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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회원제 마트 -2

2부. 스치는 사람들

by 김현정

마트의 내부는 달랐다. 널찍하고 냉기가 도는 커다란 컨테이너 박스 같은 마트. 사람들이 오가는 정감이 넘치는 마트와는 달리 물건만 사가면 된다는 듯 적막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손님에게도 직원에게도 한결같은 공간이었다. 아영이 지금까지 돌아다녔던 마트는 손님위주의 마트였다. 손님이 물건을 고르고, 사갈 때, 잠시 머물더라도 따뜻하여 계속 찾고 싶고, 사람들의 온기가 직접적으로 닿는 듯한 느낌이라- 편안했다. 다만, 직원들은 그곳에 속해있는 상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직원 휴게공간과 사무실의 온도차는 컸다. 조명하나 제대로 달아주지 않던 그곳은 손님과 직원의 차이가 확실했던 곳.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냉골같이 차가운 마트에는 손님과 직원의 사이를 차별하지 않았다. 휴게공간도 넓었다. 휑하지만 손님과 마찬가지로, 모든 공간을 똑같이 사용할 수 있었다. 직원이라 항상 지나가는 손님한테 꾸벅꾸벅 인사할 필요도 없었다. 마트의 푸드코트를 사용할 때는 직원이라는 것을 숨기고 먹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는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일하는 직원들도 자유로웠다. 점심시간에는 그곳에서 파는 핫도그나 피자를 먹었다. 직원 할인이 따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저렴하였기에, 식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밥을 먹고 잠시 쉬러,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휴게 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텔레비전이 있었고, 한 아주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두 다리는 차가운 플라스틱 의자에 올려두고, 벽에 기대어서 웃고 있었다. 아영의 기척을 느낀 아주머니는 뒤를 돌아 아영을 보았다.


”알바? “

”네. “

”나도 “

”안녕하세요. “


아주머니는 쭈뼛거리는 아영을 보며 피식했다. 이곳은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회원제 마트에서 자신이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면 대꾸를 잘하는 직원은 없다. 대개 직원들은 자신을 아르바이트생이라, 스쳐가는 사람에게 굳이 말을 붙일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들로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아주머니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속이 많이 상했지만, 지내고 보니 구태여 관계를 유지해야 할 쓸데없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사람을 보면 말을 붙이고 싶은 그녀였다. 하루 종일 서서 말은 하는데, 대꾸가 없는 곳이었다. 벽을 보면서 8시간 9시간 홀로 떠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수도 줄어들고, 시식시켜 주는 로봇이 된 느낌이었달까. 그런 그녀 앞에 있는 아영은 그녀가 그리워하던 사람이었다.


”못 보던 얼굴이라. 여기 처음이에요? “

”네, 오늘 처음 왔어요. “

”며칠 해요? “

”2주 정도요. “

”나는 1주일 남았어요. 여기 어때요? “

”잘 모르겠어요. “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고, 외롭고 해요. 그런데 – 하다 보면 적응 돼. “

”아.. 네.. “


아영은 그녀가 반가웠다. 전에 일하던 마트의 이모들이 생각났다. 살갑고 푸근한 이모님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이모님들을 보기도 힘들었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넓은 마트에서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보니 잡담을 하거나 교류를 할 수가 없어서 외로웠다. 손님과 아영만 있는 것 같은 마트. 마트의 직원들은 바삐 무전을 하고, 자기들끼리만 있으니, 외부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반나절 일하였지만, 아영에게 이곳은 정이 가지 않았다.


”직원들이 좀 싹수가 없어. “

”네? “

”우리는 단기 알바고- 자기는 정규직이다 이거지. “

”아.. “

”뭐, 이해도 돼요. 여기가 좀 넓어. 뭐 하는지는 모르는데, 자기들끼리 엄청 바빠. 전에 나는 동래 쪽 m마트였었는데. 아가씨는? 어디 돌다 왔어요? “

”아, 전에는 남안 쪽 h마트요! 동래 쪽 m마트는 지난달에 갔었어요. “

”남안 쪽은 사람들이 좋더라, 동래 쪽은 거기 과장 너무 꼬장하고- 그죠? “

”네, 쉽진 않으시더라고요. “

”그래도 마트들이 다 특색이 있어. 손님도 그렇고, 거기 직원들도 그렇고. “

”그렇더라고요. “

”그런데- 여기가 제일 편해요. 일하기는 좋아. “


아영과 이야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는 아영의 대꾸가 좋았다. 자신이 돌아온 마트의 사정을 알고, 마트의 특색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영의 싹싹한 태도는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나는 b열에서 초콜릿행사해요. 아가씨는? “

”저는 h열에서 수입맥주행사하고 있어요. “

”머네- 나는 지금 쉬는 시간 끝나서 내려가볼게요. 그 – b열 들렸다가 초콜릿 먹고 가요. “


아주머니는 아영의 어깨를 톡톡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웃으면서 가는 아주머니의 모습에 아영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지금까지 돌아다닌 마트에 비하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했기에- 오히려 반가웠던 아영이었다. 떠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달달한 초콜릿을 생각하면서, 쉬는 시간이 끝나면 b열로 가봐야겠다- 했던 아영이었다.

쉬는 시간은 금방 갔다. 직원 휴게공간에는 몇몇 직원들이 오갔다. 하지만 아영에게 말을 거는 직원은 없었다. 둘씩 짝지어서 들어갔다 나가고, 한 명이 들어왔다 치면 주변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속에서 아영은 불편함을 느꼈다. 화장실에 앉아서 편히 책을 읽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의 이동이 자유로운 이곳에서, 아영은 마트 구경을 하기로 했다.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수입과자와 초콜릿도 잔뜩 있었다. b열로 가서 아영은 그녀를 찾았다.


”여기 여기! “


과자와 초콜릿도 전부 그녀의 키를 넘어서 물건이 쌓여있었다. 과자 속에 파묻혀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아영은 기뻤다. 그녀의 앞에는 커다란 초콜릿이 반개씩 쪼개져 있었다.


”이거 하나 들고 가-“


아영의 손에 쥐여준 초콜릿은 알사탕보다도 컸다. 두툼했다. 그 초콜릿을 본 아영의 두 눈은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주셔도 돼요? “

”이렇게 시식 나가. 회원제 마트라. 다들 돈 내고 들어오는 거잖아. 시식은 넉넉하게 해 줘. “

”감사합니다. “

”인사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시식하고 가요. “


아영은 그녀의 말에 웃으면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분명 적적하고 외로운 곳이라 생각했지만, 물건으로 만들어진 높은 벽 너머로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여러 일하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번 여름 최대 할인하고 있습니다. 맥주 시음해 보고 가세요. “

”지난달 비해서 할인폭이 별로인데? “

”네? “

”매주 와. 여기, 가격 할인이 이천 원은 덜 된 거 같은데? 최대할인은 무슨“

”아, 본사에서 내려온 내용이라,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

”아니야.. 뭐, 가격 보고 결정하는 건 나지. 저번에 사서 아직 남아있어. “


맥주 가격에 시선을 한번 주고, 지난번과 가격할인 폭이 크지 않다던 손님은 아영의 앞을 지나갔다. 본사에서는 이번 할인 폭이 최대임을 강조하며 시음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단골손님이라는 분이 최대할인 하고 있다는 말을 거슬려했다면 굳이 ’ 최대‘라는 단어로 그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수입맥주. 마니아층이 탄탄하고, 맛이 깔끔한 맥주가 할인하다고 있다는 정보만 주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 이 맥주 무척 싸네. “

”매번 할인했잖아. “

”근데 오늘은 좀 더 가격이 싼데? 맞죠? “

”아, 네 – 고객님, 이번 시즌 최대 할인가로 행사 진행하고 있습니다. “

”아, 이거 요즘에 이슈 있어서, 할인 크게 하나 보네. 이때 사야겠다. “


다른 손님은 가격이 무척이나 싸다면서 여러 팩을 집어갔다. 회원제인 마트인 만큼, 사람들은 연회비를 내는 마트에서 주로 구매를 한다. 그래서 매주, 또는 매일 방문하는 손님들이 많다. 손님들은 직원들보다 가격을 잘 기억하고 있었고, 사고자 하는 물품의 할인기간을 체크한다. 그런 꼼꼼함 덕분에, 기존 물품을 행사하러 들어온 파견직원들은 판매에 더 수월했다.


”팔레트 들여야겠다. “


순식간에 비는 맥주의 속도는 빨랐다. 인기 브랜드의 맥주였고, 할인폭이 크다는 점이 한몫했다. 물건이 비어갈 때쯤이면, 지나다니는 직원분들이 무전으로 물건을 들여준다. 나는 옆에 서서 행사를 하고 있음을 알리면 되었다. 다른 마트보다는 확실히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이거 행사 언제까지예요? “

”2주요. 오늘 첫날. “


무전을 치던 직원은 아영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는 아영이 못마땅했다.


”.. 물량 장난 아니게 빠지네. 이거 그냥 할인만 해도 잘 나가는데, 뭔 행사 직원까지 붙여가지고. “


아영은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오히려 열심히 하는 게 잘못인 것처럼 대하는 그의 태도에 아영은 잘하고 있다가 아닌, 잘못했다는 생각을 주게 했다.


”뭐야? “

”이거 너무 잘 나가잖아. 오늘만 벌써 몇 팔레트야. “

”그래서. “

”아니- 이거 왜 시음행사한데? “

”하면 하는 거지, 여기 이 사람도 일 하러 왔는데- 앞에서 꼽주고 있냐. “

”그게 아니라.. “

”죄송합니다- 물건은 지금 들어온대요. “


네이비색 피케 셔츠를 입은 직원이었다.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해줘야 할 일과 해야 할 말은 철저하게 구분하는 사람이었다. 선을 넘는 것이 있으면 넘지 않게 하였고, 넘었다면 수습하게 했다. 앞에서 툴툴거리던 직원도 그의 사과를 바라보며, 사과를 했다. 아영의 얼굴은 다시 살구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이상한 곳이었다. 돈을 내면서까지 마트에 오는 사람들. 의욕 없이 일하고 사람에게 관심 없는 직원들. 공허한 공간에서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일하는 사람들.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온기는 찾아볼 수 없고 애정 없는 물건들만 있는 곳이었다. 커다란 카트 안에는 대용량의 물건들이 척척 담기고 있었다. 사면서 설레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잘 없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담고만 있었다.


”시음해 보고 가세요. “

”괜찮아요. 맛 알아. “


맥주를 담아가는 사람들은 시음을 하지 않았다. 차를 가지고 와서, 또는 아는 맛이니까. 사는데 굳이 맛을 봐야 하냐는 말. 손님들은 그렇게 아영에게 말하고 있었다. 좀처럼 시음의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시음대를 정리를 하고, 고객 사물함에서 아영의 물건들을 꺼내었다. 사람들은 아영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영 또한 사람들을 관심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다리는 아팠고, 시간은 덧없이 흘렀다. 그저 빠진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산처럼 쌓였다가, 물건의 바닥이 보이고, 다시 산처럼 쌓였다가, 물건의 바닥을 보았다. 서늘하고 춥던 마트 밖을 나오니, 깜깜한 밤을 무시하는 듯한 밝은 가로등 불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마트 밖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아직 마트 속에는 사람들이 우글거렸지만, 그녀가 나온 도보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차를 타고 왔다. 대용량으로 사는 짐들을 지고 도보로 걸어갈 사람들은 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고요한 길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더운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녀는 하늘만 바라보았다. 고요한 거리가 그녀를 혼자 있게 하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풀이 흔들리고, 바람이 불고 있었다. 별은 조금씩 위치를 옮겨 다니며 흘러가고 있었고, 밝은 가로등불이 따뜻했다. 도로에 지나가는 차들은 빨랐지만, 저기는 달리는 차들 중에서 아영을 태워가려 멈춰줄 버스가 함께 한다. 마트가 종점인 버스는 텅 빈 좌석으로 그녀에게 왔다. 아영이 탄 버스는 회차한다. 그리고 한정거장씩 멈춰 설 때마다 사람들을 태우고, 그 속을 채워갔다.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웅성거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 이야기, 오늘의 날씨이야기. 전에 보았던 재미난 이야기를, 같이 탄사람과, 전화 너머 속 사람에게 하고 있었다. 울고 웃고 화내고, 덤덤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영은 꽂고 있던 이어폰의 소리를 껐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 종일 마트에 서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지만, 아영은 사람들의 소리를 오늘 처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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