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치는 사람들
”동글아, 쟤 너 계속 쳐다봐. “
”네? “
커피언니는 가까운 구석에서 카트하나 없이, 2,3 봉지를 들고 있는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남자라고 하기엔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었다. 아영과 또래로 보였던 그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피부는 어두운 편으로, 말을 붙일 듯 말 듯, 옴짝거리며 움직이는 입술 사이에는 교정기가 보였다. 그는 어색한 눈빛으로 계속 아영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영이 자신을 발견하길 바라는 듯, 말을 걸어주길 바라는 듯, 그는 멀지 않은 구석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아는 애야? “
”아니요. “
시선을 피하지 않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아영은 그를 알지 못했다. 아영은 확신했다. 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향해서 말을 걸어올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영은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건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뜨거운 호빵을 친절히 꺼내어 들고, 시식하라고 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평일 오전이라 마트에 사람들이 잘 없었다. 한가한 편이었기에, 이렇게 서성이는 사람은 아영의 시야에 훤히 뚫려있었다. 사각지대는 없다. 그러니까 안전하다. 커피언니와 다른 행사를 위해 코너마다 서있는 언니들도 그 남자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영은 긴장되었지만,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런 놈들, 내가 알아. 숫기 없어 보여도, 나중에 한마디 걸어주는 순간 들러붙어 “
”설 마요. “
”내가 산 증인이야. “
”아직 말 안 걸었잖아요. “
”조만간이야. 어제도 쟤봤어. 나. “
아영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긴장되었다. 예쁜 언니들에게서나 들었던 이야기가 평범하게 짝이 없는, 갓 수능을 친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은 아영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아영에게 시선이 꽂혀있었고, 서서히 간격을 좁혀왔다. 그의 눈빛에는 반가움과 애정이 묻어있었음은 사실이었다. 아영은 반가운 눈빛이라는 것에 조금 흔들렸다. 반가움이라. 낯선 남자에게서 느낄 수 있는 눈빛이 맞던가.
”동글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소리쳐! 내가 바로 보안 불러올게. “
”언니, 별일 없을 거예요. 저 사람 뭔가 저를 보면서 반가워하는 느낌인데요? “
황급히 멀어지던 와인시음을 담당하던 언니는 아영의 말에 잠시 남자의 눈빛을 찬찬히 읽어보려 했다. 확실히 아영을 바라보며 반가움과 그리움이 서린 눈빛이었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그의 행동에서 추가된 눈빛은 낯선 이로 인식하는 우리들에게는 이상하게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오고 있었다. 서서히 조심스럽게 발을 떼던 남자는 시식용으로 잘라놓은 빵이 아닌 아영에게 관심을 두고 있음이었다. 아영 앞에 선 남자는 말을 걸어왔다.
”저, 저 모르시겠어요? “
”네? “
”저, 친구였는데.. “
”모르겠는데요. “
”대차초등학교.. “
”어? 네, 저 거기 나왔는데.. “
”이아영 씨 맞... 죠? “
”네.. 어.. “
”나야! 6학년 4반. 신성근! “
”어?! 야! 너라고? “
”많이 변했지? “
”놀랬잖아! 자꾸 이상하게 힐끔거리고 쳐다보는데-“
”미안. “
”그냥 친구면, 반갑다! 나야! 하면 되지! “
그는 동창이었다. 초등학교 동창. 아영의 머릿속의 성근은 또래에 비해 덩치도 컸다. 통통보다는 조금 더 살집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더 크게 느껴졌었고, 또래 남자아이와는 다른 조심스럽고 신중한 행동 덕에 성숙하다고 생각했던 착한 친구였다. 공부 잘하고 성실한 동창.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었다. 아영과 성근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오고, 그 뒤에는 보지 못했던 희미한 기억 속 한편에 겨우 남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달라진 외모는 알아보기 힘들었던 것이었다.
”너 근데 왜 그렇게 물어봐. 놀랬잖아. “
”동글아! 아는 사람이야? “
”네! 동창이요! 초등학교 동창! “
”아.. 미안- 이상한 애인줄.. “
말을 걸어온 남자에게 놀랬고, 사이에 누구인지 몰라 얼굴을 찌푸린 아영의 모습을 보고 언니들은 헐레벌떡 아영에게 달려왔었다.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가는 언니들을 보고 성근이는 웃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걱정 많이 했나 보다. 내가 너무 힐끔 봤지. 오해했을 거야. “
”그러게, 왜 그렇게 봤어. 어제도 왔다며, 그냥 인사하지. “
”아니, 며칠 전에 엄마랑 장 보러 왔다가, 네가 보이길래, 닮은 사람인 건가, 하고는 다른 친구한테도 말했거든, 그런데 네가 마트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 몇 번 인사하려고 왔는데, 못했어. “
”왜? “
”그냥, 너 바쁠 것 같아서. “
”평일엔 안 바빠. 너도 봤잖아. “
”아, 응. 알.. 바? “
”어, 알바. “
”그렇구나! 대학은? “
”그냥, 지방에 있는 법대. “
”다행이다. “
”뭐가? “
”아냐,“
”너는? “
”나는 교대. 서울에 “
”역시! 공부 잘하는 애는 다르네! 전에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지? 그래! 기억나! 이뤘구나! “
”임용부터 붙어야지. 이제 시작. “
성근은 아영이 하는 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적어도 아영은 그렇게 느꼈다. 고등학생의 신분을 벗고, 다들 대학을 가던 때이기는 했지만, 혹여나 대학이 아닌 이곳을 일자리로 정착한 건 아닐까, 어떤 사연이 있던 건 아닐까? 하면서 조심스러워하던 차였다. 며칠을 고민 끝에 반가운 동창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편협한 오해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대학을 갔어도, 대학을 가지 않았어도- 그에게는 반가운 동창이건만. 어느 이야기이던 인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던 그였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인사한 그녀의 소식은 그가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별거 아닌 이야기였다. 성근은 안도하였다. 하지만 스스로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크게 안도했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영은 성근이 자신이 대학을 갔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조심스러워하다가 경계가 풀어짐을 느꼈다. 그녀는 한편으로 기분이 나빴다가도,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어깨가 펴짐을 느꼈다. 오랜 동창의 만남이 마냥 반가워지던 찰나였다.
”언제 끝나? “
”한 2시간 뒤쯤? “
”같이 밥 먹을래? “
”좋아 “
2시간. 성근은 마트 구석구석을 돌고, 구경을 했다. 어머니와 왔던 마트에서는 필요한 물건, 할인하여서 사는 물건들. 물건만 보았던 공간이었다. 마트 내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그저- 행사를 하네, 시식을 하네, 하면서 물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물건을 사러 온 것이 아닌, 마트에서 일을 하는 친구를 만나러 온 방문객으로 오고 나니, 마트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의 사람들은 다양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에 성근은 감탄했다.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오는 주말은 항상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 사이에 일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었다. 물건을 찾을 때, 도움이 필요해서 직원을 찾을 때면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여기 마트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안 보인다며 불평불만을 했건만.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빠진 물건을 채워 넣는 사람, 항상 깨끗한 바닥을 유지하느라 청소하는 사람,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무전을 치며, 메모를 하고, 사진도 찍고 지시하는 사람도 보였다. 시식을 권하면서 서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몇몇 분들은 허공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만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바쁜 마트 속에서 고요하고 차분한 마트를 항상 거닐고 있었다는 사실에 성근은 새삼 놀라고 있었다.
상품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마트 내에 있는 카페로 향하였다. 성근은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도 마트에서 일하다가 쉬는 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들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휴대폰의 시계,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보면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이제야 보게 된 성근은 마트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