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치는 사람.
"또또, 저 할매 왔다."
"내가 붙을게."
손을 절면서 마트 구석구석을 누비는, 허리 굽은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은빛과 백색, 그리고 검은 머리가 어수선하게 섞여 있었는데, 뜨개질 모자를 예쁘게 쓰고 있었다. 날씨와는 맞지 않은 얇고 긴 윗도리가 눈에 띄었다. 다들 그 외투의 쓰임새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거동이 힘들었지만, 주 1회는 꼭 마트에 들렀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채, 늘 품 안에 무언가를 담았다.
”어, 저거.. “
”됐다. 내가 보고 있다. 신경 쓰지 마라. “
건식이모는 할머니의 뒤를 몰래몰래 따라다녔다. 그 뒤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흡사 영화속에서 염탐하는 어설픈 탐정을 연기하듯 엉성했지만, 그 걸음은 장난끼가 잔뜩 묻어 경쾌하고 가벼웠다. 마트 입구에서의 보안팀은 느릿하고 허리굽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등을 돌려 무전을 하면서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하지만 경계태세라고 말하기에는 다소 엉성한 우리들이었다. 고작, '할머니 오셨다. 할머니 가실때까진 입구 비우지마.' 라는 단 두마디가 다였다. 할머니는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할머니는 편히 마트 구석구석을 돌다가, 비싸지 않은 물건, 자잘한 물건들은 품속에 넣었다. 건식이모님은 뒤만 쫓아다녔다. 보안팀은 나서지 않았다. 나가는 출구와 들어오는 입구만을 지켰다. 할머니는 그렇게 품 속의 물건이 가득 차서, 배까지 볼록해지자, 마트 출입구로 향한다.
”할매요. 물건은 두고 가야지. “
”봤나? “
”다 봤습니다. “
”그럼 내려놔야지. “
마트 입구. 출구 쪽에 있던 보안팀의 직원은 한 명에서 두 명이 된다. '이쪽에 할머니 오셨다' 라는 무전을 받은 보안팀의 한 직원은 아예 카트를 하나 끌고 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나갈 때쯤 맞춰서 품 안에 있던 물건들을 내려놓는 것을 돕는다. 건식이모님은 꺼내는 물건이 빠짐없는지, 뒤에서 보던 물건들이 다 있는지 확인한다.
”할매요. 뭐가 하나가 없는데. 캐러멜“
”그것도 봤나? “
”봤지. “
”소매에 숨겼다. “
아무렇지 않게 소매에서 꺼내는 딸기맛, 포도맛 캐러멜이 나온다. 꺼내는 표정이 천진난만할 뿐이다. 그렇게 쏟아지는 물건들을 카트에 담는다. 그러다가 건식이모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물건은 할머니가 스스로 꺼내보이면서, 이거를 챙긴 것은 못 봤냐며 자랑스럽게 꺼내보였다. 그렇게 자잘한 물건이 쌓이면, 빵이모가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씩 다시 돌려놓았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커다란 마트 안에서 돌고 돌면서 물건들을 다시 진열을 한다는 것은 꽤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 행동에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켜만 볼 뿐이었다.
”신고 안 해도 돼요? “
”저 양반 낙이다. “
할머니는 인근에서 사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말을 먼저 걸어주길 바라고, 관심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이 물건을 훔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물건 자체를 훔치는 게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그저 손을 절면서 허리굽은 할머니가 다른 사람과 말을 붙이기 위한 구실이라고 한다. 물건을 살 일이 있으면, 계산대로 가고, 말을 걸고 싶을 때는 한바퀴를 크게 돌아, 이것 저것 물건을 품안에 안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나요. 이거 물건 계산 안 했는데. 훔쳤는데. “
마트에 처음 왔던 할머니는. 품속에 있는 물건을 보이면서 보안팀 직원한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물건을 품 안에 품고, 밖으로 나갔는데 아무도 잡지 않았더란다. 몰랐던 거다. 할머니가 물건을 훔쳐서 달아날 것이라고.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경보음도 들리지 않았으니. 더욱더 몰랐던 거다.
"할머니! 물건 훔치시면 안돼요! 이게 다예요?!"
보안팀 직원은 할머니에게 소리를 쳤고, 물건을 뺏었다. 자수된 절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신입 보안 직원의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할머니도 꽤나 당황했다고 한다. 큰 목소리로 씩씩거리기는 하나, 자신에게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청년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내 보호자한테도 연락해서 물려달라고 해야지-'라면서 아들 전화번호를 넘겨주었다. 그 모습에 보안 직원은 자신의 상사를 불렀고, 절차대로 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할머니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와 함께 경찰을 불렀다. 소란스러워진 마트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할머니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들에게만 전화하면 되는데-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할머니의 바램대로 아들에게 전화하였다. 적어도 이 노모의 보호자가 아니던가. 전화받은 아들은 한숨을 쉬면서 짜증을 냈다. 훔친 물건의 가격이 얼마냐고. 고작 빵 한 봉지. 1000원도 안 하는 물건이었다.
”아들, 온대? 물려준다 하지? 내 아들 착하거든. “
”아니요. 미수로 끝난 거니까. 조심히 들어가세요. 먼저 말해주셨으니까 봐 드리는 거예요. “
그 뒤로도 할머니는 마트에 왔고, 훔친 물건을 자수했다. 그리고 계속 자신의 아들 번호를 건넸다. 지친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자신의 전화는 받지 않으니까. 다른 이의 번호로 전화받는 아들의 목소리를 전화기 너머에서나마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그리운 아들을 생각하면서 할머니는 이렇게 마트에 오고 있었다.
”할머니. 다른 마트 가셔도 소용없어요. “
”응? “
”할머니, 여기 근처에서 계속 이러셨다면서요. “
”응.. “
”아드님이 이제 모르는 전화 안 받는대요. “
”아는 전화번호는? “
”안 받으시겠대요. “
”그럼 나는 어떻게 해? “
”네? “
”아들 사는 집도 모르는데.. 전화번호만 아는데.. “
그 모습을 마트 직원들은 짠하게 봤다. 노모의 간절함이 쓰렸다. 보안과장은 할머니의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몇 번을 전화를 했다. 주제넘는 이야기임을 알지만, 도둑으로 몰리면서까지 아들에게 버림받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은 노모의 이야기를 했다. 물건을 훔치려다 미수로 끝난 이야기를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이러는 이유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어서 그렇다고 전달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아들은 지겨워했다. 듣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그런 그를 우리는 매정하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어떤 사연이기에 이렇게까지 매몰찬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럴만한 일이 있겠거니- 하기도 했다. 아들과 할머니의 사이에 대해 우리는 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전화라도 받아달라고 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사는 곳,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사는 곳. 결국 사람이 머물다 가는 곳이 아닌가. 단순하게 '절도'가 아닌 사람을 그리워 하는 할머니의 외롭고 기이한 행보에 함께 동참하기로 하였다. 아들에게는 더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할머니 왔어. “
”나 지금 쉬는 시간이니까, 내가 볼게. “
만두 이모님은 작은 파우치를 들고 쉬러 가던 길에, 마트 입구에 마주친 할머니를 보고, 보안팀직원에게 속삭였다. 다들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거나, 아는 척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할머니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훔치는 물건들은 과자, 사탕, 색연필 등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하지만 비싸지 않은 물품들이었다.
”나 이제 간다. “
”어디 그냥 가요. 내려놓고 가셔야지? “
”봤어? “
”처음부터 끝까지 다요. “
”그럼 내려놔야지. “
여김 없이 내려놓는 물건들은 자잘하게 많다. 물건을 내려놓을 때 개운한 표정으로 마치 모든 물건을 다 사놓고 뿌듯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렇게 형형색색의 자잘한 물건들은 카트 위로 쏟아졌다.
”근데, 어찌 다 이런 거만 담으셨대요? “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거. “
”아들? “
”응, 내가 젊을 때 돈이 없어서 못 사줬거든. 그래서 나 싫어하나 봐. “
”아들 다 커서 이제 이런 거 필요 없을 텐데. “
”그래도, 내가 필요해. 아들한테 못 해준 게 한이라. “
”그럼 물건을 사지. “
”뭣하러 사. 받을 놈이 어딨는지 모르는데,“
”그럼 왜 담았어? “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
이모들과 보안팀은 할머니에게 절대 인사를 하지 않았다. 다만 나갈 때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짤막한 이야기를 늘 해주곤 했다. 그렇게 마트 직원들과 할머니의 사이는 얇게 얇게 친해지고 있었다. 보안팀은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했다. 호통치지 말기. 조용히 기다려주기. 아는 척하지 말기. 그것이 할머니에 대한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