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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17 '우울증 치료 일지' 16회차.

16회차. 야, 너두?

친구들과 매년 서로의 생일을 챙긴다.

우리가 알고 지낸 10여 년 전부터 쭉 해오던 큰 행사다.

바쁜 일상에 꼭 시간을 내서 만나곤 하는데 

코로나 19 이후에는 카톡과 기프티콘으로 대체하는 날이

늘어가고 있어 안타까운 요즘이다. 

올해는 어째 한 친구만 따로 만나게 되었다.

후에 생각해 보니 그러려고 그랬나 보다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3차까지 달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일상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고,

크고 작은 고민들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우리는 커피로 밤을 새울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친구가 아주 조심스레 꺼낸 이야기에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내 글에 친구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친구가 특정되지 않아야 하고, 드러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정말 소중한 친구라 조금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 글에 출연시킨 이유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반가워서였다.

야, 너두?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알고말고.


친구는 정신과를 다닌 지 세 달 정도 됐다고 한다.

잠을 잘 못 잤었는데, 잠을 엄청 잘 자게 됐다며 기뻐했다.

약 먹는 시간이 되어 약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나와 같은 약이 한 알 있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 놀랐다.

툭하면 눈물이 쏟아졌었는데 감정 조절도 잘 된다고 한다.

친구의 상황 설명은 여기까지.


나는 그날의 친구가 너무 고마웠다. 

한 달음에 달려와줘서 얘기를 꺼내 놓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웠고,

나를 믿고 나에게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정말 고마웠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땐 절대 아니.

난 절대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나의 병이나 병원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 하지 않았다.

친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돼 서다.

나는 그렇게 병이 호전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조금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괜찮아지면, 다 나으면 그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고, 안정적인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데

그런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의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그렇게 무겁지 않게,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게 말을 해 나가는 것이 부러웠다.

그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지 못하고 나는 입을 꾹 닫고 있어야 하는 사실이

너무 미안해질 만큼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많이들 겪고 있는 아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한 걸음 발을 떼지 못했나 후회하기도 하면서 

이야기하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내가 한참 더 많은 개수의 약을 먹고 있지만 나랑 같은 약도 먹고 있는 것 같은데

친구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잠을 푹 자고, 눈을 딱 뜨고, 눈물이 멈추고 있다고.

너무나도 극적인 모습들이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고 바라던 모습들이기도 하다.

잠을 푹 자본 지가 언제인지, 그래서 눈을 뜰 시간에 뜬 적은 또 언제인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선은 언제쯤 평화로워질 수 있는지 매일 하는 걱정인데

친구는 이제 그게 가능해진다고 한다. 정말 부러웠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과연 이 친구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울지 않고, 담담하게 내 병명을 설명하고, 내 상태를 설명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이면서도 조금 더 성장 한 모습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극적이진 않은데,

서서히 서서히 좋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인데,

시간도 생각보다 많이 걸리고 있고,

그런 나에게 약간 실망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부러웠다.

아무래도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극적이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슬프게도.


-> 일단 단순한 우울증을 치료받는 게 아니기 때문에 

-> 친구와 비교해서 약을 몇 개 먹는지 이런 건 사실 의미가 없어요.

-> 똑같은 우울증 환자들도 결과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 누구는 이 약을 먹는데 나는 왜 이 약을 줘요? 이럴 수도 없는 거고요.

-> 우리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 좀 긍정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비교하게 되면 아무래도 불안하고 외롭고, 우울해진다.

모르는 사실이 아니니 더욱 주의해야 할 점이다.

얼마 전에는 결혼식에 다녀왔다.

나에겐 10년 동안 사귀다 결혼한 친구가 2명이 있었다.

하루 차이로 결혼을 했는데, 마음이 크게 동요했다.

결혼이라는 현실에 맞서야 하는 나이가 된 것도 문제였고,

나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에도 크게 타격이 왔다.

첫사랑과 10년의 연애 끝에 결혼하는 친구, 그것도 둘이나.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했지?

꿈과 이상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너무 아름답고 멋진 사랑에 그런 현실을 살아보지 못한 나는

그저 슬플 뿐이다. 

한동안 꽤 울적했다.

얻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 불안함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나도 얼른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그전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지.


16회차. 야, 너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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