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스치는 사람들
”마트도 어디에 있는지, 어떤 물건이 있는지에 따라 분위기도 다르고 상황도 달라. “
”정말요? “
”회원제 마트는 처음이지? “
”네. “
”거기 연회비가 싼 편이 아니야. 일반 마트는 회원제 안 해도 구매 가능한데, 굳이 연회비 내가면서 마트에 가는 거잖아. “
”그렇죠. 이해가 안돼요. “
”가보면 알 거야. 매장도 크고, 수입품들도 많고, 연회비 내고 들어가는 만큼, 시중가에 비해 가격들이 저렴해. “
”아.. 그리고 또요? “
”거기 손님들은 착해. 깔끔해. “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
”다들 연회비 내고 들어오니까, 시음이나 시식 나가는 거 다른 마트 비해서 물량체크 안 해도 되고, 그냥 막 줘도 돼. 그리고 행사 중인 건 옆에서 크게 말 안 해도 사갈 사람은 사가. “
”그런데 행사 들어가요? 굳이? “
”그래도 사람이 앞에 서서, 시식하고 시음하는 거, 그 행사 커. 특히 식품 같은 경우에는 먹어보고 사는 게 더 많으니까, 그렇게 맛 한번 알면, 다음에 가격행사만 해도 사가니까. “
”아.. “
”그러니까, 그냥 거기서 편하게, 시음행사하고 와. 부담 없이. 저번 마트 힘들었잖아. “
”감사해요. “
커피 언니는 아영에게 가볍게 다녀오라고 했다. 마트에도 특성이 있고, 분위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아영이 가보지도 겪어보지 못한 마트의 분위기는 완전히 처음 접해보는 곳이었다. 쉽게 드나들 수 있고 친근하기만 한 마트에서, 회비를 내고 입장한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아영이 일하던 당시에는 연회비를 내는 마트는 생소했다. 이곳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에 회원이 되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섰다. 돈을 내고, 물건을 사러 오고 싶어 했다. 연회비를 내는 사람들은 가볍게 왔다. 새로운 물건과 품질이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다고 기뻐했다. 단순히 저렴한 물건만을 사기 위함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원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러했다. 이곳 회원이 아닌 이들은 장을 굳이 유별나게 봐야 하냐며 한 마디씩 하기도 했으나, 함께 들어가서 장을 보기를 원하기도 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러했다.
”오늘이 마지막 행사입니다. 저렴하게 이용해 보세요. “
”늘 하는 할인 행사인걸. “
”네? “
”가격 항상 저렴하게 나와요. 아가씨 가더라도 꾸준하게 들어올 거야. 왜 그렇게 힘들게 일해요. 그냥 시음만 해주면 될걸. “
큰 카트에는 정말 필요로 하는 물건만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게 들어있었다. 다른 이들의 카트와 비교해서 보더라도 물건이 적게 담겨있었다. 올림머리를 하고 있는 중년의 여자였다. 분홍색에 긴 손톱이 인상적인 그녀였다. 카트에 몸을 살짝 기댄 채, 맥주를 달라며 손을 까닥이고 있었다.
”오늘 시음 마지막 날이거든요. 한동안 행사도 안 한다고 들었어요. “
”매일 와봐요. 할인하는 품목 거기서 거기고. 필요할 때 주기 맞춰서 사가거든. “
”그러시군요. “
”마트들이 다 똑같지. 재고 물량 맞춰서 할인할 거고. 매주 오는데, 한 달에 한 번은 꼭 하더라고. 그런데 또 이렇게 열심히 행사하는 아가씨는 또 오랜만이라. “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 열심히 하지 마요, 지나가는 사람들 알아서 마시고 사가니까. 목청 터져라 부를 것도 없고. 시끄러워. 무슨 시장도 아니고. “
아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열심히 하는 것이 부끄러울 수 있다는 것을 이곳에서 일하면서 여러 번 겪은 일이었는데, 직원들 외에도 손님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웠다. 요령껏, 시간을 보내기만 하는 것보다, 한마디라도 더 해서 물건을 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영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아영처럼 소리를 외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은 맥주를 마시고 지나갔다. 아영은 목에서 목소리를 꺼내어 보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 덜컹거리면서 지나가는 카트소리. 작은 소리들이 마트를 채우고 있었다. 아영은 그 작은 소리를 뒤로 하고, 크게 목소리를 키우고 있었다. 마트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게, 어디엔가 모르게 툭 튀어나온 못난 모서리 같았다. 열을 맞추고 행을 맞추려 아무리 돌려보아도 돌아지지 않는 물건처럼, 못났게 튀어나와 있었다.
입을 다물고, 맥주를 잔에 따라놓았다. 시음하는 손님에게 조용하게 말을 걸었다. 목을 높이지 않았다. 주변의 소음과 자연스럽게 스며든 아영의 목소리는 그 손님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렇게 하여도 많은 사람들이 사갔다. 몇몇 사람들은 할인을 기다렸다며, 아영이 서있는 모습을 표지판 삼아서 들고 갔다. 아영은 자신의 목소리로 이 물건들을 팔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저 표지판 역할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지금까지의 노고가 헛수고는 아니었다고는 생각했다. 소리 나는 표지판 역할을 한 것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었다. 이 표지판은 말도 하고, 움직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지? 하고 들여다보는 정도. 그 이상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마트에서 일하는 아영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것이었다.
”오늘은 조용하네요? “
네이비색 피케셔츠를 입은 직원이었다. 항상 같은 색에 같은 티를 입고 있는 직원이었다. 아영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출근을 하지 않은 줄 알았다며 웃고 있었다. 아영의 얼굴은 다시 빨개졌다.
”.. 소리 안쳐도 잘 사가시더라구요.“
”네? “
”멘트 안 해도, 손님들이 잘 사가더라고요. 방금 알았어요. “
”2주나 했는데? 이제? “
”네.. “
”아영 씨? “
직원은 처음으로 아영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가슴에 달린 명찰을 노골적으로 보면서, 어색하게 아영의 이름을 말했다.
”아영 씨가 이 물건에 대해서 몰랐었구나. 맥주 좋아해요? “
”좋아는 하는데, 수입맥주는 비싸서 잘 안 마셔봤어요. “
”이 맥주 잘 팔려요. 깔끔하고 맛있고, 가격은 비싼데- 그 값하는 맛이라. 그래서 할인을 안 해도 잘 팔려요. 그런데 할인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사가죠. “
”몰랐어요. 그냥. 손님들이 맛있다고만 하길래. 그리고 그냥 유명하다고만 해서. “
”맞아요. 유명해요. 맛도 좋고, 지금 행사는 심지어 가격도 좋아. 자신이 파는 물건에 대해서 잘 알고 열심히 파는 거랑, 모르고 열심히 파는 거랑 다르죠. “
”.. 부끄럽네요.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여기에선 아무도 이렇게 열심히 안 한다고.. “
”사람 성향차이지, 부끄러워할 건 없고. 잘했어요. 잘 팔았어요. 유난이긴 했지만. “
피케셔츠를 입은 직원은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는 아영의 빨개진 얼굴을 보았다. 어린 학생은 학생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에 요령이 필요하고, 눈치도 필요했다. 그걸 알리 만무한 성실한 학생이 2주 동안 목이 터져라 일을 했다. 몇몇 손님들은 그렇게 열심히 파는 아영이 못마땅했다. 별거 아닌 일을 벌거인 것처럼 하는 모습이 성실해서라기보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쓰는 바보쯤으로 생각했다. 많은 물건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 조용히 사가기를 원했던 이는 유별나게 툭 튀어나오는 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열정이 보여서 보기 좋았다는 생각보다 조용히 서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튀는 아영이 싫었던 것이었다. 돌아다니면서 빈 물건을 보고 무전을 치던 그는 그녀를 향해서 혀를 차는 손님들을 볼 수 있었다.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의 앞을 지나고 나면 날 선 눈초리로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였다. 열심히 해도 욕을 먹는 아영을 보고 있자니, 그는 안쓰러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열심히 하면서 즐거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그녀는 성실히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 기특했다. 하지만 마지막날.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출근을 안 한 것인가, 하고 들여다보았는데, 밝은 표정으로 서서 입을 다문 그녀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녀도 알게 되었다. 이곳에서의 최선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일지 알기에,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성실히 일했던 그녀에게 ’ 이제야 알았으니 다행이예요 –‘ 다음에는 적당히 하세요-라는 말이 안 나왔다.
”저 명찰은? “
”그냥 들고 가셔도 돼요. “
”반납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기념-“
사무실의 여직원은 아영의 마지막에 선물을 주었다. 아영의 손에는 반짝거리는 플라스틱 명찰이 들려있었다. 기념이라는 명찰이 유독 크게 느껴졌다. 명찰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집에 가는 내내 꼭 쥐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백팩을 메고 있던 그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온다. 밖은 서늘했다. 지글거리던 땅이 서늘하게 식었고, 식은 지면과 더운 바람이 만나서는 그녀의 더위를 가시게 했다. 실내는 서늘했는데, 뜨거웠던 하루를 보낸 그녀였다. 한숨을 돌리고 여유를 갖는다. 그녀는 지금의 방학을 마지막 방학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방학은 이제 완전히 끝이 났다.
그녀는 취직을 하기로 하였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사이사이 자격증을 따고 꾸준하게 공부를 했다. 그녀는 여전히 요령이 없었다. 직접 부딪히는 것으로 대응했다. 아영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그랬기에 모르는 자신을 부여잡고 더욱 열심히 해야만 했다. 잘 알지 못한다면 잘 알 때까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들을 생각하기에는 그녀가 무엇을 잘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신이 없다면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열심히 하다 보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녀는 취업이라는 목표하나만을 가졌다. 월급이 얼마인지, 회사의 규모가 어떠한지 중요하지 않았다. 전공을 최대한 활용하여 일할 수 있는 곳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역도 중요하지 않았다. 서 있는 인형만은 되지 말자라고 생각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물건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꿈도 아니었고 바람도 아니었다. 되고 싶은 것이 아닌, 되어선 안될 것을 생각했던 그녀였다. 아영은 그렇게 취업을 했다.
”취업 축하한다! “
”고마워. “
”공부 좀 더 하지. 아깝게. “
”한살이라도 어릴 때 취업하는 게 좋대. “
”누가 그래? “
”다들 그렇게 말해. 시험공부하다가 안되면 나이만 흐르고, 나중에 면접 볼 때 나이가 이렇게 많은데, 지금까지 뭐 하셨어요?라고 한다고. 그럼 공부했어요- 하면 좋아하는 사람 없대. “
”아영아. “
”응? “
”왜 안될 걸 생각해? 안될 걸 생각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
”.. 그러게. “
”너 잘했어. 우리는 너 될 거라고 생각했어. 늘 바빴지만, 늘 잘 해냈잖아. “
”공부하는 동안은 붙을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했지. 그런데 또 공부하다가 방학이 되면 일을 해야 하는데, 꿈과 현실 오가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 “
”아쉽다. “
”아쉽지. “
”미안. 정말 아쉬워서 그래도, 수고했어. 잘했어. 잘할 거야. “
"알아.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래도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너무 고맙다."
아영은 취업이 달갑지 않았다. 기쁘지 않았다. 확신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닌 취업이었다. 남들이 하니까. 남들과 비슷하게 그냥 살려고. 정말 살려고 했던 취업이었다. 마트의 물건들처럼 유통기간에 임박해서 저렴하게 대량으로 팔려나갈까 두려웠고, 제값에 사가길 원한다기보다, 기획특가의 가격으로 반짝이며 담겨가길 원했다. 유통기간에 임박해서 나온 사람 말고, 새로 나온 신제품출시 기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상에 나온 아영이었다. 조급하게 말고, 조금 더 비싸게 포장되어서 특별한 날에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들이는 시간마저 숫자로 세어지는 현실에서 그녀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씁쓸해했다.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을 알기에는 힘든 그녀였다. 사는 것에 요령이 있을까. 사는 것에도 꿈을 가질 수 있던가. 아쉬움이 가득한 그녀의 술잔에는 술이 가득 차 있었다. 넘치지 않을 정도로,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술잔은 그렇게 끝까지, 비웠다가 채웠다가를 반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