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치는 사람들
아영을 기다리고 있던 성근은 옷을 갈아입은 아영을 보고 더욱 활짝 웃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아영에게서의 낯선 모습을 벗어 버리자, 그가 알던 아영의 모습이 회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성근이 기억하고 있는 아영은 활발한 아이였다. 무슨 활동이든 늘 적극적으로 임했고, 힘이 넘치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아영은 어딘가 모르게 그 생기가 보이지 않았고, 차분한 그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가엽기까지 느껴졌다. 자유롭던 아이가 가만히 서서 일하는 모습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서 온 막연한 성숙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시들어버린 그녀의 표정이 낯설었었다. 하지만 사복을 입고 나온 아영의 모습은, 힘이 넘쳤고, 밝았다.
”끝! “
”수고했어. “
”반갑다! 이사 갔었나? 동네에서 한 번도 못 본 거 같아. “
”어, 이사 가서 못 봤을 거야. “
”그렇구나. “
”알바 힘들지 않아? “
”힘들지만 재밌어. “
”좀 놀랬어. “
”왜? “
”보통 알바, 카페나 영화관에서 들 많이 하잖아. 아니면 과외나. “
”그러니까, 나도 생각도 못했는데, 월급도 높고 좋아. “
”나는 못할 것 같아. “
”그래? 안 그래도 아까 보니까 그럴 것 같아, 사람들한테 말도 붙이고- 권하고 해야 하는데, 아니다! 너 나중에 선생님 할 거잖아! 잘해야지. 이런 거. “
”쑥스러워서, 못할 것 같아, 아이들 가르치는 거랑은 좀 다른 거 같은데. “
아영이 기억하는 성근은 말을 잘하는 아이였다. 위트가 넘쳤다. 개그 프로그램을 좋아했고, 거기에 성대모사를 줄곧 잘하던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서 불만족스럽지만, 외모가 다가 아니라며, 아이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놀던 아이였다. 하지만 예전 성근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눈의 시선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였고,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는 무기력해 보였다. 너무 어린 시절의 성근만을 기억하고 있던 아영은, 성근의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동창애들 보지 않아? “
”생각보다 못 봤어. 오히려 나 보러 찾아오는 친구가 아닌 이상. “
”그래? “
”어, 나 있을 때 사가면 내가 증정품 더 붙여줘서, 오히려 나 일하는 거 알고 오는 애들은 있거든. 그 외에는 없어. 너도 이제 나 여기서 일하는 거 알았으니까, 나 있을 때 와, 증정품 챙겨줄게. “
”그래도 돼? “
” 잘 팔아보라고, 나 쓰는 거고, 그만큼 증정품도 본사에서 넉넉히 내려와. 우리도 그 증정품 수 보고 적당하게 붙여 주지. “
”멋지다. 어른 같아. “
”어른이지. 이제. “
”근데, 너 알바 할 필요 없지 않아? 왜 해? “
”수능이 끝나면 의무교육이 끝난 자로,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래. 엄마가. “
”대단하신데? “
”너무 한 거지. 등록금에 생활비에, 기숙사비, 다 – 내가 부담하고 있어. 장학금 받으니 망정이지. “
”그걸 다 부담해? 대출 없이? “
”입학금은 학자금대출받았고.. 문과잖아. 문과는 등록금 그나마 저렴한 편? 다행히 장학금선정도 잘되는 편이고, 여기 일이 돈을 꽤 잘 주니까. 방학 동안 안 놀고 하면, 한 학기는 넉넉히 견뎌 “
”멋있네. 나는 다 부모님이 내어주셔서.. “
”아냐, 내가 보기엔 이런 경험은 미리 하는 것도 좋지만, 안 할 수 있으면 안 해도 좋을 것 같아. 굳이 이걸 사회생활이라고 겪어야 하나 싶어. “
”심해? “
”마트에서 일하는 어린아이를 누가 좋게 보겠어. 심한 말도 오가. “
성근과 아영은 근처 상가 쪽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밥집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 술집들의 불이 번쩍이고 있었다.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발을 돌리고 있었다. 성근과 아영은 밥과 함께 술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발을 향했다. 성근과 아영은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묘하게 어긋난 속도로 성근이 조금 더 앞으로, 아영은 점점 뒤로 쳐지면서, 아영은 성근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걷고 있었다. 함께 나란히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성근은 말수가 적어서, 아영은 성근의 발을 따라가기 위해서, 그렇게 말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도 일하는 너 즐거워 보였어. “
”그렇지. 즐거워. 그래도 내 돈 내가 벌어쓰니까 부모님한테도 당당하고, 학교 돌아가서 공부할 때도 동기부여가 되는 거 같아. “
”어떤 생각이 드는데? “
”질문이 이상한데.. 그냥-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있어. 그런데 매 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쳐내기만 바쁘긴 해. “
”그렇구나.. “
”도착! 여기서 전골에 소주 먹자. “
어느새인가 헐떡이던 아영은 순대전골집을 가리켰다. 멀지 않은 곳에 대학이 있어서, 근처에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이 많았다. 전골집 안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영은 능숙하게 시켰다. 성근은 그런 아영을 쳐다보기만 했다. 아영이 메뉴를 주문할 동안, 성근은 조용히 수저를 꺼내고, 물을 따랐다. 성근은 순대전골집이 처음이었다. 낯설었다. 부모님과 함께 먹을 법한 메뉴라고 생각했다. 매일 통학하면서 다니는 그는, 여전히 공부만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학교가 바뀌었을 뿐 그의 일과는 늘 같았다. 임용을 준비하면서, 그저 무엇을 해야 하지?라는 고민보다는 임용에 붙어야 하니까-가 다였다. 학부생활에서는 과제도 많았다. 공부만 잘하면 될 줄 알았던 대학교는 여러 가지 과제와 실습들이 있었다. 활기차고 활달한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항상 무기력했다. 이런 자신이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행위를 하면서,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의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너는 그럼 과외해? “
”아니. “
”알바는 전혀 안 하는 거야? “
”응. 그냥 공부만. “
”좋겠다. “
”응? “
아영은 성근이 부러웠다. 오로지 공부만 하면 된다. 다른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겠구나- 라면서 그를 진심으로 부러워하고 있었다. 부럽다는 것을 표현하자마자, 성근의 불편한 표정이 보였다. 그녀는 그 표정의 의미를 몰랐다.
”왜 그래? “
”아니. 나도 일하고 싶어서. “
”무슨 일? “
”아무거나. “
”하면 되잖아. “
”응? “
”하면 되지. 일. “
”부모님이 싫어하셔. “
”굳이 힘든 일 안 해도 된다- 하시는 거겠지. “
”맞아. 그런데 나는 일 하고 싶어. “
”그럼 해. 그건 네가 결정하는 거지. “
성근은 아영의 아무렇지 않은 말에 당황했다. 여전히 자신의 길에는 부모님이 동반해 있었고, 그 뜻은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나.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이었나.
”나는 있잖아. 엄마가 하라고 해서 했어. 그건 맞아. 부모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건 맞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는 학교 다니기도 힘드니까. 학교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고, 공부하고 싶은 곳이니까. 엄마가 하라고 해서 한 건 맞지만,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마침 돈도 잘 나오고, 어디 떼일 염려도 없으니까. “
아영은 성근의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성근과 함께 학교를 다녔던 아영은 성근의 부모님이 기억이 났다. 부모님 두 분 다 교사였다. 초등학교 선생님과 고등학교 선생님. 그래서 늘 성근의 곁에서 성심껏 부양하는 그들을 보았다. 성근의 부모님을 보면서 아영은 부러워했었다. 저렇게까지 아이를 애지중지하면서, 엄하게 가르치며, 예의범절은 물론이고, 공부와 숙제를 하나하나 챙겨 주었다. 성근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성근이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준비해 주던 부모님들이었다. 아영은 그런 성근이 부러웠다.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지금 아영의 앞에 있는 성근은 여전히 그런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성인이 된 지금. 생각이 많은 우리에게 부모님의 살뜰한 보살핌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자립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의 선택에 부모님은 지지해 주실 거야. 내가 기억하는 너 부모님이면 말이야. “
”내 선택에 지지는 해주시지. 본인과 의견이 다르면 어떻게든 설득하셔서, 결국 내가 그 뜻대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
”설득이잖아. 네가 설득된 거고. 설득된 거도 너의 선택이고, 너의 의지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
”그런가. “
”무슨 일을 하고 싶은데? “
”그냥, 일해서, 돈 받고, 그 돈으로 하고 싶은 거 하고. “
”... 하고 싶은 걸 정하고, 필요한 돈을 정하고, 무슨 일을 할지 생각부터 해야겠다. “
아영은 성근의 말이 참 쉽다고 생각했다. 여유로운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자신은 추상적인 말보다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자신에 대해 속상해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공부는 꿈으로 묻어두고, 한 학기에 필요한 돈을 셈하고, 방학 동안에 며칠을 더 일해야 하는지 일수를 정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해볼까 싶었지만, 이보다 마땅한 일은 없었다. 그런 그녀 앞에서 사정을 모르는 성근은 그저 마냥- 추상적인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성근은 아영의 얼굴을 보았다. 자신의 대답에 잠깐 머뭇거린 아영의 입을 보았다. 일을 마치고 온 아영에게 너무나도 철없는 이야기를 했던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성근은 자신도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다. 생각 없이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루하루가 무기력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괴로운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영의 말대로 막연하게 추상적인 자신의 대답이 자신을 얼마나 더 한심하게 만들었을지 짐작하고 있었다. 아영도, 성근을 한심스럽게 보고 있을 것이다.
”한심하지? “
”아냐. 부러워. “
”한 심한 게? “
”그것도 능력이야. 그만큼 환경이 갖춰져 있다는 거니까. 그건 니 복이지. “
”한심하다는 거네? “
”취했네. 취했어. 아냐. 진짜로. 부러워. 한심하지 않아. 지금 가는 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있다는 거. 이 길이 내 길이 맞나- 하고 한 번 더 고민할 수 있는 거. 나한테는 없는 거. “
”내 주변에는 배부른 놈이라고, 한심하다고 말하던데,“
”그거 부러워서 그래. 그냥 질투야. 즐겨. “
”뭘 즐겨. 한심하다듯이 쏘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
”부끄러? “
”응. 너무 부모님 말대로 사는 거 같아서. “
”착실한 거야. 착한 거고. 그리고 현명한 거야. “
”어디가? “
”부모님은 너의 길을 닦아줘. 너는 그 길에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가잖아. 성인이 되어서도. 너도 아는 거야. 부모님이 닦아준 길이 옳은 길이라는 거. 사람들 눈치가 보이고, 스스로가 한심하다 느껴져도, 현명하게 그 길 가는 거잖아. 그 길 평생 있을 것도 아닌데 뭐. 좀 더 편하게 가라고,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으면 가는 거지. “
”재수 없지? “
”응. 재수 없어. 그래서 부러워. “
”사람들이 날 별로 안 좋아해. 효자라면서. “
”그 시선이 신경 쓰여? “
”응. “
”그럼, 부모님 뜻 거스르고 행동해 보던가. 단, 무모하지 않은 선에서. 그런데- 너도 알잖아. 그럴 필요 없고, 그래선 의미 없다는 거. “
”알지. “
”즐겨. 너 사랑해 주는 부모님에, 모자라지 않은 집안 형편에, 무탈한 인생을 즐겨. “
”... “
”너무 꼰대 같나? 어쩜 좋으니. 나는 벌써 이걸 깨달았다. “
아영은 성근이 한심하다는 생각보다 부러웠다. 정말 부러웠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성근은 순수했다. 티 없이 맑은 그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부러웠다. 누군가에게는 한심스러운 고민을 정성스럽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여유가 부러웠다.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철들었다는 이야기가,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는 이야기가 칭찬인 줄 알았지만, 아영은 그게 얼마나 가엽고 안쓰러운지 알았다. 스스로를 많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최대한 해맑고 싶고, 최대한 철이 없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영은 너무 늙어버린 것 같아서 자신이 싫었다. 성근은 이런 아영을 알 턱이 없었다. 성근은 그저 아영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저렇게 하고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을 한심스럽게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아영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아영은 자신의 소주잔에 소주를 부으면서 성근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저 아련하게, 줄어만가는 육수를 보고 있었다. 주변 자리는 시끌했다. 하지만 아영과 성근의 자리는 조용했다. 조용하게 오가는 말속에서 서로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듣지 못하고 있었다.
성근은 아영을 대단하다 생각했다. 주체적인 삶,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정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환경의 차이가 아닌 개인의 역량이라고 생각했다. 일할 때의 모습은 다시 회상하기로 했다. 힘이 없어 보이고, 생기가 없는 것은 그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반짝이며 하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일하는 아영은 등록금을 내고, 한 학기의 생활비로 쓰면서 공부를 한다. 그 하루하루가 반짝일 것이다. 소중할 것이다. 성근은 그런 일상을 지내고 있을 아영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