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하는 사람들
“동글아. 이모가 빵 비면 채워주니까 너는 그냥 여기서 시식하고, 빵만 잘 팔아.”
빵이모는 항상 나의 출근시간에 맞추어 카트를 밀고 왔다. 카트 속에는 다양한 호빵들이 잔뜩있었다. 산처럼 수북하게 쌓인 호빵은 팥, 피자, 카레, 야채들이 들어있었고, 두정도의 브랜드 호빵이 있었다. 나는 브랜드에 상관없이 호빵들을 판매했다. 겨울 맞이 호빵의 계절이라- 마트에서는 호빵자체 행사를 하고 있었다. 물량은 항상 많이 빠졌지만, 임시 가판대처럼 일부 공간을 만들어 놓아 협소했기에 물건을 많이 쌓아두지는 못하였고, 빵이모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채워줘야했다. 빵이모는 키가 컸다. 누가 봐도 늘씬한 체형이었고, 서구적인 또렷한 이목구비가 매력적이었다. 늘 잔잔한 나비삔을 여러개 꽂아서 한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늘 웃으면서 온화한 표준어를 썼는데, 기품있는 우아한 말투에 항상 하늘거리며 움직이는 손모양이 예쁜 이모였다.
“네!”
호빵을 맡아서 일한 지는 삼일이 채 되지 않았다. 겨울철의 호빵은 마트에서 기획하는 상품이기도 하지만, 손님들도 많이 찾는 품목이다. 아이들의 간식으로, 어른들의 간식으로 추운 겨울 따끈한 호빵은 호호 불어먹는 맛이 일품이고, 조리하기 간단하기 뿐만 아니라, 든든하였기에- 겨울철에 이만한 간식은 없었다. 굳이 이런 상품을 시식과 할인 행사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호빵 품목은 한철 상품이라 이맘때 물량을 확실히 뺀다고 빵이모가 말해주었다. 내가 있는 곳도 계산대쪽 근처로 사람들이 계산하려다가도 내가 서있는 모습을 보고는 급하게 담아가기도 했다. 이렇듯 딱히 내가 물건을 잘 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많이 사가는 품목이었다.
시식도 잘 나갔다. 손님들은 물건을 사러 둘러보다가도 나의 시식대에 와서 요깃거리 하듯 따끈한 호빵을 한입먹고 한봉지를 담아간다. 그러고 계산할때 다시 와서 시식하는 호빵 한입과 파는 제품을 한봉지 더 담아갔다. 나는 시식용 호빵봉지를 뜯어서 호빵찜기에만 넣고 빼면서 한입크기로 잘라만 두면 되었다. 간단했다. 조리할 것도 없으니 편했다.
“호빵 할인합니다. 증정품도 같이 드리고 있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식호빵을 올려두기만 했는데 가만히 있기는 어색했다. 입을 열 수 밖에 없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별도의 멘트를 하지 않고 호빵만 꺼내어 잘라주면 되었지만, 평일 한적한 오후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눈을 맞추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니, 여기 서있는 나를 바라봐주길 바랬다.
“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돼. 쉬어 쉬어.”
“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착하고, 성실하고, 젊다 젊어.”
빵이모는 항상 비어 가는 매대에 물건을 확인하러 오고 채워주러 왔다. 성실하게 팔려나가는 만큼. 빵이모를 보는 횟수는 많아졌다. 왔다갔다하면서 호빵만을 봤다. 다른 코너에 있는 빵의 경우에는 그렇게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라서 호빵만 잘 보면 된다며 이모는 나에게 항상 왔다.
빵이모는 여기 대형마트가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대기업 임원으로 형편이 나빠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집에 있기만 심심하고, 사람들이 그리워서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다보니 입을 열일이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몇마디 붙이고 나면 잘 시간이라, 빵이모는 하루종일 집에서 입을 붙이고 있다가, 끽해야 3시간 정도 입을 열 시간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하면 하고, 말면 말고-라는 생각으로 마트에 온 이모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마트에 있는 과장이나 팀장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아니ㅡ 우리도 휴게소 만들어 달라니까. 다른 지점에는 이번에 만들었대!”
“어디?"
"구령점! 거기는 있는데 왜 우리는 안 만들어줘?"
"거기는 크잖아요. 여긴 공간이 없잖아.”
“뭐가 없어, 남자들은 담배 피우는 공간도 만들어놓고.”
“우리야, 밖에 부스 설치하는 거고, 휴게 공간은 사무실을 하나 비워야 하잖아.”
“아, 몰라! 만들어줘!”
애교스런 목소리로 빵이모는 마트를 돌아다니고 있던 이팀장의 팔을 잡고 있었다. 마른 가지처럼 긴 이팀장은 빵이모의 손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팀장은 두다리를 벌려 버티고 있었지만, 마른 가지에 매달린 아이마냥 흔들어대는 빵이모를 견디기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이팀장의 가느다란 머리가 흩날리고, 쓰고 있는 안경은 빛에 반사되어서 반짝이고 있는 모습이 제법 웃겼다.
이팀장은 마트자체를 관리하는 총괄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루에 한번에서 두번세번정도는 전반적으로 돌아보면서 빈 물건 없이 잘 채워져 있는지,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새로운 행사품이 나왔거나, 행사물품의 위치를 새로 배치했을때, 잘 두었는지 확인하기도 하였다. 오늘은 할인품목들의 가격표가 잘 붙여져 있는지 확인하던 찰나였는데 빵을 채우던 빵이모는 이팀장을 발견하고는 휴게공간을 요구하고 있었다.
외관이 화려하고 멋진 물건이 많은 마트는 조명부터가 반짝이고 예쁘다. 적어도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은 그러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공간은 협소했고 초라했다.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은 조명마저도 어둡고 깜빡이고 있었고, 사물함은 몇년을 썼던 건지도 모를 정도로 낡았는데, 그 갯수도 모잘라, 직원들에게 다 배치가 안되었다. 사물함을 나눠쓰기도 하고, 없는 사람들은 목욕탕의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사물함 위에 올려두고 쓰기도 했다. 그래서 탈의실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옷을 갈아입는 사람은 적었다. 수산쪽이나 기름냄새가 심하게 베이거나 유니폼을 입어야하는 사람정도 옷을 갈아입었는데, 그런 그들도 사물함을 배치받지 못해, 구석에서 낑낑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들고 다녔다. 그런 우리에게는 휴게공간은 꿈이기도 했다. 일하는 노동자의 복지개선을 위해 밥 먹는 시간 한시간과 휴게시간 30분 정도인데, 마트 내에서 밥을 해결하거나, 휴게시간도 30분이 있지만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어서 그 좁은 탈의실이나 좁은 사무실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쉬어야 했다. 그나마 마트 조끼만 입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조끼를 손가방에 조그만하게 접어서 손님인척 하고 있으면 손님들의 휴게공간을 쓸수도 있었지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의 경우에는 쉬는 모습을 손님들이 장을 보는 마트 내에서 보이면 안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숨어 쉬어야 했던 직원들에게 절실한 건, 휴게공간이었다.
“몰라 몰라, 요즘 호빵 잘 빠지던데, 물건 비지 않게 잘 채워두고.”
“뭘 몰라! 뭐 요즘 우리 복덩이 덕에 내가 바쁘게 일 잘하고 있는데- 힘들어, 나 힘들어서 물건 못 채워두겠어. 그러니까 휴게 공간 필요하다니까- 우리 다들 힘들어!”
이 팀장은 나와 호빵이 채워져있는 매대를 번갈아 보았다.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빵이모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서있고, 하루종일 허공에 소리를 외치고 나면, 입은 바짝마르고 다리는 얼얼하다. 쉬는 시간을 주기는 했지만 쉴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나같은 경우에는 화장실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화장실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싶으면 나가서 다시 쉴 곳을 찾아야만 했다.
“아영 씨?”
“네!”
“아, 안 그래도 인사과장한테 들었어요. 에이스라고, 일도 성실히 하고 맡는 물건 매출은 확실하다며. 안그래도 일일 매출 보고서도 보고 있는데 물건이 작년대비 확실히 더 잘 빠지는 거 같아요. 잘해봐요.”
“알면, 일급 더 올려줘! 고급인력 불러다가 너무 싸게 먹으려는 거 아냐?! 우리 동글이 알지?! 똑똑한 애다?!”
나의 얼굴을 빨개졌다. 남에게서 듣는 나의 칭찬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를 지켜봐 주고 있고, 나의 노력을 알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팀장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렇게 친절하게 말을 붙이는 경우는 없는지라, 그저 빵이모를 회피하고 싶어서 친절한가?라는 생각도 했다. 빵이모는 끊임없이 열심히 일을 하는 직원들을 알렸다. 틈틈히 직원들의 고충과 노력을 알리고 스스럼없이 요구사항에 대해서 당당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또한 듣는 이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말을 했다. 문구 자체만 두고 보자면 상대방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말의 속도, 억양, 표정과 행동이 선을 넘지 않고 적당하게, 우아하면서도 깔끔했기에, 빵이모의 말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무시하지도 않았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존중받고 존중해주고 있었다.
“여기 소속은 거기서 거기지. 다음에 설명절 세트 들어가면서 계약하면 올려줄게.”
“나한테 약속해. 우리 동글이 잘 챙기기로!”
“어어, 그래, 수고-”
“아, 팀장님! 휴게실은?!”
“여사님, 나 간다.”
이 팀장은 그렇게 꽁무니를 뺐다. 빵이모와 서서히 거리를 만들더니, 넓어지는 간격을 보면서, 냅다 달려갔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장난치다 도망가는 듯한 뒷모습이 웃겼다. 어른들만 있는 곳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구나-싶었다. 이팀장의 뒷모습은 경쾌했다. 짜증없이 가볍게 웃으며 도망가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항상 두 분은 티격태격 기분 좋게, 직원들의 복지를 세심하게 챙기고는 있었다. 이 팀장 또한 휴게소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뒤 윗선에서 보고하고 의견을 피력할 만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자료로 올릴 서식과 보고 내용을 빵이모와 공유하였고, 빵이모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직원들의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일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마트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바램을 담았다. 그리고 우리에겐 작은 휴게 공간이 생겼다. 비록 좌식공간에 전기장판과 이불이 몇 채만 있었지만 일하던 이들은 행복해했다. 휴게 공간에서는 저마다 싸 온 김밥과 떡을 나눠먹고, 서로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했고, 몸이 아파도 일을 나와야 한 이들에게는 단 30분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모! 다리마사지기계도 들어왔어요!”
“응, 그거 우리 집에 있던 거 기부”
“이모가 기부한 거예요?!”
휴게공간에는 점점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오랜 기간 마트에서 일하던 이모들이 집에서 안 쓰던 것, 같이 쓰면 좋겠던 것들이 모였다. 다들 손떼가 묻은, 애정어린 물건들이 채워지고 있었다. 마트는 공간만을 내어주었지만, 그 속을 채우고 관리하는 건 직원들의 한 뜻. 한 마음이었다.
이불이나 베개 등의 물품은 각자 돌아가면서 빨래를 해왔다. 나는 당연히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일 때, 이모들은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가능한 것들을 요구를 했다. 불편함을 알고 개선하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원래 있던 것에 대해서 수긍하고 적응하다 보면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일한 빵이모는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고, 불편한 것이 있으면 현실적으로 어떻게 고쳐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제안했다.
휴게공간도 사실 공간이 있어서 만든 것은 아니었다. 너저븐하게 제대로 정리 안된 공간을 발견하고, 그 공간을 깨끗하게 치웠다. 마냥 어지럽게 쌓여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옮기면서 휴게공간이 생긴것이었다. 이팀장이 말하는 공간을 빵이모는 찾아냈고, 다른 이모님들과 일사분란하게 공간을 만들었다. 마트측에서도 직원들 스스로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간을 휴게실-이라는 명패 하나만 걸어주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우리 마트에 이제 휴게실 생겼다?!”
“그래? 많이 좋아졌네.”
“그렇지? 매일 쪼그리고 앉아서 쉬지 않아도 돼.”
“좋아?”
“응!”
"돈이나 더 달라고 하지."
"돈이 다가 아니야. 엄마가 뭐 알아?"
"살아봐. 돈이 다야."
작은 환경의 변화만으로도 다들 사기가 충만해졌다. 사내복지니,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는 고용주 입장에서 굳이 필요한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직접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 배려는 곧 직원들의 사기증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들이 활기차졌다. 처음 출근했을 때 힘을 내더라도 퇴근시간이 될 쯤이면 다들 힘들어서 퀭했었다. 하지만, 휴게실이 생기고부터는 다들 처음 출근했던 모습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근무했던 이모님들의 체력은 단 30분 정도의 낮잠에도 활기찼다. 휴게공간이 생기고 30분의 휴게 시간도 15분씩 끊어 두번을 쉬기도 했다. 길게 30분을 쉬는 사람은 없었다. 그 분위기는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다들 더 열심히 일하는 거 같아.”
“잘됐네.”
“신기해. 그렇게 힘내서 일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도 다들 엄청 더 열심히 일하셔.”
“일은 어차피 해야 하니까, 이왕 하는 거 더 보람되게 하는 거지.”
"엄마- 예전에는 눈뜨고 출근할때 하루종일 일하다가 어디서 쉬어야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손님들 눈치보면서 쉬는게 막막했는데, 휴게실이 생기니까 설레고 좋더라. 힘들게 일하더라도 그 쉬는 시간 생각하면서 버텨."
"그래?"
다들 생업을 짊어지고 일을 했다.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일을 해야 하였기에 일은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짧은 기간,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는 나와는 다르다. 꾸준하게 매일을, 몇 달을, 몇 년을 바라보며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일자리의 작은 변화가, 좋은 변화에 힘을 입어, 더욱 오래도록, 힘차게 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저 작은 공간 하나였다. 쉬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30분의 휴게시간을 두번으로 쪼개서 15분을 잠시 쉬었고, 쉬는 공간 또한 쓸모없게 버려진 작은 모퉁이의 창고였다. 월급이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로 정당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이루어낸 쾌거이자, 존중이었다.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탈의실에서 쉬면서 하루가 끝나기를 바랬는데, 우리의 목소리가 통하였고 노동의 강도를 인정받고, 존중받은 – 그런 곳이었다. 변화가 가능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