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치는 사람들
김씨는 마트의 불이 꺼지는 것이 싫었다. 마트에서 서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들에게서의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삶에서도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쉼 없이 말을 걸고, 그 자리에 서있다. 행사가 있는 날에는 낯선 사람들이 왔다가 행사가 끝이 나면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도발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모습에서 굳은 의지를 찾기도 했다. 김씨는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련이 가득한 공부를 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청춘을 함께하였던 낡은 책과 빼곡하게 적힌 공책만이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노력하면 다 이루었다. 운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그였다. 하지만 자신의 수험생활은 ‘운’에서 늘 좌절되었다. 자신이 노력하여도 가질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하여, 그는 굴복했다. 삶에서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매달릴수록 그의 노력의 끝은 어디까지이던가. 그의 노력은 그의 한계에 부딪혔다. 늦깎이로 수험을 접고 나니, 취업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이웃에게 친척에게 굽혀 굽혀 들어간 자리는 그에게 맞지 않았다. 불편했다. 불편하고 불편하여 그만두기 일 수였다. 영특하다며 칭찬해 주던 이들은 다들 떠나가고, 오랜 책만큼이나 짐덩어리가 된 자신은 그렇게 하루하루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자신을 탓했다. 못나서 그렇다.라고- 그러다가 운명에도 욕을 했다. 자신의 운이 지지리도 없음에. 그러다가- 그는 포기를 했다. 이 분노를 어디에 풀 방법도 없었다. 그저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겠노라 하였지만, 공부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을 만큼, 삶에 대한 집념을 내려놓기에는 아쉬움도 많고 화도 많았다. 김씨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것은, 세상이요. 이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싫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 무언가 이루어 살 것 같은 사람들. 하지만 타협하고 사는 듯한 그들. 그들에게 따끔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투쟁해라. 투쟁하자. 세상의 부조리를 알리고, 더 나은 삶을 살자. 외치며 다녔다. 지하철을 가고, 거리를 나섰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그 열변에 대한 대가는, 늘 경찰서였다. 이상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했고, 그의 입을 막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이었나. 마트에서 라면 한 묶음 사서 가려했다. 앞에서 라면 한입 시식하고 가라 했다. 먹었다. 맛은 괜찮았다. 그리고 물건을 하나 집었는데, 하필이면 유통기간이 지났더랬다. 라면이 유통기간이 지나기가 쉽지가 않은데.라고 생각하며 행사직원에서 물었고, 그 직원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소비기한일 뿐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는 화가 났다.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가, 화가 났다. 언성이 높아지자, 다른 라면봉지를 건네는 직원의 행동이 얼마나 무례했는지, 열변을 토했다.
‘너도 나를 무시하는구나. 고작 마트에서 라면이나 끓이는 니가.’
김씨의 마트 방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 명 한 명을 잡아다가 욕을 했다. 처음에는 상품에 대해서 꼬집고, 가격에 대해 꼬집다가, 그냥 직원들을 꼬집고 다녔다. 꼬집고 다닐 때마다 그들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우월감이 좋았다. 자신이 옳은 말을 하니, 다른 이들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넉살 좋은 중년의 여성부터, 까칠하고 어린 대학생들까지, 그들을 철저하게 괴롭혔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일방적 괴롭힘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괴롭힘으로 깨닫고, 이들을 해방시켜 주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는 그들을 격려하고,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너 공부나 해! 이딴 곳에서 뭐 하는 거야! “
”... “
아영의 퇴근길이었다. 근무시간이 끝났지만, 김씨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영은 왜 이런 이야기를 낯선 이에게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행사 마지막날이었고, 그 행사도 끝이 났다. 영업시간이 끝나면서, 아영의 일은 끝이 났다.
”뭐하시는 거예요? “
김씨를 쏘아보았다. 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법전을 옆구리에 끼고 땀을 흘리고 있었다. 더운 열대야 속에서 밤은 여전히 숨 막힐 듯 뜨거웠다.
”기다렸다. 니 시간이 아깝고, 청춘이 아까워서. “
”제가 알아서 할게요. “
”말대꾸도 하네?! “
”오늘부로 행사 끝났고요. 저 여기 마트 행사 안 들어올 거예요. “
”일 그만둘 거야? “
”아뇨. 방학 때마다 해야 해요. 그러니까 제발 좀 그만 괴롭히세요. “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
”공부해요. 하는데 학비가 필요해요. 학기 동안 공부할 생활비도 필요해요. 제발 좀 그만요. “
아영은 말을 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2주였다. 2주간 그의 괴롭힘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하고, 학원을 다녔다. 회독 횟수가 올라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영은 초조함도 느꼈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이 중요해?! 공부가 중요하지! “
”아저씨, 제발요. 돈이 없으면 공부 못해요. 공부 잘한다고 돈이 생기진 않아요. “
”빚을 내서라도 해야지! 울긴 왜 울어! 이거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야! “
”그 빚도 뭐가 있어야 내죠.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
퇴근길의 마트 뒷문은 어두웠다. 동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나가고 있었다. 그에 붙잡혀 있는 아영의 모습을 모두가 보았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일을 하는 사람들. 아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기에, 아는 체하기 싫었다. 아영의 편을 들어주면, 자신의 인생에서 돈이 절박하여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괜히 엉켜 김씨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두려웠다. 퇴근하던 인사과장은 김씨를 보았다. 울면서 소리 지르는 아영도 보았다. 내일부터 안 나올 사람인데,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했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냥 가세요. “
울부짖는 소리 속에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과장이었다.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쓰이는 게 당연하다. 마트에서 일한다고 하여, 이들이 이렇게 인생에 참견을 당하고, 훈수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 뿐이다. 정당하게 벌어서, 자신의 삶을 충족시키고, 꿈을 꾸는 곳이다. 하루가 더 나은 삶을 위해,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하루를 보내는, 좋은 일터라고 생각했다. 울고 있던 아영은 과장을 보면서 진정했다. 그래도, 아영을 지나칠 수도 있었던 과장의 안정적이고 듬직한 목소리에 안심했다. 과장의 눈빛은 단호했고, 이미 휴대폰에는 112가 찍혀있었다. 김씨는 그런 아영과 과장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뭉그적 거리면서 돌아갔다.
”괜찮아요? “
”감사합니다. “
”미안해요. “
”네? “
”아니. 좀 더 빨리 나설걸. “
”괜찮아요. 이제 내일부터 안 나오니까. “
아영은 가벼운 목례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과장은 아영의 뒷모습을 보면서 김씨가 간 반댓길로 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가지는 않았다. 내일부터 안 나온다는 아영의 말이, 과장에게는 깊게 자리 잡았다. 내일부터 안 나오니까, 괜찮다는 말은. 괜찮지 않다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퇴근하는 그 작고 어두운 철문 앞에서 흩어지는 사람들은 어린 학생이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린 학생이라 하기엔 성인이고, 성인이라 하기엔 아직 배울 것도 많고, 갈길도 먼 아영을 보면서 저 상처가 깊게 자리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요즘 왜 그래? “
”뭐가? “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아르바이트하는 기간 동안 이것저것 재밌는 이야기 하고 했잖아. “
”아, 내가 말 안 했나? 이번 알바기간 동안에는 진상손님한테 매일같이 욕 들었어. “
”뭐라고? “
”몰라- 공부하라고. “
”맞는 말이네. “
”공부도 돈이 있어야 하지! 진짜, 엄마가 좀 도와주면 안 돼? “
”안돼. 내 코가 석자고, 대학 들어간 딸을 내가 왜 책임지니. “
”아니, 너무하잖아. 학원가겠대? 그냥 독서실 잡고 공부라도 하겠다고. 휴학하고-“
”누가 법대 들어가래? 그리고, 이도저도 아니게 할거- 시작하지도 마. 휴학은 무슨, 그거 다 돈 있는 애들이 하는 거 아니야?! “
”진심이라고! “
아영은 울면서 방에 들어갔다. 엄마의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못하지 않는다. 잘한다고 들었다. 주변에서는 믿음을 주는데, 엄마는 일말의 믿음도 없어 보였다. 학교동기나 선배들을 보면 다들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부자라서기보다, 책장 넘기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라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 날을 기다리며 기다리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영은 꿈이 없었다. 꿀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영을 믿지 않았다.
울고 있는 아영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무시당하는 일이 적지 않지만, 대놓고 욕을 하는 이가 있었다는 말에 치가 떨렸다. 그래도 엄마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아무도 안 도와줬어?! “
”도와줬어. “
”그 욕을 며칠씩이나 들었다며! “
”응 “
”네가 왜! 뭐가 부족해서! “
”응, 부족한 거 없고, 그냥 그 사람이 부족해서지. 그런데, 나도 같이 그 부족한 사람이랑 싸웠어. 역시,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게 맞더라고. “
”일 그만해. “
”공부만 해도 돼? “
”다른 일 해. “
”아냐, 여기 방학 동안만 일하면 내 학기 내내 편하단 말이야. “
”하지 마! “
”조만간 방학 때도 공부할 거야. “
”열심히 일해라, 엄마는 돈 없다. 못 줘. 니 그 비싼 꿈. 허락해 줄 수 없어 “
”뭐가 비싸!"
“네가 먹고, 자고, 하는 거에, 니 그 귀한 시간이 비싸! 너무 비싸! 학기 다 마치고, 졸업이나 해서 돈 벌어. 나중에 시험 안되고 취업할 때, 공부하느라 늦었습니다!라고 할 거니?! 나는 그꼴 못 봐.”
그렇게 아영과 엄마의 대화는 끝이 났다. 웃겼지만 웃기지 않았다. 무언가 꿈을 꾸기에는 돈이 필요했다. 알바를 하면서 사회를 배웠다. 사회는 하는 일에 사람의 귀함을 부여했고, 귀함으로 여겨지려 공부를 하려고 돈을 버는 일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결국 귀함보다는 하찮음으로 스스로의 위치를 정했다. 아영의 위치는 아영이 택할 수 있는 것은 맞을까, 문득 졸업을 하고 시험도 응시 못한 채, 그런저런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이 일이 나의 업이 되면, 나는 하찮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사회적 위치라고 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런 사람. 김씨였다는 것을 이야기로 듣지 않아도, 보았다. 그 삶이 두려웠다. 꿈을 향해가느냐, 현실에 타협해서 평범한 사람으로 사느냐. 그러다가도 함께 주변에 일하는 여러 이모님과 언니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아영은 스스로의 위치를 정한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