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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빵이모-2

1부. 일하는 사람들

by 김현정


“만원만 보태.”

“나 보탰어.”

“그랬나? 까먹었다, 그럼 만원만 더 보태라.”

“뭐예요?”


늦은 아침, 마트가 열리기 전에 직원들이 복작복작하게 모여있는 탈의실은 시끄러웠다.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 딸 이야기, 남편이야기로 늘 웃고 화내며 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사뭇 다른 분위기었다. 탈의실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서는 빵이모가 사람들에게서 돈을 거두었고 돈을 낸 사람들의 명단과, 낸 돈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들 부산스러웠지만, 웃고 있었다.


“응, 동글아, 아냐- 이건 이모들끼리 그냥 하는 거.”

“저는 안 보태도 돼요?”

“아이고, 코 묻은 돈 안 받습니다. 학비에 한 푼이라도 더 모으세요.”


오랫토록 일을 한 사람과의 이별을 위한 준비였다. 된장, 고추장, 간장. 조미료, 등의 장코너를 맡고 있는 이모님의 퇴직소식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계약종료였다. 매해 매년, 오래도록 일하던 이모님은 올해는 계약을 하지 못하였다. 갑작스럽지만 갑작스럽지 않은 것으로, 다들 아쉽지만 계약종료 앞에서는 다들 어쩔 수가 없었다. 장코너의 이모님은 계약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에, 매달려 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장코너의 경우에는 계절을 타지도, 특별히 신상이 나와서 홍보할 일도 적어, 불필요한 인원으로 줄이게 된 것이었다. 빵이모는 그런 장코너의 이모님에게 퇴직선물을 해주고 싶어 했다. 그 마음은 모두가 한뜻이었다. 끈끈하게 함께하던 이들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너도나도 모으고 있었다. 자신들이 잘렸을때, 자신들이 나가게 된다면, 이러한 퇴직선물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


“아니, 장 오래 됐제?”

“그치, 오래됐지.”

“빵이랑 같이 들어왔다이가.”

“그럼 얼마나 된 거예요?”

“여기 마트 창립멤버.”

“뭘 또 거창하게 창립멤버고-”

“맞지! 그때 구인광고 할 때, 우리 싹 다 안 있었나.”

“그때 빵이 잘한기다. 정직원! 탁!”

“내도 불안해 죽겠다. 계약 종료 돼뿌리면”

“그때도 우리가 다 챙겨줄 거니까 걱정마이소-”


처음들어왔을 때를 추억했다. 다들 웃으면서 이야기는 했지만, 어딘가 모를 불안감은 조금씩들 들고 있음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마트에는 오래도록 일한 이모들이 많았다. 마트가 처음 생겼을 당시에, 사무직 사람들은 본사에서 거의다 내려왔지만, 현장에서 일할 이모님, 삼촌 등은 구인광고를 통해서 들어왔다고 했다. 이모님들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고 한다. 월급으로 측정되는 정직원. 즉 첫 월급은 작지만, 퇴직금이 보장이 되고, 4대 보험이 되고, 년마다 조금이나마 오를지 말지 한 월급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일급으로 계산되는 1년짜리 계약직, 당시 매년 갱신을 해주는 조건이었고, 정직원들보다는 확연히 차이 나는 급여였다. 그리고 4대 보험은 필수가 아니었기에, 보험을 가입하지 않고 실질적으로는 더 큰 월급을 가져갈 수가 있었다. 이모님들은 그 두 선택지를 두고, 거의 다 후자를 택했다고 한다. 정직원을 선택한 이는, 계약직으로 돌릴 수 있었으나, 계약직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정직원의 기회는 주지 않는다는 확인서까지 받아갔다 했다. 이모들은 내가 일을 해봤자 얼마나 하겠느냐- 당장에 월급이 많은 게 좋지, 하면서 계약직들로 대부분 계약을 했다. 4대 보험의 개념도 잘 모르던 시기였기에, 4대 보험은 중요치 않았다. 당장에 코가 석자인데, 연금보험은 무엇이고, 일하다가 다칠일이 있겠냐 싶고, 산재처리받는게 까다로워 보험 들어봤자 쓸모없다던 이모들이었다. 그랬기에 계약종료 후에는 다시 재계약을 해주겠노라, 장담을 하니 부담감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랬다. 그러다가 법이 바뀌면서 매년 갱신을 하다 보면 정직원으로 전환해야 하는 점 때문에, 계약이 종료된 후, 열흘에서 한 달 정도 쉬다가 돌아와서 계약하는 형식으로 점차 변했고, 월급 계약이 아닌 일급 계약, 1년이 꽉 차지 않는 계약직으로 변경되고 있었다 한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완전한 계약이 종료되었음을 통보받게 된 장이모의 소식은 다른 이모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아..”

“같이 딸들 학교도 보냈고, 시집도 보냈고, 이제 곧 군대 간 아들 대학 복학 한다던데.”

“아직 아드님이 학교 다니나 보네요.”

“그러니까. 그런데 이번에 퇴직금도 딱히 없다.”

“왜요?”

“나는 여기 마트 소속 직원으로 오래 근무를 했는데, 1년도 안 되는 계약직이거든. 매해 매년 계약을 다시 해서, 쌓인 금액이 없어.”

“아..”

“그래서, 그 퇴직금 우리가 만들어 주려고.”

“너무 해요.”

“세상이 쉽지 않다. 몰라서 그랬다. 우린 몰랐지. 그래서 다들 정직원, 정직원 하는 갑다 싶대. 동글이도 나중에 좋은 직장에서 정규직 하자.”


이모들의 말을 들으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사실은 몰랐었다. 퇴직금이라는 건 당연히 있는 것인 줄 알았다. 4대보험은 당연히 회사측에서 들어주는 것인 줄 알았다. 특히 고용보험과 산재에 대한 개념이 생겨난지 오래되지 않았고, 내가 일하기 훨씬 전인 이모들에게는 그런 보험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었을 때였다. 일을 한다고 하여 알아서 챙겨주지 않는다. 우리들이 스스로 챙겨야하는 것이었다. 몰라서 그랬다. 알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이모들은 숙연해졌다. 애먼 사물함 문만 만지작거렸다. 매일매일만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은 성실하면 되기만 한다 생각했는데, 그 성실함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아버린 이모들이었다.

정규직인 빵이모는 장이모와 일급으로 따지면 급여가 작다. 하지만 오랜 시간 빵이모의 경력은 쌓이고 쌓여서 돈으로 쌓이며 인정받았고, 장코너 이모의 경력은 그저 1년짜리도 안 되는 단기 노고에 대해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었다. 같은 노동을 하고 있더라도, 노동의 가치를 구분 짓고 있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할지라도, 분명한 격차는 있었다. 당장의 떨어지는 돈과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지 몰랐다. 그저 돈을 많이 받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안다. 그래서 당장 월급을 더 챙겨 받고 싶어 했던 직원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일을 하는데, 들어오는 돈을 조금이라도 더 받겠노라 했던 게 무슨 잘못이겠느냐, 하지만, 오랜 세월 지내다 보니, 당장의 현실에서 헛헛함과 아쉬움만 남았으리라- 짐작을 하기에, 좋은 취지에서 직원들의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은 빼고, 마트의 직원분들과 오랜 근속자들의 마음이 모였다.


"어이쿠- 다들 왜그래. 좋게 생각해봐. 드디어 벗어난다! 내발로 나가는 건 아쉬워서 못나가는데, 떠밀려서라도 이제 일 그만 하는 거지!"

"그건 맞다. 내가 이 일을 이래 오래할 줄 알았겠나."

"그래! 일 관둬라해야 관두지, 아니면 평생 일한다."

"잘됐다."


빵이모는 웃으면서 이모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렇게 오래 일하게 될 줄 알았냐며 웃고 있었다. 빵이모를 부러운 눈빛으로 보던 다른 이모들은 금새 표정이 풀렸다. 빵이모는 자신은 족쇄를 달고 있어서, 그만두라고 눈치라도 줬으면 좋겠다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 말은 둥글둥글하게 굴러서, 힘들게 일하는 이모들에게 위안이 되었다. 성실하기만 한 그녀들은 나오라고 하니 나왔고, 그만나오라고 하면 그만 나왔다. 스스로 쉴줄을 몰라서, 무릎에 파스를 붙이고, 손목에 보호대를 차면서 계속 나왔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면서 마트일만 하다가, 계약이 만료되고, 새로운 계약서를 쓰는 사이에 병원을 다녔던 이들이다. 이제는 그만둬야지-하지만 당장에 그만두라는 것도 아닌데, 한푼이라도- 조금더-라며 내심 버티고 있는 이들이었다. 당장 그만두라고 하면 아쉽고 막막하겠지만서도 그만두고 나면 또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는 것을 아는 그녀들이었다.


“팀장은?”

“했어, 나중에 건식여사님한테 물어봐, 얼마 했는지.”

“많이 했어?”

“할 만큼 했지.”

“과장은?”

“했어요.”

“딱 만원이지?”

“아니,,”

“김과장네 식구잖아. 진짜 온 마음을 다한 만원이야?”

“더 할게요.”


빵이모는 분주했다. 작은 수첩에 동료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갔다. 돈을 거두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큰돈은 아니었다. 그냥 백반두끼정도. 아니면 간식 한번정도 흘리면 되는 소소한 돈이었다. 그랬기에 웃으면서 장난도 치며 모였다. 빵이모는 아무에게 가서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연고가 있고,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 이 커다란 마트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그만두기에 - 거두는 이들을 나름 선별하였다.

오랜 기간 함께한 사람이, 종이 한 장에, 단 몇 글자로 사라지고 남는다. 슬퍼할 것 없고, 안타까워할 것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어른들은 그 이성적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후의 차선책을 생각했다. 억울할 것 없이, 미워할 것도 없이, 아쉬워할 것 없이. 미련하지 않게, 훌훌 떠나가자. 였다. 어린 내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내가 본 떠나가는 이의 뒷모습에는 후련함만 있었다.


“오랜 시간 수고했다.”

“고마워.”

“여사님, 자리 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리 이제 없을 꺼라 해놓고 말은. 됐네요. 이제 쉴랍니다. ”

“단기는 많아요. 알죠?”


직원들의 마음이 모인 퇴직금은 전달이 되었다. 천원, 오천원이, 만원이 모이고, 몇십, 몇백이 되었다. 그렇게 퇴직을 맞이한 이모는 사람들에게서 세월을 인정받았다. 떠나가는 이모에게 이별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환대했다. 퇴직하고 종종 장을 보러 들리는 장이모가 보였다. 장이모는 구석구석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마트에 도는 시간이 꽤 많은데, 카트에 실려있는 물건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간장 행사한다던데.”

“나오라고?”

“할래?”

“퇴직금까지 너희가 다 모아줘서, 쪽팔려서라도 다시 일 못해.”

“하면 되지. 알바. 3일.”

“그렇게 퇴직축하를 거하게 해줘놓고 또 일하라고?”

“설세트 할 때 오던가.”

“김 과장 연락 주면.”

“알았어, 말해둘게.”


빵이모는 그렇게 마트의 직원들을 살뜰히 보살피고 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끼리 서로가 챙겼다. 가족들보다 더 오랜 시간 마주 보며 일하는 이들의 속마음까지 꿰뚫고 보고 있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마음이 따뜻했다. 분명 정직원과 계약직, 현장직과 사무직으로 철저하게 계급이 나누어져 있고, 소속도 분명히 나눠져 있는 일터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하면서 계급과 소속을 넘어서, 사람 대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나는 이 온정이 많은 마트가 새삼 따뜻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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