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응, 알아요. 오늘 면접자 세명인데, 한 명은 안 온다고 연락 왔고 한 명은 뭐 나머지겠지?”
“아..”
“우리 아영 씨는- 처음이기도 하고 하니까, 마침 서브가 필요한 곳이 있었거든. 거기서 이모님께 조금 일 배우고, 단독 맡는 걸로 하고. 음.. 희야 씨는 수산 가자. 뭐 마스크가, 거기가 맞아.”
“네?”
“거기 분위기랑 잘 맞을 것 같아.”
면접에 합격, 불합격 여부가 아니었다. 그저 배치를 받기 위한 자리였다. 그 배치를 받는 기준은 그저 순수하게 외모였다. 이게 첫 사회인가?라는 생각에 불쾌하였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불쾌한 내색을 비췄지만, 우리의 표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럼, 우리 마트 와본 적 있어요?”
“네.”
“음, 둘 다 그랬을 것 같아. 집이랑 가깝네.”
이력서를 본다. 그리고 집주소를 한번, 우리 얼굴을 한번 본다. 뭔가 모를 기분 나쁨은 계속 깔려있었다.
“일단, 일하는 곳 둘러봐야 하니까, 따라오세요.”
“네”
따로 할 말은 없었다. 오로지 ‘네’라는 한마디면 다 되었다. 좁고 검은 복도를 지난다. 서늘한 창고 같은 곳이 나왔다. 거기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시식대, 물건들이 보였다.
“마침, 이모님들 쉬고 다시 일하러 가는 중이시네. 여기 뭐 나중에 다 알려주겠지만, 여기 시음대, 시식할 물건들 있고, 챙겨서 나가면 되는 거고.,..”
박 과장은 계속 우리에게 말을 했다. 뭘 하면 되고, 무얼 하면 안 되고, 이곳은 어떤 곳이고, 이건 뭐고, 계속 말했다. 면접을 보러 왔다가 갑자기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옆에 있는 희야 씨도 마찬가지였다.
“자, 여기가 마트랑 바로 연결되는 문이에요. 이 문으로 왔다갔다하시면 되고, 이 문 들어가고 나갈 때는 고객들한테 인사하기. 이거 명심해요.”
박 과장은 문밖을 나오면서 허공에 가볍게 목례를 했다. 마트에서 오가는 직원들을 봤지만 가볍게 목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의 가벼운 목례를 하는 예의를 굳이 볼 생각도 못했다.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탄했다.
“희야 씨는 수산팀.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아영 씨 잠시만,”
수산코너의 냉장실로 들어간 박 과장은 새로 뽑은 아르바이트 생이라면서 흰 앞치마를 매고 있는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나왔다. 희야 씨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인계되고 있었다.
“뭐, 수산코너는 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라요. 그냥 사람 필요하다고 하면 뽑아다 주고, 저기서 이제 필요한 일 시키니까. 아영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저기 힘들거든.”
“네?”
“아니, 아영 씨가 싹싹해 보이고, 잘 웃고, 예쁘니까- 저기 안 보낸 거야. 이거 알아줘야 한다?”
“감사합니다.”
“그르치”
박 과장은 웃으면서 뿌듯해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민망한 건 내 몫이었다. 하지만 박 과장에게 고마운 건 맞았다. 수산코너 쪽의 비릿한 냄새는 참기가 힘들었다.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지만, 저기 미끌거리는 생선들을 만져야 했다면,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은 맞았을 것이다.
“여사님- 여기 보조.”
“왔나!”
“안녕하세요.”
“아이고야, 아기네 아기. 피부 솜털 봐라.”
“여사님, 그래도 엄연히 일하러 온 동료야. 잘해줘, 잘 가르쳐주고,”
“그래그래, 우리 딸보다 어린 거 같은데, 잘해보자잉.”
호떡을 굽고 계셨다. 호떡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호떡을 굽고 있는 이모님은 인심이 좋아 보였다.
“호떡 잘 팔려요?”
“어! 그래서 내가 말했다이가, 보조 필요하다고, 아니- 본사에서는 개당 몇 개 나갔는지 체크해달라카제, 호떡 굽다가 물건 뺐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야야, 니는 호떡 안 구워도 된디. 뭐 요즘 아덜이 이런 거 구워나 봤겠나. 니는 손님 호객하고, 물건 채워주고 하면 된다.”
“넵!”
“그래그래, 잘 부탁한다.”
웃고 있던 이모님는 바로 고객들에게 잡으면서 호떡을 시식했고, 능숙하게 물건을 건네면서 손님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좋은 사수예요. 여사님이 에이스야. 잘 배워요.”
웃으면서 박 과장은, 알려줄 곳과 복장에 대해 알려줄 것은 다 알려주었다며, 바로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그 마트에 우두커니 서서 이모님을 보고 있었다.
“내일부터 출근이제? 내일 보자. 어여 들어가.”
나는 인사를 드리고, 직원통로로 갔다. 방문증은 반납하고, 신분증을 받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오고 갈 문은 달랐다. 내가 다녀야 할 문은 뒷문이었다. 쭈뼛쭈뼛 거리면서 직원이 출입하는 문 앞에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들어갔다. 기분이 묘했다.
방문증을 반납하고 작은 문을 나오자, 밝은 빛이 괜히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이제 직장이 된 것이다.
“안녕?”
“안녕..”
희야였다. 희야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 올해 수능 쳤는데, 너는?”
“나도!”
“동갑이네. 우리 잘 지내자.”
“그래.”
“수산코너는 어때?”
“그냥.. 쉽진 않을 것 같아.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 보여. 너는?”
“나 호떡이야. 나도 같이 하시는 이모님도 좋으신 분 같아.”
희야와는 짧게 인사를 했지만, 그 뒤로 보기는 힘들었다. 마트가 워낙 크기도 했고, 수산, 축산 쪽과는 일하는 체계가 완전히 달랐기에 볼일도 없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한 채, 일만 했다.
"엄마, 나 호떡이야."
"호떡?"
"호떡 시식쪽에서 일하게 됐어."
"잘 됐네."
"근데, 나랑 같이 면접본 애는 수산으로 갔다?"
"거기 힘든데."
"알아?"
"알지, 냄새도 많이나서, 거기 냄새 잘 안 빠지거든. 나이가 많았나?"
"나랑 동갑."
"그건 너무 했네, 왠만한 아줌마들도 버티기 힘든곳인데. 너는 어찌 수산 안빠졌다?"
"그래서, 나 면접본 과장이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나 위아래로 훝는거 있지?!"
"이런 개-.. 뭐 그래, 그게 사회지. 그래도 막 만지거나 하진 않지?"
"에이- 요즘 어떤 시댄데."
"조심해라. 그래도, 참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당연하지!"
첫 알바였다. 첫 면접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함께 할지도, 또는 짧은 시간을 함께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게 개의치 않았고, 진지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바탕 쏟아내고 난 뒤, 잃어버리는 나였다. 오늘 마트에서의 면접도 그런 수많은 날들 중, 찝찝하고도 묘한 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화려한 마트 뒤의 초라한 근무환경과 평범한 외모로도 우위를 가리는 짧은 면접. 학교에서 숫자로 매겨지는 점수보다도 주관적이지만 직관적인 사람들마다의 위치. 그 짙은 하루가 나에게 깊게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