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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Oct 14. 2024

 (4) 빵이모 - 1

1부. 일하는 사람들

“동글아. 이모가 빵 비면 채워주니까 너는 그냥 여기서 시식하고, 빵만 잘 팔아.”     


늘씬하고 또렷한 이목구비의 올림머리를 하는 빵이모이다. 빵이모는 길쭉길쭉했다. 늘 웃고 있었고, 우아한 말투와 하늘거리는 손짓이 예쁜 이모였다.     


“네!”     


호빵을 맡아서 일한 지는 일주일이 되지 않았다. 겨울철의 호빵은 마트에서 기획하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에, 딱히 내가 물건을 잘 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많이 사가는 품목이었다. 거기다가 할인기간도 넉넉했기 때문에, 나는 시식배정받은 호빵봉지를 뜯어서 호빵찜기에만 넣고 빼고만 하면 되었다.     


“호빵 할인합니다. 증정품도 같이 드리고 있어요!”     


가만히 있기는 어색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별도의 멘트를 하지 않고 호빵만 꺼내어 잘라주면 되었지만, 평일 한적한 오후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이라도 있다면 눈을 맞추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 그렇게 열심히 안 해도 돼. 쉬어 쉬어.”

“아,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착하고, 성실하고, 젊다 젊어.”     


빵이모는 항상 비어 가는 매대에 물건을 채워주러 왔다. 성실하게 팔려나가는 만큼. 빵이모를 보는 횟수는 많아졌다. 빵이모는 여기 대형마트가 생기고부터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남편은 대기업 임원으로, 집에 있기만 심심하고, 사람들이 그리워서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빵이모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마트에 있는 과장이나 팀장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아니ㅡ 우리도 휴게소 만들어 달라니까. 다른 지점에는 이번에 만들었대!”

“공간이 없잖아.”

“뭐가 없어, 남자들은 담배 피우는 공간도 만들어놓고.”

“우리야, 밖에 부스 설치하는 거고, 휴게 공간은 사무실을 하나 비워야 하잖아.”

“아, 몰라! 만들어줘!”     


빵이모와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끔 팀장은 마트를 돌아본다. 빈 물건 없이 잘 채워져 있는지,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를 확인하던 찰나였다. 빵을 채우던 빵이모는 팀장에게 휴게공간을 요구하고 있었다.

 외관이 화려하고 멋진 물건이 많은 마트는 조명부터가 반짝이고 예쁘다. 하지만 직원들의 공간은 옷 갈아입는 탈의실 정도. 그 탈의실의 조명마저도 어둡고 깜빡이고 있었다. 일하는 노동자의 복지개선을 위해 밥 먹는 시간 한시간과 휴게시간 30분 정도인데, 마트 내에서 밥을 해결하고, 휴게시간도 30분이 있지만 마땅히 쉴 만한 곳이 없어서 탈의실이나 사무실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서 쉬어야 했다. 특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나 직원의 경우에는 쉬는 모습을 마트 내에서 보이면 안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숨어 쉬어야 했던 직원들에게 절실한 건, 휴게공간이었다.     


“몰라 몰라, 요즘 호빵 잘 빠지던데, 물건 비지 않게 잘 채워두고.”

“뭘 몰라! 뭐 요즘 우리 복덩이 덕에 내가 바쁘게 잘하고 있지! 그러니까 휴게 공간 필요하다니까- 우리 힘들어!”     


팀장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기분 나쁜 시선은 아니었지만, 대놓고 보는 시선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영 씨?”

“네!”

“아, 안 그래도 인사과장한테 들었어요. 에이스라고, 일도 성실히 하고 맡는 물건 매출은 확실하다며.”

 “알면, 일급 더 올려줘! 고급인력 불러다가 너무 싸게 먹으려는 거 아냐?! 우리 동글이 알지?! 똑똑한 애다?!”


 나의 얼굴을 빨개졌다. 남에게서 듣는 나의 칭찬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를 지켜봐 주고 있고, 나의 노력을 알고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빵이모는 나를 응원해 주었고, 직원들의 고충과 노력을 알리고 스스럼없이 요구사항에 대해서 당당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또한 듣는 이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말을 했다. 문구 자체만 두고 보자면 상대방이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만, 말의 속도, 억양, 표정과 행동이 선을 넘지 않고 적당하게, 우아하면서도 깔끔했기에, 빵이모의 말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무시하지도 않았고,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존중받고 존중해주고 있었다.


“여기 소속은 거기서 거기지. 다음에 설명절 세트 들어가면서 계약하면 올려줄게.”

“나한테 약속해. 우리 동글이 잘 챙기기로!”

“어어, 그래, 수고-”

“아, 팀장님! 휴게실은?!”

“여사님, 나 간다.”     


팀장님은 그렇게 꽁무니를 뺐다. 하지만 항상 두 분은 티격태격 기분 좋게, 직원들의 복지를 세심하게 챙기고는 있었다. 팀장님은 며칠뒤 윗선에서 보고하고 의견을 피력할 만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관련 자료로 올릴 서식과 보고 내용을 빵이모와 공유하였고, 빵이모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직원들의 서명운동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우리에겐 작은 휴게 공간이 생겼다. 비록 좌식공간에 전기장판과 이불이 몇 채만 있었지만 일하던 이들은 행복해했다. 휴게 공간에서는 저마다 싸 온 김밥과 떡을 나눠먹고, 서로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했고, 몸이 아파도 일을 나와야 한 이들에게는 단 10분의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모! 다리마사지기계도 들어왔어요!”

“응, 그거 우리 집에 있던 거 기부”

“이모가 기부한 거예요?!”     


휴게공간에는 점점 많은 것들이 생겨났다. 오랜 기간 마트에서 일하던 이모들이 집에서 안 쓰던 것, 같이 쓰면 좋겠던 것들이 모였다. 마트는 공간만을 내어주었지만, 그 속을 채우고 관리하는 건 직원들의 한 뜻. 한 마음이었다.

 이불이나 베개 등의 물품은 각자 돌아가면서 빨래를 해왔다. 나는 당연히 없는 것들에 대해서, 그렇구나-라고 받아들일 때, 이모들은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가능한 것들을 요구를 했다. 그 중심에는 항상 빵이모가 있었다.     


“우리 마트에 이제 휴게실 생겼다?!”

“그래? 많이 좋아졌네.”

“그렇지? 매일 쪼그리고 앉아서 쉬지 않아도 돼.”

“좋아?”

“응!”     


작은 환경의 변화만으로도 다들 사기가 충만해졌다. 사내복지니, 일하는 사람들의 배려는 고용주 입장에서 굳이 필요한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늘 했었는데, 직접 일하는 입장에서는 이 배려는 곧 직원들의 사기증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들이 활기차졌다. 처음 출근했을 때 힘을 내더라도 퇴근시간이 될 쯤이면 다들 힘들어서 퀭했었다. 하지만, 휴게실이 생기고부터는 다들 처음 출근했던 모습으로 퇴근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근무했던 이모님들의 체력은 단 10분 정도의 낮잠에도 활기찼다. 그 분위기는 나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다들 더 열심히 일하는 거 같아.”

“잘됐네.”

“신기해. 그렇게 힘내서 일한다고 해서 월급이 오르는 건 아니잖아. 그런데도 다들 엄청 더 열심히 일하셔.”

“일은 어차피 해야 하니까, 이왕 하는 거 더 보람되게 하는 거지.”     


생업을 짊어지고 일을 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일을 해야 한다. 짧은 기간,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는 나와는 다르다. 꾸준하게 매일을, 몇 달을, 몇 년을 바라보며 일하시는 분들에게는 일자리의 작은 변화가, 좋은 변화에 힘을 입어, 더욱 오래도록, 힘차게 일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저 작은 공간 하나였다. 쉬는 시간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월급이 줄어들거나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우리의 목소리로 정당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이루어낸 쾌거이자, 존중이었다. 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탈의실에서 쉬면서 하루가 끝나기를 바랄 때, 노동의 강도를 인정받고, 존중받은 – 그런 곳이었다. 작은 공간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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