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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11 '우울증 치료 일지' 10회차.

10회차. Yet To Come (Feat. BTS)

생각을 줄이기 위해선 생활 패턴을 바꿔야 했다.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에겐 하루 24시간이 정말 24시간 주어져 있었는데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지 못하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생활 패턴을 바꾸기 위해선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굳게 마음을 먹고 일자리를 찾아 두 군데 서류를 넣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서류 광탈.

하하... 정말 이럴 줄은 몰랐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아르바이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원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니...

나이가 너무 많은 탓일까.

경력이 없는 탓일까.

이후에도 지원은 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 같은 결말을 맞았다.


슬프다. 너무 슬프고 무기력하다.

조금 남아 있던 의지의 불씨도 꺼져 버렸다.

중간에 조금 쉬었던 기간이 있었지만 벌써 10번의 진료를 마쳤다.

그런데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다.

치료가 잘 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답답해진다.


하지만 10번의 진료 동안 좋아진 점이 정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일단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아무렇지 않고, 병원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병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다. 좋은 현상이다.

꾸준히 병원에 내원한다는 것만으로도 발전적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고, 잘 챙겨 먹지 못했던 약을 

비교적 꾸준히 잘 챙겨 먹고 있다. 

이 또한 규칙적인 활동의 하나로 나의 긍정적인 행동 중 하나일 것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외출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도 줄었다.

밖에 나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해서 2주 넘게 아예 안 나간 적도 있었고,

나가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 살고 있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잠깐씩이지만 거의 매일 나가고 있다.

일부러 마트를 다녀오고, 엄마랑 운동을 나가고, 외식을 하고, 카페를 간다.

아직 마스크와 모자는 필수템이지만... 긍정적인 신호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과제들이 더 많다.

기본 감정 자체가 우울로 깔려 있는 데다 매사에 슬프고 무기력하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부정적인 생각이 온몸을 감싸고

생산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정신분열이 일어나는 시간이 계속된다.

폭식과 강박이 심해서 일상적인 행동이 불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인 씻는 행동도 전혀 안 된다.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샤워하는 것.

치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상에 물건이 다 쌓여서 도저히 자리가 없을 때가 되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하루종일 책상을 치우는데 시간을 쏟는다.

손, 발톱을 자르지 못하고 미루기 일쑤인 데다

대인기피증과 공황장애가 따라다녀 

엄마가 동행하지 않고는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만난 지 1년이 넘었고 카톡으로만 겨우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와중에 잘 되고 싶은,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우울하다.

이런 기분은 자기 비하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못생긴 걸까?

모든 면이 왜 이렇게 어정쩡하지?

키도 크고 날씬했으면 좋았을걸...

부정이 심해지고 있다.


그러던 중 주말에는 아주 운이 좋게 티켓팅에 성공해서 

방탄소년단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무려 혼자서 말이다.

평소 좋아하는 그룹이 있어 콘서트만은 꼭 찾아다니는 편인데

마지막 콘서트를 간 지도 몇 년 전이라 그 생동감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다른 그룹의 콘서트에 가는 건 처음이라서 더 떨리기도 했다. 그것도 혼자서 간 건 처음!

팬분들과 함께 열심히 즐기기 위해서 매일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익혀나가면서

내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러나 즐거움에 빠져 새로운 활력이 될 거라 생각했던 콘서트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5만 명의 사람들의 환호 소리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빛나고 있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1분 1초가 아깝지 않게 응원하는 팬들의 모습에서

지금 나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것이 부러웠고,

세계적인 스타는 역시 세계적인 스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대 위에서 정말 잘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큰 사랑을 받는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워 눈물이 났다.

진짜 멋있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같은 인간임에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감히 BTS와 나의 삶을 비교하다니?

우울해지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이 아닌가...

신나는 콘서트 장에서 혼자 다른 포인트에 빠져 한동안 그렇게 울었다.


->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가다니! 운이 좋았네요.

- 네 정말 운이 좋았어요. 잘 다녀왔어요.

-> 그런데 BTS랑 비교를 해버리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요.

- 그러게요... 하하...

-> 전체적으로 정리가 안되고 씻는 게 힘들어서 본인 스스로를 게으르거나 나태하게 보는 것 같아요.

-> 하지만 강박증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부 다 증상들의 부분이고 조절이 안되고 있어요.

-> 진료받기 전에 비하면 조금씩 계속 좋아지고 있거든요.

-> 증상들이 하루아침에 짠하고 없어지는 게 아니고 서서히 변화가 생겨요.

->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려서 그렇지 포기하지 않고 내가 매일매일 신경을 쓰고

-> 노력하려고 하는 마음. 또 약 잘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 하는 것

-> 그러면서 조금 바뀌고 또 조금 바뀌어서 1년이 지나면 1년 전보다는 훨씬

-> 좋아졌지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요즘 자기 전에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생각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에 물이 막 차오르고 있고 사람들은 얼른 발을 떼라고 하는데

나는 발이 안 떼어지는 거다. 얼른 발을 떼고 걸어 나와야 하는데 안된다.

그러다 힘겹게 한 발을 뗐는데 더 깊이 쑥 빠져버렸다.

그럴수록 더 빨리 허우적거리면서 나와야 하는데 또다시

더 깊이 빠져버릴까 봐 옴짝달싹을 못하고 물이 계속 차오르는 모습이

머릿속을 맴돌면서 나를 괴롭힌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이 이야기를 그만 잊어버리고 싶지만 

자려고 누우면 계속 이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약도 계속 증량되니까 불안한 마음이 든 걸까.


-> 약은 처음부터 강하게 쓰지 못하니 시간의 경과를 보면서 계속 조절해 나가는 거예요.

-> 약이 증량됐다고 해서 증상이 나빠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 처음에 증상이 100이었는데 시작할 때 약을 100으로 시작할 수 없어요.

-> 시작은 10으로 하고 증상이 100에서 90, 80, 70 점점 좋아지는데

-> 약은 사실 반대로 점점 올라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 처음에는 약하게 먹고 몸이 조금 적응되면 증량하고,

-> 약이 안 듣는다 싶으면 바꿔보고, 추가해 보고, 빼보고 그런 과정이 있어요.

- 네... 약에 대해서도 또 제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었네요. 


요즘 내 플레이리스트는 조금 더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방탄소년단 노래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콘서트를 가기 전부터 콘서트장에서, 콘서트 이후까지

내 마음의 원픽인 곡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단연 Yet To Come을 꼽을 것이다.

그날의 콘서트 주제이기도 했던 Yet To Come은 

너와 나 인생의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모두를 향해 응원을 보내며 희망을 안겨주는 곡이다.

모두가 숨 죽인 밤, 발을 멈추지 않았던 BTS의 열정이

최고의 순간들을 만들어 내고 있음이 아닐까.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리라 꾸준히 노력한다면

나도 언젠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10회차. Yet To Come (Feat. BTS)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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