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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13 '우울증 치료 일지' 12회차.

12회차. 맞는 약 찾기 1

일주일 동안의 경과를 보는 날이다.

그동안 약을 바꿨고, 추가하기를 몇 번.

이번주는 제법 괜찮은 날들을 보냈다.


- 이번에 먹은 약은 괜찮았어요.

-> 괜찮았어요?

- 약을 먹어도 어쩔 줄 몰라하는 그런 느낌이 강했었는데 이번에는 괜찮았어요.

-> 조금 그런 느낌이 줄고, 불안한 생각이 덜 들던가요?

- 덜 들었다고 생각해요. 맞는 약 찾기가 참 어렵구나 싶기도 하고요.

-> 하하하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엄마랑 마트도 다녀왔다.

어제는 혼자 마트에 갔다가 도서관에 들렀는데 조금 힘들었다.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는 것도

집과 더 가까운 도서관에 가는 일도

혼자서는 힘이 들고 금방 지쳐버린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버겁다.

혼자라서 더 우왕좌왕하는 느낌도 강하다.

세상이 그렇게 무서운가.

나는 왜 사람들이 무서울까.


집안에 큰일이 생겼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큰일이 일어났는데

다들 놀라고 정신없을 때 우리 집에서는 그나마 내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해결 방법을 찾아나갔다.

이것저것 알아볼 게 많아서 바쁜 한 주를 보냈더니

우울할 틈도 없었던 것 같다.

바쁜 일상이 나에게는 불안을 잊기에 가장 좋은 약임을 알게 됐다.

하지만 이처럼 강제로 생기는 일이 아닌 이상 

바쁜 척하는 일상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 문제다.


내가 느끼는 공포와 불안함은 밖에서 특히 과장되게 나타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조수석에 앉은 나는 사고가 나는 상상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앉아 있어야 했다.

조그마한 변화에도 크게 반응하며 온 신경이 예민해졌다.


하루는 엄마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엄마랑 같이 탔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안한 기분이 감돌아 진정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얼마 뒤 한 외국인 남자가 내 뒤에 앉으면서 그 공포는 극에 달했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면서

뒤에 앉은 외국인 남자가 칼로 나를 찌를 것 같은 느낌에

온몸이 경직되어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된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거리며 버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칼로 목을 찌르는 느낌이 현실감 넘치게 

상상되면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30분 ~ 35분 정도를 가는 동안 울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영문도 모르던 엄마는 내릴 때가 되자 내 손을 잡아 줬는데

그때 겨우 현실로 돌아와 안심하고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집에서는 그보다 약한 수준의 공포와 불안함이 번진다.

특히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낮이든 밤이든 무섭다.

혼자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나면 어떡하지?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누군가 내 방문 앞을 쳐다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에

혼자서는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

점점 고립되어 가는 느낌이다.


->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은 줄었지만, 불안한 강박적인 생각들은 계속 반복이네요.

-> 약을 다시 조금 조절해야 할 것 같아요.


이런 증상 때문에 여전히 친구들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친구 생일이 있었는데 카톡으로만 인사를 나눴다.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지만 이게 최선이다.


씻는 것도 여전히 힘들다.

한 번에 몰아서 씻으려고 하는데 그것도 잘 안된다.

아침 9시부터 세웠던 씻는 일정은 오후 2시에 세수를,

이후 오후 4시에 머리를 감고, 최대한으로 미루다 

밤 11시 30분에 샤워를 하면서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나름대로 노력한다고 하는 건 낮잠을 줄여보는 것이다.

오전에도 낮잠을 자고, 오후에도 낮잠을 자는 패턴 중에

오전 낮잠이라도 막아보자는 계획이었다.

억지로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꽤 버틸 수 있기도 했다.

자기 전에는 자꾸 이상한 생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니

노래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잠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자다가 귀를 누르는 이어폰에 깨기도 하고, 

노래를 들으면서 잠에 들면 특히나 꿈을 많이 꾸는데 

좋으나 싫으나 그건 어쨌든 꿈이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잠드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노래 들으면서 잠자기도 계속 진행 중이다.

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더 노력해 주면 좋겠지만. 더 빨리 깨달아주면 좋겠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바뀐 약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고, 잘 챙겨 먹으려 한다.

같은 증상이라도 정말 다양한 약들이 존재했다.

나와 맞지 않는 약을 먹었을 때는 정말이지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거부감이 확 느껴지면서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약이야!라고 몸은 정확히 신호를 주었다. 

그 작은 알약들이 얼마나 큰 힘이 나게 해 주는지 놀랍기도 했다.

점점 약에 대한 거부감도 줄어들고 맞는 약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 진료 이후

나는 '정신분열증' 약을 처방받았고,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12회차. 맞는 약 찾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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