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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28. 2024

(6)건식 이모-1

1부. 일하는 사람들

“빵아, 배고프다.”

“호빵 먹을래?”

“좋지.”

“동글아, 하나만”     


빵이모와 건강기능식품코너의 이모는 친하다. 건강기능식품코너의 이모는 빵이모보다 더 일찍 들어왔다. 건강기능식품코너에 유명 건강기능식품업체와 직접 계약이 체결된 이모로, 마트에서 일하지만 마트 소속이 아닌 업체 소속으로 고용관계가 다른 이모였다. 그래서인지 마트 내의 임직원의 눈치를 보지 않는 빵이모와 잘 맞았다.   

  

“팀장님 지나가요.”

“잠시만.”

“팀장님아- 호빵 잘 익었다. 먹어봐라.”

“건식이모님은 왜 또 여깄습니까?!”

 “나 배가 고파서, 당 떨어지잖아.”

“손님들 시식이에요.”

“내 한 봉지 계산해서, 이거 쪄달라한 건데?”

“맞아요?”     


 빵이모는 웃으면서 맞다고 했다. 실제로 건식이모는 점심이나 저녁때 호빵을 몇 봉지씩 사가기도 했기 때문에, 마트직원이지만 고객인 건식 이모에게 크게 말하지 못했다. 사실은 마트 직원도, 결국에 퇴근하고 나면 고객이기에 자신이 맡은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싫은 소리가 오갈리는 없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딱 봐도 직원이 이렇게 시식하고 있으면. 그리고 장 보는 건 퇴근 이후에 하세요.”

“아니, 당장 먹고 싶으니까 그러지. 그리고 내가 손님들 없을 때, 몰래 먹잖아.”

“아니, 그럼 안된다고.”

“가운도 벗고 손님인척하고 먹으면 되지.”

“근무 중이시잖아요. 안 되는 건 아시죠?”

“알지, 나도 눈치 있어. 괜찮아. 그리고 지금 나 쉬는 시간. 괜찮지?”

“안 괜찮아요!”

“알따, 미안하다. 이제 안 그럴게- 오늘만 봐줘- 그냥 묵고, 마트나 돌아라.”     


소리치는 팀장의 입안에 살짝 식은 호빵 조각을 넣었다. 팀장은 머쓱하게 입에 넣고 못 본 척, 아닌 척하면서 간다. 빵이모와 건식이모는 그 모습을 보고 웃는다. 건식이모는 길쭉한 빵이모와 달리 키가 작고 동글동글 귀여운 체형이었다. 그 둘이가 있으면 화려하기만 하고 삭막한 마트가 온화하고 따뜻해졌다.     


 “동글이, 이번 호빵 행사 끝나면 뭐 하라고 말 없드나?”

 “네. 아직이요.”

“잘됐네, 그럼 우리 설세트 들어올래?”

 “제가 할 수 있어요?”

 “내가 말해줄게,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니를 고용하는 걸로 해가, 임금도 더 주는 걸로 하고.”

 “정말요?!”

 “니가 싹싹하니 잘한다이가, 함 팔아봐라.”     


 호빵행사가 끝이 나면, 건식이모 덕에 나는 홍삼, 인삼, 복분자 등의 설맞이 선물세트를 팔기로 하였다. 설맞이 선물세트 알바는 일반 판촉행사 알바보다 급여가 높았기에, 마트 소속 계약 신입알바에게는 자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기존에 일을 하던 이모들이 탐내기도 했고, 계약조건에 따라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는 자리로 치열했다.     


 “아영씨가 이모들한테 이쁨 받나 보네.”

 “네?”

“건식여사님한테 못 들었나? 설세트”

“아, 네, 설세트 해보라고 하시긴 했는데.”

“설세트 기간 동안, 마트에서 직원 대주는 걸로 해서, 일급은 1.5배.”

“감사합니다!”

“우리가 더 감사하지, 업체에서 우리 사람 써준다 하면.”     


내 일급이 높아진 만큼, 마트는 업체로부터 수수료를 먹는다. 그 수수료는 과장의 성과급이 되어 들어간다. 하지만 나는 당장 내가 받는 일급이 중요했고, 이번 행사동안에 급여가 올랐다는 사실이 좋았다.     


 “설세트는 많이 팔면 좋은데, 너무 경쟁하지 말고.”

 “네?”

 “동글이 니는 마트소속으로 대행 알바니까, 많이 팔아도 인센은 없제?”

 “네.”

 “그럼 늘 하던 대로만 하고, 진열된 내에서만 있어라. 알았제? 그리고, 선물세트는 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서 굳이 먼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나간다.”     


 건식이모는 설맞이 선물세트가 깔리기 전에 당부했었다. 욕심내지 말고, 그 자리에 지켜서 있기만 하라고. 설이 되면 손님은 먼저 온다. 단체 주문을 하기도 하고, 어떤 선물세트가 있는지 조용히 둘러보기도 한다. 나는 내쪽으로 오는 손님에게 상품을 설명하면서 권하는 정도로 영업을 했다.


“여기, 인삼 제품도 잘 나가고요-”

“아니, 나는 열이 많아서 인삼은 별로, 홍삼이 괜찮겠네.”

“홍삼도 좋죠, 많이 나가요. 6년 근에.”

“하이고, 6년 근이라 해도 얼마나 들어간다고, 한팩에 3방울은 들어갔나. 근데 아가씨가 이런 거 좀 아나? 체질에 맞춰서 사야한디. 인삼은 열 많거나, 체질이 안 맞는 사람이 있어가- 많이 팔려면 홍삼을 권해야 한다. 또 함량 봐라- 권하기도 민망타”

“아.. 그럼 이건 어떠세요?”

“그래- 이건 좀 낫네. 하긴 알바제? 알바가 뭐 알고 팔겠나.”     


마트에서 새로운 제품을 팔 때마다 그저 가격, 할인이 얼마나 들어가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면서 일을 했었다. 하지만 설맞이 선물세트를 하면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했고,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이와의 관계, 체질 등을 고려하면서 가격대도 선정하여 권해서 팔아야 했다. 손님들 중에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하여 지식이 빠삭한 사람이 있는 반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손님을 접하면서 점점 얕은 지식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약공부고. 마트 알바생이”

 “내가 그래도 3주 정도는 파는데, 알아야겠더라고. 권해달라고 해서 권해줬다가 되려 혼난 적도 있어서, 부끄럽더라고.”

 “딱 봐도 알바인데, 그 사람들은 널 뭘 믿고 물어본다냐”

 “아니- 그래도 내가 파는 사람이잖아. 직원이라고 서 있는 건데.”

 “몰라도 돼. 그냥 너 알바인 거 알고, 능숙하게 대답하는 게 상대방은 더 이상할 거다.”


 엄마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해 공부하는 나를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다. 크게 공부랄 것도 없이, 단순히 관련 책 몇 권이랑 인터넷 서칭이 다기는 했지만, 임시직으로 한 달도 일하지 않는 내가 이런 정보를 모은다는 사실에 달가워하지 않았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보는데.

 사람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쉽게 생각했다. 한 제품을 팔기 위해서 그냥 나와 가격만 읊어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제품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관련 내용에 대해서 꿰차고 전문가로서 파는 이가 있었다. 마트 일은 쉽게 얻은 일만큼, 쉽게 일할 수도 있고, 쉽게 얻은 일자리일지라도 조금의 노력으로 전문적으로도 나서 일할 수도 있었다.

 나는 후자이길 바랐다. 마트에서 가만히 서있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해 서있는 자리는 맡지만, 그 이상의 것을 쟁취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하여 크게 신뢰하지 않을지라도 실제로 물건을 파는 직원이기에, 손님들은 내게 많은 것을 물어봤다. 전문가처럼 상세하게는 말을 하지 못하였지만, 알고 있는 걸 성의껏 말해주고, 가격에 비해 괜찮게 나온 제품을 자신 있게 권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도 호기심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자연스럽게 구매까지 연결되었다. 가끔은 대놓고 무시하기 위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기에, 적당한 넉살도 필요로 했다.     


 “동글이, 우리 제품에 대해서 공부 좀 했나 보네.”

 “네, 물어보는 손님들이 많아서요.”

 “글나, 그래도 물어보는 사람들 중에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사람보다, 꼽줄라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이가”

 “그러시더라구요. 테스트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니까, 안다 그거. 가끔 직원들 무시하고 싶어서 시비 거는 사람도 많거든. 처음이라 상처 많이 받제?”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그런 사람들은 마음이 못나서 그렇다. 우리도 다 자부심 가지고 일하는데. 뭐 시비 거는 사람 있으면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 일일이 대꾸해 줄 필요는 없디. 알제”

 “네네.”

 “수고해라.”     


 마트에서 나오는 선물세트는 가격대가 저렴했다. 그래서 이름은 홍삼, 인삼 등으로 나가지만, 거의 향만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되는 제품들이 꽤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끔 함량을 따지면서부터 난감한 일이 종종 있었다.  나는 그런 제품은 권하지 않았다. 다들 그런 제품은 가짜라고 싫어했다. 하지만 선물은 보내주되, 형식상으로 보내는 경우로 가장 잘 팔리기도 했다. 그 제품은 꼭 마트에서 일하는 나와 같았다. 유명 브랜드에서 만들어, 유명마크를 달고 있지만, 저렴하게 나오기 위해 향만 입혀져 출시되어, 누구나가 사기 편안한 제품.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에게 내밀기에는 손이 부끄러워 감추어야 하는 제품이었다. 쉽게 생각하고, 효능과 효과는 우습게 여겨지는 제품이었다. 나도 대기업 로고가 박힌 큰 마트에서 일하지만, 대기업 직원이 아닌 그저 손쉽게 들어와 언제든 대처가 가능한, 일급으로 계산되는 임시직원. 사람들에게는 내가 굳이 임시직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를 알고 있었다. 로고만 박고 있는 함량이 적은 제품처럼, 나도 로고만 박혀 있는 임시직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대처가 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시선.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대학생? 등록금 벌려고 일해요?”

 “아, 네-”

 “공부 잘하면 과외하면 될 텐데, 어휴, 고생 많다. 내가 사줄게. 뭐가 젤 잘 나가요?”

 “아, 이거 잘 나갑니다.”

 “나 선입견 있는 사람은 아니야. 보기 좋다. 그래도 자기 등록금 벌려고 노력하는 젊은 사람. 무슨 대학?”

 "네?"

 "아, 요즘은 대학 물어보는 거 아니랬나? 무슨 과?"

 "법대입니다."

 "어머, 근데 왜 이런 거 해요?"

 "네?"

 "생각 참 바르다. 그래. 이런 일도 해보고 해 봐야지. 그래도- 공부가 더 우선이지 않아요? 열심히 일해서 장학금 받고, 과외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 법대도 대학 나름이려나?"

 

 가끔 동정 어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 편견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아주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굳이 저렇게 말을 하고 싶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 딱하게 보여서 응원한다는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어 그러는 것일 거라며 에둘러 생각했다. 이렇든 저렇든, 개의치 않겠다고는 했지만,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마음이 뒤숭숭했다.


 “말을 뭐 저리 하노. 뭐- 사줄게? 법대도 대학 나름이려나? 어이가 없다.”

 “그러게요.”

 "괘안나?"

 "그래도 한 세트 사려다가, 제가 웃으면서 말 안 하니까, 두 세트 사가셨어요. 본인도 말하고 민망하셨나 봐요."

 “뭐, 사가면 내한테 돈 떨어지는 거도 아닌데, 우짜라고- 저런 사람들 좋게 말할 필요도 없다. 뭐- 우리가 일하는 중이지 구걸중이가.”

 “그래도 제 전공 듣고 얼굴 빨개지시던데”

"지 눈에는 우리가 다 하찮다고 생각하고 말 걸었나 본데, 꼬시다. 그체"

"그건 그래요. 좀, 기분은 좋았어요, 과 물어볼 줄은 몰랐는데."

 "오지랖이고, 경거망동한기다. 집 가서 부끄럽겠지.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저런 인간들 많다. 뭐 지들은 대단한 일 하나-”     


 사람들은 마트에 와서 물건을 산다. 그리고 판촉 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기도 하고, 힐끗 보고 지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선물세트 코너를 둘러보는 이는, 조용히 물건을 보고 지나치거나 담아가기보다 직원에게 말을 대부분 붙였다. 몇 개 이상을 사면 할인을 해줄 수 있는지, 사은품처럼 받을 수 있는 건 없는지, 자신이 선택한 세트가 괜찮은 건지- 다른 더 좋은 것을 권해줄 수 있는지. 물어볼 것은 많은데, 제품 제조한 본사 직원이 아닌 대행해서 파는 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답을 제대로나 들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일하는 이들을 자극했다. 하지만 자극받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정당하게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나는 이 제품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그들이 물어보고 대답하기 전까지, 나는 계속 저 편견 속에서 갇혀 있어야 했다. 그 편견이 사실이건 아니건,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왔고, 필요한 물건을 건네는 이에 대하여, 평가를 할 필요가 없음에도, 평가를 한다. 단정을 짓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인다.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몇몇의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불편한 모습에 대하여 나는 대뜸 화를 낼 수도, 아니라고 외칠 수도 없었다는 사실에 더욱 마음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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