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트에서 일을 했던 건 벌써 1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이다. 나의 세대는 학자금대출의 노예가 되고, 취업난을 겪었고,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험한 일을 하기를 꺼려하던 시대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하더라도,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에 들어가는 선택은 드물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바르게 자라나는 것을 목표로, 대학진학은 필수였다. 빚더미에 오르더라도 4년제 대학을 가야 했고, 취업이 잘되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지방에 살던 나는 더욱더 그 틀속에서 당연하다듯이 살았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생활을 임했다. 엄마, 아빠의 기대에 부흥-이라기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옳다고 배웠고,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번듯한 대학에 들어가야 사람취급을 받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성적은 그저 그런 대학에 취업이 적당하게 될 수 있는 대학에 갈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런 뻔하디 뻔한 대학은 들어가기 싫었다. 그래서 택했던 것이, 대학이름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누구나가 인정해 줄 법한 과로 들어가고 싶었다. 나의 그럴싸한 선택은 지방의 법대였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기가 싫었다. 법대에 들어간 이유로는 당시 책을 좋아했던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볼 만한 책중에 법 관련 책은 없었다는 점. 무지가 죄라는 말에 따라 법을 일체 모르는 내가, 우리 가족이 법 테두리 안에서 살려면 배워야 할 것 같았다.라는 번지르르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당연한 이유는 그저 무시당하기 싫었다. 였을 것이다. 머리가 나쁘다. 공부를 못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가 성인으로 첫 발을 떼는 순간. 성인이 된다는 그 지점. 수능을 끝내고 바로 일을 했다. 그 일은 마트일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합격해서도 마트일을 했고, 방학마다 이 일을 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했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그때의 시선은 젊은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학교에서는 다들 이야기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사람의 귀함은 직업에 귀결되는 것이 아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사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 알고는 있었지만, 알고 있었기에 이름도 없는 지방의 법대를 택한 나였지만, 현실의 벽은 더 컸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뻔한 이야기보다도 더 복잡한 삶이 있었다. 인생에서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얼마를 벌고는 크게 중요한 듯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사연이 있었고, 인생을 잘못 살아서도, 잘 살아서도, 아니었다. 그냥 살고 있었다. 수많은 삶이었다.
마트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일하러 오는 사람들,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 놀러 오는 사람들. 기분전환으로, 또는 정말 필요한 것을 사러 오는 사람들. 나는 사람 사는 냄새가 진득했던 마트가 좋았다. 환한 조명에 생기 도는 마트의 모습은 나에게는 인상적이었고, 즐겁고 행복했다.
어린 날, 부모님의 선물을 사러 가기도 했고, 친구들과의 약속장소가 되기도 했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해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면 부자가 된 느낌이기도 했다. 일을 할 때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한 곳이었다. 낡은 시장 골목에서만 사람들의 온기, 서민들의 삶이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말 속에서, 크고 깨끗하고 마트는 나에게는 꿈과 환상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 곳 또한 우리의 삶이 옹골지게 모여있는 곳이었다. 우리 사회의 갖은 모습들이 모여있었고 사연이 있었다. 20대의 나의 마트는 온기가 넘치고, 외로움을 달래고, 나의 진득한 고민을 해결해 주던 고맙고 소중한 곳이었다. 나의 오래 전의 첫 직장. 나의 마트. 그곳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