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차. 맑은 눈의 광인
요즘 난 은은하게 돌아있는 돌아이 같다.
내가 나를 이런 식으로 표현해도 되나 싶고 한편으로는 오글거리기도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가? 싶은 것들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라던지 소시오패스 같은 것들과는 결이 다르다.
은은하고 잔잔하게 돌아이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간이 기본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들을 할 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혹자들은 의지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의지 그 밖의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씻는 것, 먹는 것, 내 생각조차 조절이 안 된다.
씻는 것이 참 안 된다.
머리가 너무 가려워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지면 그제야 머리를 감는다.
손톱도 너무 길어서 잘라야지 잘라야지 몇 번의 마음을 먹은 후에야
겨우 자르고, 결국 하기는 하는데 끝까지 가야지만 겨우 하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그래도 해냈다.' 생각할 때도 있고,
'이렇게 귀찮아해서 어떻게 살아가나.' 생각할 때도 있다.
먹는 것도 참 안 된다.
맛있는 생선을 눈앞에 두고도 가슴이 쿵쾅쿵쾅 난리가 난다.
밥을 먹는 내내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려서 응급실 가는 상상을 떨칠 수가 없다.
내가 먹는 것도 불안하고 상대방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불안하다. 그래서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을 때면 생선을 제대로
발라 먹고 있는지 관찰하느라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기 일쑤다.
생선 가시 사건은 엄마가 무려 두 번이나 그렇게 병원을 간 적이 있어서
더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기도 한데 이건 굉장한 스트레스다.
병원을 걸어오는 길에 든 생각은
'이 도로에 사람이 한 명도 없었으면 좋겠다.'
'길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나?'
그렇다고 사람들을 총으로 막 다 쏴 죽이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차도 안 다녔으면 좋겠고,
병원까지 나 혼자 조용히 걸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에 조금 짜증 나게 걸어왔다.
별 건 아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도 잔잔하게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
위에서 뭐가 떨어지지 않을까. 천장이 내려앉진 않을까.
지진이 나진 않을까.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까.
비행기가 추락하진 않을까. 아파트가 무너지진 않을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데 왜 이렇게 탈출이 되지 않는지는
정말이지 모를 일이다.
-> 탈출이 쉽게 됐으면 병원에 오지 않았겠죠.
-> 그래도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지켜보는 힘은 있네요.
-> 나를 막 은은한 돌아이다. 이렇게 보지는 말고.
-> 내가 이게 다 강박증상이 이렇게 있어서 그렇구나. 조절이 안 돼서 그렇구나. 이렇게 봐요.
스트레스가 심했던 탓인지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했다.
목이 타 들어갈 것 같은 느낌에 엄청 고생을 했다.
약을 먹으면 금방 또 괜찮아진다.
하지만 불안이나 긴장이 높아지니 역류성 식도염마저 계속 반복이다.
자다가 새벽에 자주 깨는 일도 많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다 못해 몸이 두근두근 거리면서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느낌에 몸에 엄청 힘을 주면서 버티곤 한다.
영혼이 빠져나가 버리면 이대로 그냥 죽을 것 같아서 어찌나 무서운지 모른다.
또 약이 추가됐고,
약의 힘과 시간의 힘을 빌려 보기로 했다.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강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아니다.
역류성 식도염도 잠잠해지고, 잠도 편하게 푹 잘 자면 좋겠다.
'맑은 눈을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광기가 느껴지는 인물'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캐릭터를 알게 되었다.
나는 눈이 큰 편으로 이 캐릭터와,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는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신기하게 보고 넘어갔는데,
또 다른 뜻으로는 '맑은 눈으로 안광을 발사하며 좌절하지 않는 모습'이라고 하니
나도 두 눈 크게 뜨고 좌절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겨내리라 다짐해 본다.
14회차. 맑은 눈의 광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