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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벽할머니 - 2

2부. 스치는 사람들

by 김현정

”어머니라고 불러도 돼요? “

”안돼. 내가 왜 네 엄마야. “

”계속 할머니? “

”그럼. 그래야지. “


마트의 직원들은 그런 할머니를 챙겨주고 싶었다. 가끔 시식하는 음식이나, 시음하는 음료를 잡숴보라 권하면 절대 먹지 않았다. 그저 물건만 들고 왔다 갔다했다. 그러다가 출구에서는 조용히 머물다가 돌아갔다. 다들 할머니의 방문을 기다렸다.


”이번 주 할머니 안 왔지? “

”그러네. “

”연락처 없어? “

”없지. 아들 번호만 남겼어. “


할머니가 마트에 온 지 딱 3년 되던 그해 겨울. 할머니는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얇은 외투를 입고 왔던 할머니. 할머니의 방문이 끊긴 그 해 겨울은 유독 길고 추웠다. 할머니의 소식은 봄이 되어서야 아들과 함께 볼 수 있었다.


”우리 엄마 돈 어딨어?! “

”누구신데 이러십니까. “

”010-0000-0000. 번호 기억하지?! “

”누구시냐고요. “

”너희가 매주 전화했잖아. 우리 엄마가 물건 훔쳤다면서. “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출입구에서부터 보안직원을 붙잡고 소리치는 할머니의 아들은 깡마른 몸에 작은 체구로 평소 햇빛에 많이 보는지 탄 피부를 하고 있었다. 마른 몸에 검은 피부가 유독 그를 단단하게 보이게 하기도 하였지만 힘든 세월도 함께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눈에 서린 분노는 직원에게 향하고 있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 아드님이신가 보네요. 그런데 돈이라니요? “

”이것 봐- 이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발뺌할 줄 알았어! 우리 할매가 너희한테 돈 준거 알고 왔다고!“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흔드는 아들은 말을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보안직원은 당황스러움도 컸지만 이 사람이 할머니의 아들이라는 것에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사람이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와 직원을 떼어놓기 위하여 애를 먹었다.


”너가 받은 거 아냐? 우리 엄마 돈 받은 새끼 어딨어?! “

”무슨 일이십니까. “

”너야? 우리 엄마 돈 받은 놈? “

”무슨 돈 말씀 하시는 건데요? “

”우리 엄마가 여기 마트에 매일매일 꼬박꼬박, 천 원씩 주었다며. “


할머니는 마트에서 시식도 시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매일 오셔서는 천 원을 보안과장에게 꼭 쥐어주고 갔었다. 매일 다른 직원들이 자신의 뒤를 조심히 동행하였고, 출구에서는 항상 보안직원이 카트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다시 가져다 놓는 사람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보며 고마워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 돈은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이거“

”이게 뭐예요? “

”고마워서. “

”뭐가요? “

”늙은이가 귀찮게 하는데, 다들 암말 안 하잖아. 얼마 안 되는데 받아. “

”아니에요. 받아서 무엇해요. “

”작은 돈이라고 무시해?! 그래도 돈은 돈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랑 맛난 거 사 먹어. “


보안과장에게 꼭 쥐어주는 돈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다들 그 모습을 봤다. 손에 쥐여주는 돈은 꼬깃꼬깃했다. 헐렁하고 펑덩한 바지의 낡은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할머니의 소중한 돈이었다. 그 돈을 건네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거절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거절도 해보았다. 거절을 하면 마트 입구에서 돈을 던지고 갈 때도 있었다. 다들 그 돈을 주워서 저금통에 모았다. 할머니의 저금통. 통장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할머니에게 전달할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을 우리는 모았다. 직원 탈의실 사이에 떡하니 있는 저금통에 손대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는 전달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저금통이 가득 차면 드리려고 했다. 그렇게 그 저금통 안에는 제법 큰돈이 모여있었다.


”여깄습니다. 할머니는 요즘 안 보이시던데. 어머님이랑 같이 오시지 그랬어요. “

”죽었어. “

”네? “

”할매가 여기 마트 유독 좋다고, 메모를 남겼더라고, 그러다가 할매 유품 정리하다가, 여기에 매일매일 돈 줬다고 써놨더라고. 보니까 못 준 날에는 돈 더 챙겨서 주었더니만. 아니, 여기 마트 아닌가? 은행도 아니고- 사람들이 늙은 할매 삥이나 뜯고 말이야. “

”할머니가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는 모았을 뿐입니다. “

”그나저나“


할머니의 아들은 커다란 저금통에 흔들어 보이며 무게를 가늠했다. 그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흥얼거리면서 우리에게 등을 보였다. 다들 저 돈을 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의 의미보다 할머니의 마음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로운 마음 달래시며, 아들에게 닿지 않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고 갔다 여겼던 그런 돈이었다.


”어머님이 직원들한테 고맙다고 주신 돈입니다.. “

”그래서? 어쩌라고. “

”많이 외로워 보이셨습니다. “

”그게 뭐? “

”아들을 그리워하셨어요. 그리고 연락되지 않는 아들 대신, 저희에게 친절하셨습니다. “

”어쩌라고! “


보안과장님은 안녕히 잘 가시라고 마트 출구를 안내했고, 그렇게 할머니 아들은 완전히 떠났다. 마트 직원들은 아들을 향해서 욕했다. 다들 화가 났다. 그리고 쓸쓸하게 갔을 할머니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다. 아들이 떠나고, 보안과장의 뒷모습을 보면서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순순하게 내어준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할머니의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채, 의미 없이 넘겨준 돈에 화가 났다.


”할머니가 못 전달한 거 그래도 전달했잖아 “

”뭘. “

”무엇이든, 할머니였던 거. 아들한테 갔잖아. “


직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마트에서의 절도는 단순한 절도가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인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에 대해서 단순하게 나누어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자신의 것을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했던 것은 다들 아는 것이었다.


”날도 추운데- 여기까지 와서 왜 이러고 있어. 번거롭잖아. “

”운동이지 뭐. “

”이게 무슨 운동이야. “

”따뜻하지, 물건도 많지, 구경하면서 사부작사부작 주워 담고. “

”그리고 계산도 안 하고 그냥 나가고? “

”그래서 너희가 잡잖아. “

”잡아달라며. “

”잡아야지, 그럼. 내가 매일매일 이렇게 물건 다 훔쳐가 버리면 망해. “

”그니까- 알면서 그려? “

”니들이 잘해줘서 그래. 마음도 몸도 운동돼. 여기는 “


할머니는 웃고 있었다. 물건을 훔쳐, 걸렸는데 웃고 있었다. 걸려서 행복해했다. 간혹 손님들이 할머니에게 물건 훔치시는 거냐고, 그러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모른척하면서 도망갔다. 가끔 그럴 때면 마트 내에서 절뚝절뚝 절면서 빠르게 도망갔다. 품 안에 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도망가는 곳에 올려두었다. 생뚱맞은 물건들은 그렇게 제자리에 가지 못하고 그렇게 덩그러니 있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습기도 하였다.


”들키지나 말던가. “

”들켰네. “

”품 안에 숨기고 가니까. 장 보던 손님들도 뭐라고 하지. “

”그런데 너희는 왜 말 안 해? 내가 불쌍해서? “

”다 두고 갈 거잖아요. “

”이렇게 내가 훔치는 거 보고, 진짜 도둑들이 다 들고 가버린다? “

”요즘에는 경보음 잘 울려 “

”고쳤어? “

”할머니덕에. “


매일매일 할머니를 보다 보니,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물건의 절도 미수건은 점점 늘어났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나 물건의 분실이 줄어든 만큼 매출이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놈 잡아야지. “

”할머니도 훔치더구먼! 할머니 훔치는 거 봤어! “


품 안에 소주를 훔치고 있던 한 사내를 가리키며 할머니는 자신을 뒤쫓던 직원에게 고자질했다. 그 모습에 직원은 당황하다가, 보안직원을 불러 각각 따로 데리고 나갔다. 소주를 훔치던 사내에게 경고를 하였고, 그는 다시는 마트에 오는 일이 없었다.

”할머니가 거기서 고자질하면 안 되지. “

”왜- 우리 마트 물건 훔쳐가는데, 잡아야지. “

”할머니는. “

”나는 아니고. “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웃던 할머니는 이제 없다. 매일 긴장하던 보안직원들은 할머니의 부재에 헛헛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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