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일하는 사람들
”남편분은 요즘 마트 안 오시네요. “
”마음대로 하래. “
”잘됐어요! “
”그렇다고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야. 여전히 못마땅해 “
”아.. “
”자기는 교단에 서는데, 나는 시음대에 서있으니, 그 모습이 달라 보였겠지. “
”그럴 수도 있죠. “
”모순이야. 교단 앞에서는 직업에 귀천 없고, 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자기 와이프가 마트에서 일하는 게 부끄럽다고 하니까. “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셨었나 봐요. “
”응. 내가 일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만 보니까, 나 자신이 부끄러웠거든. 무언갈 하고 있는 거 같지 않는 거 같았어. 그래서 주부가 싫었거든. 그땐 나에게 직업에 귀천 없다 했었어. “
”주부도 바쁘잖아요. “
”바쁘지. 그런데 혼자서 집안일 꼼지락 하고, 돈을 버는 거도 아니니까, 좀 그랬거든. 그랬을 때, 주부도 중요한 사람이라고. 직업에 귀천 없다고. 이렇게만 있어줘도 고맙다고 했는데. 마트일은 아니었나 봐. 자기 체면이 안 섰나. “
메밀차 이모의 먼 시선은 즐겁게 장을 보는 가족들에게로 갔다. 활기 돋는 마트의 부산스러운 소리가 이모의 표정과는 대비되고 있었다. 가족들을 위해 집에서 조용히 살림을 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이렇게 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인정해주지 않는 가족들에 대한 씁쓸함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메밀차 이모는 월급이 나오는 날, 마트에서 장을 봤다. 아이들의 선물과 남편에게 줄 브랜드 손수건을 샀다. 처음으로 스스로 번 돈이라며, 원 없이 사보겠다고 했다. 생선과 고기를 고민하면서 고기를 담고, 과일은 제철과일로 담았다. 할인폭이 큰 제품을 우선으로 보기보다, 신선도를 보면서 담았다. 집에서 떨어진 양념을 사면서 뒤에 들어간 성분을 꼼꼼히 따졌다. 그렇게 차례로 물건들을 담아갔다. 그 모습이 신나 보였다. 이모의 카트 위에는 알차게 물건들이 쌓이고 있었다. 과하지도 않게,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하게 쌓인 물건을 보고 있노라니 평소의 이모라면-이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장을 본다고 봤는데, 돈이 남네. “
”이모님 위한 선물을 샀어요? “
”내 거? “
”네, 이모님 꺼요. “
”내 꺼가 왜 필요해. 가족들 것만 있으면 되지. “
”이모님이 고생해서 번 돈인데, 없으면 안 되죠! “
메밀차 이모는 크게 놀랬다. 눈이 동그래지면서 꼭 다물던 입이 살짝 움직였다. 자신이 번 돈을 자신에게 써보겠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하였다. 자신을 위한 물건을 사야 한다는 말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무엇을 살지, 무엇이 자신을 위한 것인지 찰나의 생각이 보였다.
”살 거 있어! “
”뭐예요? “
메밀차 이모는 갈색 가죽의 양장본. 두꺼운 노트와 잘 써지는 펜세트를 하나 샀다. 다른 건 없었다. 그저 젊은 시절 사랑했던 글을 필사하고, 글을 창작해 보리. 담대한 표정이, 꼭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렇게 장을 보고 간 이모를 바라보면서 본 우리는 이모님이 일을 그만두고, 글을 쓰러 갈 줄 알았다. 하지만 이모님은 계속 마트일을 했다.
”요즘에 글 쓰신다면서요? “
”응 “
”일은 계속하시고요? “
”일은 해야지. “
”왜요? “
”여기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있잖아. 나는 필사를 좋아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필사하려고. “
”필사만 하실 거예요? “
”필사하는 게 창작이고, 창작이 곧 사람의 모습을 필사하는 거니까. 지금 일이 딱이야. “
메밀차 이모는 처음 산 노트가 닳고 닳을 때까지 필사를 했다. 사람들을 보면서 필사를 했다. 어느 조용한 공간에서 두껍고 어려운 책을 펼쳐놓고 필사를 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필사를 했다. 글을 쓰고 있다. 창작을 하고 있다가 아니라, 사람들을 필사한다고 말했다. 가끔 시를 쓴다는 말을 했지만 그것도 삶의 일부를 필사한다고 표현했다. 메밀차 이모는 사람들을, 필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에 작은 공모전에 넣었어. “
”정말요? 결과는 언제 나와요? “
”나왔지. “
”아. “
”나 됐어! “
메밀차 이모가 나에게 말을 했을 때, 결과는 이미 나왔다고 했을 때, 잠깐의 정적이 그렇게 무색할 수가 없었다. 메밀차 이모는 공모전 수상을 해였다. 지역의 어느 작은 공모전에 당선되어 작은 상금과 상패를 받았다고 했다. 그냥 그렇게 메밀차 이모의 도전은 조용하게 시작되었고, 조용하게 하나씩 이루고 있었다.
”그럼 진짜 작가님이네요. “
”시인“
”네? “
”시 넣었거든. “
”멋있어요! 앞으로 그럼 시인으로 활동하시는 거예요? “
”시를 더 열심히 써봐야지. “
”일 계속해도 돼요? “
”계속할 거야. “
”막 앉아서 고민하고 쓰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아니- 그런 건 싫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지낼 거야.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에 가두고 싶지 않아. “
메밀차 이모는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시를 짓는 사람으로, ‘업’이라기보다 사람이 시가 되어 인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 했다. ‘작가’. ‘문예가’. ‘문필가’ 등의 ‘가’로 지칭되는 사람의 직업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시인이 되기를 원했다. 시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일을 했다. 메밀차 이모는 마트에 열심히 나왔다. 어느 날에는 아이스크림 이모가 되었고, 식초 이모가 되었다. 그렇게 이모는 마트에서 여러 이모님들과 어울리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신 오늘은 언제 마치지? “
”곧 마쳐요. 항상 같아. “
”그럼 마트 한 바퀴 돌고 있을게. 어느 코너에 있을까? “
”가전 쪽에 있어요. 당신 가전제품 좋아하잖아요. “
”그럼 거기에 있을게. “
일하는 기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교수인 남편도 마트에 와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메밀차 이모는 웃고 있었다. 자신을 인정해 준 남편이 사랑스럽다고 했다. 더욱더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아이들도 할인하는 물건이 있으면 사달라고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오늘도 메밀차 이모는 마트로 와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메밀차 이모의 남편은 색이 예쁘게 물든 가죽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보고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시계 잘 안 보지? “
”네. “
”우리는 아직 시계를 봐. “
”시계 하고 계신지 몰랐어요. “
”나는 시간을 잘 보지 않으니까. “
”왜요? “
”마칠 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이 우르르 퇴근을 하잖아. 그때 같이 하면 되니까. 시계는 늘 하고 있었어서, 편해서 하는 거구. “
”예뻐요. “
”우리 결혼했을 때 예물로 한 시계야. 줄을 몇 번이나 갈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유행 안 타고 좋아. 남편도 좋아해서 항상 차고 있어. 남들 휴대폰 보면서 시간 확인할 때, 홀로 시계를 보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게 좋다더라. “
메밀차 이모와 남편의 시간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이모는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워내고, 가족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책임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며 마트를 다니고 있다. 남편은 결혼하여 지금까지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한결같은 자세로 한결같이 일을 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바라보는 시간은 같다 하였다. 그 시간은 가족들에서 자신에게로 돌아가고 있었다. 메밀차 이모가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되찾아갈 때쯤, 남편의 시간도 가족들을 위한 시간에서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지기 위하여 흐르고 있었다.
”요즘에 취미를 찾더라고. “
”남편분이요? “
”응. 원래 없었거든. 어디 모임도 잘 안 가고. “
”취미 찾으셨어요? “
”나무 깎아. “
”네? “
”집에서 조용히 음악 틀어놓고 조각해. “
”멋있어요! “
”손이 늘 너덜너덜해. 조심한다 해도 잘 안 된다나 봐. “
시간은 흘러갔다. 주변인과 함께 흘러가기도 했고, 나만의 시간이 따로 흘러가기도 했다. 메밀차 이모의 부부도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서로를 인정했다. 조금씩 그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보이는 시계와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조금씩 떨쳐내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면서 여러 가지를 찾았다. 메밀차 이모에게는 마트일이 그러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이상적인 자리가 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그 행복은 작지만 길고, 조용했다. 조용한 행복은 만족도도 깊었다. 사람마다의 차이가 있겠지.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찾는 이 작은 행복을 아는 이들이 부러웠다. 어린 나이의 내가 그 행복을 다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사실은 확신도 없었고, 어려웠다. 메밀차 이모도 진상손님을 만나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 행복한 게 맞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섬세하게 흘러가는 메밀차 이모의 시간을 보면서 나는 계속 고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