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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Sep 23. 2024

(1) 마트에 간다.

1부. 일하는 사람.

어릴 적부터 마트는 나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시장보다는 마트. 다양한 물건과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 백화점은 나를 위축시킬 때도 있지만, 대형마트는 합리적인 가격과 함께 내 어깨를 쓸어주면서, ’이 정도는 살 수 있잖아?’라고 용기를 주는 듯한 곳이었다. 그렇게 깔끔한 공간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나는 부자가 되는 느낌이었고, 이것저것 물건을 보면서 여유롭게 고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나에게는 너무 익숙했고 좋았다. 오늘도 그렇게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에 와서 장을 보고 있었다.     


“이제 일해야지.”

“오늘 수능 끝났는데?”

“그러니까- 내가 너 공부, 딱 고등학교까지라고 했지, 대학은 성인인데 네 돈으로 가야지.”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나는 너 키우면서 계속 말했다?”     


웃으면서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나는 그저 그런 엄마의 얼굴을 외면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저런 물건을 살펴보면서 카트에 늘어나는 짐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수능이 끝이 났고, 미성년자로서 보호는 끝난 날이기도 하다. 이제 곧 대학에 들어가면 성인으로서의 독립이 시작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이 서서히 올 줄 알았건만 이렇게 나에게 던져질 줄은 몰랐다. 카트 안에 담긴 물건들은 다 필요한 건데, 이게 다 얼마였던가? 하며 잘 하지도 못하는 암산만 해 본다.


 “음.. 엄마, 카페알바나, 영화관 알바 어때?”

 “그게 돈이 되니?”

 “무시하지 마! 돈 되지 그럼.”

 “너 뽑아준다는 보장은 있고?”

 “이제 이력서 넣어보면 되지.”

 “웃기고 있네, 그리고 엄마가 너 시급 대충 받으면서 일하라는 건 줄 아니? 그걸로 니 등록금이랑 생활비 충당이 되겠어?”

“무슨 소리야?”

“내가 너 일하라고 했지, 소꿉장난하랬냐? 마트나 가.”

“여기가 마트잖아.”

“누가 장 보러 가라고 하니, 일하러 가라고.”     


내가 생각한 건 시급으로 계산되는 아르바이트였다. 그리고 엄마가 생각하는 건 일급, 월급을 주는 진정한 ‘일’이었다. 갓 20살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카페나, 영화관, 또는 레스토랑 서빙 같은 일을 '가볍게' 하게 될 줄 알았다. 아주머니들과 함께 마트에서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마트에서 알바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트에서 일을 한다는 건 결코 가볍지 않은 진중한 '생업'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단순하지도 않았고 가볍지도 않았다. 생업을 하는 이들 사이로, 단순한 파트타임의 어린 아이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지도 두려웠다. 그리고 그들 틈속에 있을 나의 모습이 다른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피하고 싶었다.


“거짓말. 농담이지?”

“돈이 우습니? 농담하게,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공부해, 옛날에는 원래 내가 벌고, 내가 공부해서 밥길 찾았어.”

“나 학교도 가야 하는데 무슨 마트에서 일해!”

“월급 꽤 쎄다. 방학 때마다 일해도 충분해. 엄마 친구한테 부탁해 놨으니까, 면접 봐라.”     


동네에 대형마트였다. 어릴 적부터 학교를 마치고 나면 대형마트에 갔었다. 대형마트에는 푸드코트도 있고, 친구들의 선물을 살 수도 있었고, 쾌적하고 넓었다. 가끔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슈퍼가 아닌 마트에서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이면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예쁜 옷과 가방도 있었다. 열심히 구경하고 나면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었고, 친구들과는 만남의 장소였던 내 추억의 마트였다. 나에게 마트란 그런 곳이었다. 내가 일을 하게 될 곳이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야, 우리 엄마 너무 하지 않냐?”

“생각지도 못하긴 했다. 그래도 알바 구하려고 돌아다니진 않아도 좋네.”

“어디까지 면접이야.”

“붙겠지.”

“마트에 젊은 사람들 있던가?”

“글쎄. 나도 일하시는 분들 제대로 본 적은 없는데,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너 거기 붙으면, 나 놀러가도 되냐?"

"너 거의 맨날 오잖아. 내 핑계 대지마."

"인정. 마트에서 일할 이아영- 올 -"

“뭐래. 됐어. 전화 끊자. 이제 마트 도착.”

 “면접 후기 알려줘-”     


 손님으로만 오던 내가 직원들이 이용하는 뒷문으로 들어가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을 보는 날. 처음으로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를 맞이해 주던 큰 정문과 다르게, 후문은 직원들의 담배연기 속에 가려져 있었고, 좁았다. 작은 쪽문 같은 문으로 들어가니, ‘보안’이라는 조끼를 입은 사람이 매섭게 쳐다봤다. 추운 겨울이라, 작은 쪽문에서 새어 나오는 추위에 건물 안은 밖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오늘 면접 보러 왔는데요.”

 “여기 성함이랑 전화번호 쓰시고, 민증 주세요.”


 방문자 목록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 방문 목적을 쓰는 곳이 있었고, 주민등록증과 방문증을 맞바꾸었다. 방문증에는 방문자라는 굵은 글씨와 마트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방문자 목걸이를 목에 걸고, 보안직원분 뒤편의 좁은 계단으로 한참을 걸어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불은 깜빡이면서 어두웠다. 화려한 대형마트 뒤편은 그저 일하러 몰려온 사람들의 통로에 불과했다. 3층정도 도착할 때쯤 마트직원들의 공간이 나왔다. 화려한 마트 구석의 사무실.

 사람들은 분주했다. 앞치마를 두른 사람,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 무전을 하는 사람. 등 많은 사람이 오갔다.     

 “저, 면접 보러 왔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면접?”     


 조끼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눈을 살짝 찌푸리다 쳐다보고는 바로 앞 투명한 사무실 창으로 들어갔다.  

   

 “오늘 면접 있나?”

 “인원 충원한다고 박 과장님이 하던 거 같던데.”

 “몇 명?”

 “세명인가?”

 “여기 왔는데. 다른 사람들 왔어?”

 “두 번째네, 첫 번째 사람은 안쪽 사무실에 있어.”

 “오케이-”     


조끼를 입은 사람은 저 멀리 끝에, 보이는 방을 가리키며 가보라 했다. 나무문도 아니고, 철문도 아닌, 가벽을 세워 만든 사무실인 듯 벽과 문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는 그런 곳이었다. 유독 그 공간에서도 소외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무실과는 전혀 달랐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오늘 총 세명오기로 했는데, 두 번째네요.”

 “아, 제가 늦었나요?”

 “아니, 딱 맞춰서 잘 왔어요. 이름이?”

“이아영입니다.”

“이름에 다 이응이 들어가네요. 동글동글.”

“네?”     


 면접을 보는 과장은 검은 뿔테안경을 쓴 키 작은 40대 중반의 아저씨 었다. 부드러운 면접을 위해서 그저 농담하는 거라고 했다. 웃고 있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찬찬히 뜯어보는 눈빛이 매서웠다. 분명 차가운 겨울이건만, 이 안은 서늘하고도 더운 공기 속에서도 숨이 막혔다.

 다른 한 사람은 벽을 보고 앉아 있었다. 나도 그 사람 옆으로 가 앉았다. 마지막 한 사람을 기다리며 우리는 그렇게 계속 벽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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