술이 문제지, 사람은 문제없어.”

“그게 문제라는 거다. 이것아. 너랑 결혼도 안 하고, 빌붙어 사는 애. 너는 그렇게 좋니? 애 불러다가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고. 일하자 일!”     


 빵이모였다. 호빵 코너에 잠시 놀러 온 언니를 보고 핀잔을 줬다. 빵이모는 커피언니를 많이 아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자신의 인생에 우리가 보기엔 한참 모자란 사람을 사랑으로 품고 있는 언니에게 모진 말은 하더라도 안타깝게 걱정스럽게 늘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랑일까. 아니면 동경이었을까. 언니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자신의 이야기처럼 자랑을 했다. 좋은 대학을 다니면서, 멋진 경험을 했던 이야기.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던 남자친구의 이야기. 지금도 꿈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좌절하지 않는 사람. 아주 조금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평범하고 대단한 그 사람의 곁에 있기엔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라는 거. 그러니까, 그런 취급을 받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동경했고, 꿈이었다.     


“나 결혼해!”

“드디어 하는구나.”     


 커피언니는 어느 날 가느다란, 밋밋한 반지를 보이며 이모들에게 자신의 결혼소식을 알렸다. 행복해했다. 다들 ‘축하해’라는 말보다 ‘드디어 하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했다. 늘 남자친구의 뒷바라지를 하던 예쁜 미소를 가진 언니의 결말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 일 그만둬!”

 “일은 왜?”

 “이제 고생하지 말구, 집에서 편히 쉬래!”

 “그건 매우 축하한다.”

 “계약기간 남았지 않아?”

 “괜찮아- 결혼해서 그만두는 거고, 나도 나이가 있어서 회사에서는 좋아하던데 뭐. 새로운 애 들어올 거야.”

 “동글아,”

 “언니, 축하드려요.”

 “고마워- 이제 나 간다.”

 “보고 싶을 거예요.”

 “너는 계속 이 일 할 거야? 알바로서 말이야.”

 “안 그래도 과장님께서 저 방학때 되거나 하면 연락 주신대요. 학기 중에는 공부하고, 방학 때는 돈 벌려고요.”

"그래, 여기 일이 남들이 좀 무시할 때도 있지만, 돈도 잘 주잖아. 나봐- 그래도 여기서 오래도록 일하면서, 이렇게 결혼도 하잖아. 나랑 비교할 건 아니지만, 너는 법대생이니까, 자부심 가지고 무시하는 사람들 신경 쓰지 말구 일하면 되는 거야. 우리는 그저 돈을 벌러 온 거잖아. 돈을 벌러 온 직장일 뿐이야. 그냥 그런 거야. 마트직원이 내가 아니잖아. 나는 마트에서 일할 뿐이잖아. “     


언니는 그렇게 일을 그만뒀다. 다들 잘됐다고 하면서 인사를 해줬다. 나도 그렇게 대학 입학 전날까지 일을 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대학생활은 순조로웠다. 등록금은 대출받아서 냈고, 학기 중에 기숙사비, 생활비, 책값등 다 바짝 벌어놨던 돈으로 충당을 하였다. 사실 공부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에 크게 들어가는 돈은 없었다. 전공책이 비쌀 뿐, 그 외에 점심은 구내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먹으면 되었다. 저녁은 학교기숙사에서 해결하면 문제가 없었다. 공부만 했다. 주변의 친구들 모두 공부만 했다. 등수에서 갈리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과 공부와 수험공부 사이에서 늘 발버둥 치고 있었다. 학기 중에는 공부하는 희열과, 잘 해내고자 하는 압박감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머리를 식히고 싶었다. 그때쯤 학기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학기 마지막 시험을 마치자 말자, 나는 다음 학비 낼 준비를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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