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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면접

1부. 일하는 사람들.

by 김현정

“저는-”

“응, 알아요. 오늘 면접자 세명인데, 한 명은 안 온다고 연락 왔고 한 명은 뭐 나머지겠지?”

“아..”

“우리 아영 씨는- 처음이기도 하고 하니까, 마침 서브가 필요한 곳이 있었거든. 거기서 이모님께 조금 일 배우고, 단독 맡는 걸로 하고. 음.. 희야 씨는 수산 가자. 뭐 마스크가, 거기가 맞아.”

“네?”

“거기 분위기랑 잘 맞을 것 같아.”


면접에 합격, 불합격 여부가 아니었다. 그저 배치를 받기 위한 자리였다. 그 배치를 받는 기준은 그저 순수하게 외모였다. 이게 첫 사회인가?라는 생각에 불쾌하였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불쾌한 내색을 비췄지만, 우리의 표정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우리를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럼, 우리 마트 와본 적 있어요?”

“네.”

“음, 둘 다 그랬을 것 같아. 집이랑 가깝네.”


이력서를 본다. 그리고 집주소를 한번, 우리 얼굴을 한번 본다. 뭔가 모를 기분 나쁨은 계속 깔려있었다. 짧은 이력서였다. 이름과 나이, 사진이 붙어있다. 학력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이력이라 할 것도 없는 한장의 종잇장에 불과했다. 그걸 그는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분명 글자가 아닌, 우리의 얼굴만을 보고 있었다.


“일단, 일하는 곳 둘러봐야 하니까, 따라오세요.”

“네”


따로 할 말은 없었다. 우리가 할 말은 없었다. 묻는 말과 지시하는 말에 오로지 ‘네’라는 한마디면 다 되었다. 많은 말을 할 수 있다. 많은 말을 할 줄도 안다. 기분 나쁜 시선에 대해서, 어중간하게 짧은 말에 대해서 한마디를 붙여볼까도 하지만, 붙일 필요가 없었고 붙일 수도 없었다. 불필요한 것들은 다 생략되는 순간이었고, 그런 곳이었다.

그를 따라 좁고 검은 복도를 지난다. 좁은 복도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기도 불편하다. 마주해서 오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벽에 붙는다. 따라가는 우리도 벽에 붙어 스쳤다. 그 길고 좁은 복도를 지나니 서늘한 창고 같은 곳이 나왔다. 어두웠고 서늘했다.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축축한 느낌이었다.

어릴 적에 학예회 준비로 무대뒤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준비했던 때가 있었다. 무대뒤는 부산스러웠고 아이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별거 아닌 듯 낄낄대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무대 뒤의 바닥은 여러 물건들이 널브러져 자세히 보지 않고 걸으면 넘어지기 쉽상이었다. 그러다가 막이 오르면서, 아이들이 무대 앞으로 뛰어갔는데, 깨끗하게 치워져있던 무대가 넓었고, 매끈하고 미끈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긴장한 채로 그 무대를 즐겼었다. 낯선 그를 따라간 이곳은 그때의 화려한 무대 뒤에 있는 연극무대와 같은 곳의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시식대, 물건들이 보였다. 마트에서 장볼때는 보지 못했던 외지고 어둡고, 부산스러운 곳이었다.


“마침, 이모님들 쉬고 다시 일하러 가는 중이시네. 여기 뭐 나중에 다 알려주겠지만, 여기 시음대, 시식할 물건들 있고, 챙겨서 나가면 되는 거고.,..”


이모님들은 시음대를 끌고 나가고 있었다. 한꺼번에 우르르 나간다. 그 틈에 박과장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모님들이었다. 그런 이모님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드는 박 과장은 계속 우리에게 말을 했다. 뭘 하면 되고, 무얼 하면 안 되고, 이곳은 어떤 곳이고, 이건 뭐고, 계속 말했다. 그의 말은 우리의 귀를 스쳐갈뿐이었다. 머물었다 갈 정도로 친절하지도 않았다. 면접을 보러 왔다가 갑자기 현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옆에 있는 희야 씨도 마찬가지였다.


“자, 여기가 마트랑 바로 연결되는 문이에요. 이 문으로 왔다갔다하시면 되고, 이 문 들어가고 나갈 때는 고객들한테 인사하기. 이거 명심해요.”


박 과장은 문밖을 나오면서 허공에 가볍게 목례를 했다. 마트에서 오가는 직원들을 봤지만 가볍게 목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던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의 가벼운 목례를 하는 예의를 굳이 볼 생각도 못했다.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그 인사는 허공에 날아갔지만, 직원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습관인 것 처럼. 무대에 오르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이는 의식과도 같았다.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그들에게 나는 감탄했다.

“희야 씨는 수산팀.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는데, 아영 씨 잠시만,”


수산코너의 냉장실로 들어간 박 과장은 새로 뽑은 아르바이트 생이라면서 흰 앞치마를 매고 있는 사람에게 소개해주었다. 덩치가 큰 사람이 박과장의 불음에 나와 나란히 서있는 희야씨를 바라보았다.


"너무 작은데?"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인원 보충 해달라고는 했는데, 그래도."

"생선 잡을 사람 필요한 거 아니잖아. 옆에 서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생선잡아서 손님들 비닐에 넣는건 할 줄 알아요?"

덩치 큰 사람은 희야씨가 탐탁치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희야 씨가 대답하려는 찰나였다.


"우린 가볼께요- 한사람 더 있어서. 인계 잘해주고."


희야씨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인계되고 있었다. 생선들이 있는 곳에 덩치가 큰 사람에게. 그저 툭. 과자박스 하나 던져놓듯, 나중에 누군가 정리 할 것처럼 생뚱맞는 물건을 두고 가듯, 그렇게 그 앞에 희야씨를 던졌다.


“뭐, 수산코너는 나도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라요. 그냥 사람 필요하다고 하면 뽑아다 주고, 저기서 이제 필요한 일 시키니까. 아영 씨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저기 힘들거든.”

“네?”

“아니, 아영 씨가 싹싹해 보이고, 잘 웃고, 예쁘니까- 저기 안 보낸 거야. 이거 알아줘야 한다?”

“감사합니다.”

“그르치”


박 과장은 웃으면서 뿌듯해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민망한 건 내 몫이었다. 하지만 박 과장에게 고마운 건 맞았다. 수산코너 쪽의 비릿한 냄새는 참기가 힘들었다. 희야씨가 아니었다면 내가 저렇게 아무렇게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을 할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비릿한 해산물들과 함께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음은 맞았을 것이다.


“여사님- 여기 보조.”

“왔나!”

“안녕하세요.”

“아이고야, 아기네 아기. 피부 솜털 봐라.”

“여사님, 그래도 엄연히 일하러 온 동료야. 잘해줘, 잘 가르쳐주고.”

“그래그래, 우리 딸보다 어린 거 같은데, 잘해보자잉.”

과장이 데리고 간 곳에 서있는 이모님은 호떡을 굽고 계셨다. 호떡할인행사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고소한 콩기름 냄새에 걸쭉하게 튀겨지고 있는 호떡 반죽의 냄새는 고소했다. 불 앞이 뜨거웠던 걸까? 싶은 붉은 뺨을 한 이모님의 푸근하고 넉넉한 넉살에 안심이 되었다.

“호떡 잘 팔려요?”

“어! 그래서 내가 말했다이가, 보조 필요하다고, 아니- 본사에서는 개당 몇 개 나갔는지 체크해달라카제, 호떡 굽다가 물건 뺐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야야, 니는 호떡 안 구워도 된디. 뭐 요즘 아덜이 이런 거 구워나 봤겠나. 니는 손님 호객하고, 물건 채워주고 하면 된다.”

“넵!”

“그래그래, 잘 부탁한다.”


웃고 있던 이모님는 지나가던 고객들에게 잡으면서 호떡을 시식을 권했다. 갓 구운 호떡을 잘라서 주는데, 안에 있던 흐르는 흑설탕은 걸쭉했다. 달콤한 향에 꼬숩한 호떡. 그리고 인심좋은 이모님은 능숙하게 물건을 건네면서 손님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 과정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손님들의 카트에는 작은 호떡 믹서가 두세개씩 담기고 있었다.


“좋은 사수예요. 여사님이 에이스야. 잘 배워요.”


웃으면서 박 과장은, 알려줄 곳과 복장에 대해 알려줄 것은 다 알려주었다며, 바로 집으로 가도 된다고 했다. 혼자 바삐 말하던 박과장은 주변의 이모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사라졌다. 나는 그 마트에 우두커니 서서 이모님을 보고 있었다.


“내일부터 출근이제? 내일 보자. 어여 들어가. 이거 하나 쉬고 가니라.”


호떡 하나를 반으로 접어서 두겹으로 겹친 종이컵에 넣어주셨다. 갓 구운 호떡에서 베어나오는 기름이 종이컵에 물들었다. 비릿한 생선냄새를 맡은지 얼마 안되었는데, 고소한 호떡의 향은 지난 순간의 불쾌감을 던지게 해주었다. 고마운 이모님이었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직원통로로 갔다. 방문증은 반납하고, 신분증을 받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오고 갈 문은 달랐다. 내가 다녀야 할 문은 뒷문이었다. 쭈뼛쭈뼛 거리면서 직원이 출입하는 문 앞에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들어갔다. 기분이 묘했다. 한손에 들고있던 따끈한 호떡을 바라보면서 주변을 지나다니는 직원들의 눈이 무서워보였다. 다들 내 호떡만을 보고 있는 듯 했다.

방문증을 반납하고 작은 문을 나오자, 밝은 빛이 괜히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한 손에 들린 호떡을 후후 불어서 먹어본다. 뜨겁지 않았다. 빙빙 돌아서 나오던 멀고도 짧은 길에서 식어버린 호떡이었다. 달달하고 고소한 호떡이, 따뜻한 기름이 나의 긴장을 녹여주었다. 여기가 이제 직장이 된 것이다. 하늘을 바라본다.


“안녕?”

“안녕..”


조용하게 낮은 목소리가 내 뒤에서 흘려왔다. 희야였다. 희야는 씁쓸한 표정으로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에게서는 희미한 생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괜히 내가 들고 있던 호떡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고, 미안했다. 등뒤로 호떡을 숨겼다.


“나 올해 수능 쳤는데, 너는?”

“나도!”

“동갑이네. 우리 잘 지내자.”

“그래.”

“수산코너는 어때?”

“그냥.. 쉽진 않을 것 같아. 그래도 사람들은 좋아 보여. 너는?”

“나 호떡이야. 나도 같이 하시는 이모님도 좋으신 분 같아.”


어짜피 알게 될 텐데- 라는 생각에 뒤로 숨긴 호떡을 보이면서 말했다. 한입 베어물은 설탕이 흐르고 있는 호떡은 갑자기 초라해보였다. 미안함에서였을 것이다. 초라해 보이길 바랬을 것이다. 호떡도 받았냐며 부러워하는 희야와는 짧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뒤로 보기는 힘들었다. 마트가 워낙 크기도 했고, 수산, 축산 쪽은 일반 마트 코너와 일하는 체계가 완전히 달랐기에 볼일도 없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만 한 채, 일만 했다.


"엄마, 나 호떡이야."

"호떡?"

"호떡 시식쪽에서 일하게 됐어."

"잘 됐네."

"근데, 나랑 같이 면접본 애는 수산으로 갔다?"

"거기 힘든데."

"알아?"

"알지, 냄새도 많이나서, 거기 냄새 잘 안 빠지거든. 나이가 많았나?"

"나랑 동갑."

"그건 너무 했네, 왠만한 아줌마들도 버티기 힘든곳인데. 너는 어찌 수산 안빠졌다?"

"그래서, 나 면접본 과장이 나보고 고마워하라고, 나 위아래로 훝는거 있지?!"

"이런 개-.. 뭐 그래, 그게 사회지. 그래도 막 만지거나 하진 않지?"

"에이- 요즘 어떤 시댄데."

"조심해라. 그래도, 참고 있을 필요는 없다."

"당연하지!"


첫 알바였다. 첫 면접이었다. 기나긴 시간을 함께 할지도, 또는 짧은 시간을 함께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게 개의치 않았고, 진지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날그날의 일들을 한바탕 쏟아내고 난 뒤, 잃어버리는 나였다. 오늘 마트에서의 면접도 그런 수많은 날들 중, 찝찝하고도 묘한 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화려한 마트 뒤의 초라한 근무환경과 평범한 외모로도 우위를 가리는 짧은 면접. 학교에서 숫자로 매겨지는 점수보다도 주관적이지만 직관적인 사람들마다의 위치. 그 짙은 하루가 나에게 깊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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