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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회원제 마트 -1

2부. 스치는 사람들

by 김현정 Mar 24. 2025

 ”이번에는 회원제 마트래! “

 ”그런 곳이 있어? “

 ”외국계 기업인데, 회원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라 손님들이 되게 점잖대! “

 "회원제가 뭐야?"

 "연회비 내고 마트 다니는 곳 이래."

 "마트 그냥 가면 되지. 무슨 유난스럽게 돈 내고 다닌데. 부자들만 다니는 곳이야?"


 아영이 있는 곳에 새로운 마트가 문을 열었다. 외국계 기업의 마트로, 이미 서울에는 자리를 잡아, 지방에도 생긴 회원제 마트였다. 수입물품이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수시로 드나들던 일반 마트와는 달리, 회원들만 입장이 가능하고, 회원들만 결제할 수 있는 마트였다. 아영의 여름방학에 맞춰 수입맥주 행사를 맡게 되었다. 일주일. 짧지만 넉넉한 기간이었다.

 

 ”좋냐? “

 ”응!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근무 환경이 무척이나 좋아! 다들 회원제라 그냥 큰 컵에 주면서 시음량 조절하지 않아도 된대. 술시음행 사는 늘 그걸로 손님들하고 신경전이라, 힘들었는데, 엄청 좋은 거야! 거기다가 별도로 멘트 안쳐도 필요한 사람은 알아서 들고 간다고, 편하게 하라 했어. “

 ”그런 거 그냥 금액 할인만 하지, 굳이 알바생 쓰는 거야? 돈도 많다. “

 

 아영은 조금 들떠 있었다. 방학이 되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보다도 회원제 마트라서, 회원이 아닌 곳을 들어가 보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근무조건에서 분위기가 유연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설레었던 것이다. 다만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장을 보곤 했었는데, 회원이 아닌 단기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는 아영은 물건을 살 수가 없어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더운 여름이었다. 집에서 꽤나 거리가 되는 곳이었다. 버스를 두 번을 갈아탔다. 늘 집과 학교, 일하러 가는 마트 외에는 크게 사는 곳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아영이었다. 지금까지 일해본 마트들 중에서도 제일 먼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일을 하러 먼 곳으로 간다는 것이 또 하나의 설렘이었고,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가는 버스는 한적했다. 마트가 시작되는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다. 처음 행사로 사무실에 들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 “

 ”무슨 일이세요? “

 ”오늘 수입맥주 행사하러 왔습니다. “

 

 사무실에 들어서자 넓고 쾌적한 공간이 나왔다. 벽지가 따로 발려져있지는 않은 노출형 콘크리트 벽이었지만 책상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쾌적하다 못해 휑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 ㅇㅇ맥주죠? 성함이- 이아영 씨. “

 ”네! “

 ”여기 명찰이요. 이걸로 출입하시면 되고요. 옷은.. “

 

 사무실 직원은 아영의 위아래를 보았다. 간편하게 검은 바지와 흰 반팔 셔츠를 입고 있었던 아영의 모습에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행사하시는 동안 그렇게 입고 오시면 될 것 같아요. 별도 탈의실이 있기는 하는데, 여기는 다른 마트들 비해서 복장이 엄한 편은 아니어서, 그냥 그렇게 입고 출근하시고 퇴근하시는 게 더 편할 거예요. 시음행사하시는 거니까 머리만 단정하게 묶으시고. 작은 사물함하나 드릴게요. 여기에 가방만 넣으면 되는데... 솔직히 다른 여사님들도 그냥 손님 사물함 쓰긴 하는데-“

 

 직원은 아영의 가방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오고 가는 길이 꽤 있는 편이라, 간단하게 읽을 책과 지갑, 화장을 고칠 파우치 정도가 들어있는 백팩이었다. 손가방이 아닌 아영의 어깨는 살짝 무겁게 느껴졌다.

 

 ”저도 손님 사물함 쓰겠습니다. “

 ”그래요- 입구 앞에 있어서 쓰기 더 편하실 거예요. 시간 끝나면 명찰만 떼고, 출입구 통해서 바로 가면 되거든요. “

 

 사물함 열쇠를 쥐고 있던 사무실 직원의 손은 세게 다물고 있었다. 그 손은 영영 풀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아영에게는 하얀 명찰만 남아있었다. 아영은 그곳의 명찰이 마음에 들었다. 플라스틱로 프린트된 명찰이었다. 마트의 로고가 박혀있는 깔끔한 명찰. 명찰만 봤을 때는 아영이 임시인지 아닌지 구분이 힘들었다. 이곳 직원들과 같은 명찰이었다.

 

 ”저,,“

 ”이제 가보셔도 돼요. “

 

 아영에게 명찰을 준 직원은 다시 자기의 컴퓨터를 보면서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여유롭게 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멋있어 보였다. 다만 아영을 귀찮게만 대하는 그녀가 살짝은 얄미워 보였다. 

 

 ”저.. 시음대는.. “ 

 ”여기 마트 처음이세요? “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아영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비품의 위치를 안내받은 적이 없었다. 대게는 첫 출근 때 위치를 안내받았던 터라, 그냥 가보라고 하는 사무실 직원에게 당황하고 있었다. 시음대를 묻는 아영을 바라보며 사무실로 들어오는 네이비색 피케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허리춤에는 무전기가 달려있었다. 무전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면 직원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직원 명찰은 바지 허리춤 근처, 셔츠 하단에 간신히 달려있었고, 가만히 보고 있자니, 명찰을 떼었다가 붙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네, 처음인데요. “

 ”그.. 업체에서 별말 못 들었어요? “

 ”네? “

 ”우리 항상 지도도 첨부해서 보내드리는데, 보통은 알아서 준비하시거든요. 여기 보시면 이쪽이 주류 자리고, 저기 팔레트 움직이는 쪽에 시음대도 있고 하니까, 알아서 하시고, 쉬는 거는- 들었죠? “

 

 아영을 바라보던 네이비색 피케셔츠의 직원은 귀찮다듯 아영을 대하고 있었다. 마트의 내부 지도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물건의 위치의 표시를 알파벳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피케셔츠직원은 H열의 전면부를 가리켰고, 시음대가 있는 곳은 그 근처 네모박스로 표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알려주였다. 피케셔츠 직원은 ’이 정도로 알려줬으면 알아들었지?‘라는 뉘앙스로 말하고 있었다. 아영은 점점 얼굴이 붉어졌다. ’네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영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마치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예습을 해오지 않은 무책임한 학생이라고 핀잔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업 전에 예습을 해오는 게 당연했던가. 당연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던가. 새로운 마트에 온다는 것에 설레어만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만 아영이었다. 아영의 그런 모습에 명찰을 건네던 사무실 여직원은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모니터에서 떼지 않았다. 손은 여전히 빠르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뭐야? “

 ”일주일 행사. “

 ”근데? “

 ”여기 마트 처음이래. “

 ”아,“

 ”왜? “

 ”담타.“

 ”위치 알았죠? 가자. “

 

 네이비색 피케 셔츠 입은 직원 옆으로 검은색 피케 셔츠를 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그도 아영을 훑어보았다. 친절한 눈빛도, 호기심에 찬 눈빛도 아니었다. 그저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명찰을 차고 있는 직원들은 행사직원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이곳에서 일하는 정직원들이었고, 잠시 스쳐갈 단기 아르바이트생들을 있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설레었던 마트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마트의 천고는 높았고, 빛도 환하지 않았다. 높은 천고에 달린 투박한 흰 빛 아래, 수많은 물건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물건이 사람을 압도했다. 잘 정돈된 창고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영은 몇몇 없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주눅 들고 있었다.

 아영은 본인이 행사할 맥주의 위치는 네이비색 피케셔츠의 직원이 알려준 대로 가자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팔레트 채로 맥주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아영의 키보다도 높았다. 물건은 많았다. 아영은 물건의 수에 압도당했다. 자유롭게 있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이 물건들에 대한 압박감도 있었다. 맥주의 높이에 또 한 번 넋을 놓고 있다가, 아영은 자신의 시음대를 부리나케 가지고 나왔다. 시음을 준비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생들도 여유로웠다. 조급함은 없었다. 이전 마트에서는 다들 시간을 보면서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마트의 영업이 시작되었다. 분위기는 말대로 자유로웠다. 손님들도 별다른 말 없이 행사가격을 보고 담아갔다. 시음도 적당하게 했다. 아영이 지나가는 손님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시음을 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담아갔다. 마트의 사람들은 북적였다. 하지만 조용했다. 물건을 사가라고 하지 않아도, 손님들은 필요한 물건들을 보고 담아갔다. 그래도 아영은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말을 붙였다. 8시간 동안 서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서있는 마네킹은 되기 싫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영의 물건은 빠르게 소진되었다. 높게만 있던 맥주물량은 팔레트의 바닥을 보였다. 그럴 때면 피케셔츠를 입은 다른 직원들이 계속 가져다주었다.

 

 ”여기 또 다 빠졌다. “

 ”벌써? “

 

 피케셔츠를 입고, 명함을 뗀 채 돌아다는 던 두 사람이었다. 무전기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직원임을 알아챘다. 그들은 아영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물량 빨리 빠지네. “

 ”천천히 해요. “

 

 그들의 눈빛은 귀찮음에서 신기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응대하고 있는 아영이 이해되지 않았고, 재미있다는 눈빛이었다. 

 물건이 가득한 곳에 사람도 가득했다. 하지만 사람의 수보다도 물건의 수가 많았다. 지나다니는 카트에도 물건이 가득이었다.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허전해 보였다. 공허해 보였다. 마트의 높디높은 천장에 차가운 조명이 그들을 차갑게 하는 거일까. 여유롭게 보였던 그들의 모습은 여유롭지 않았고, 의욕이 없을 뿐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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