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글이 Oct 21. 2023

#1 '우울증 치료 일지' 0회차.

0회차. 사전 준비

정신건강의학과로 출발하기 전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로 마음먹기와 병원 찾기다.

사전 준비로는 위의 두 가지 미션이 주어진다.

"내가 정말 병원을 가야 할 정도인가?"를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 

병원을 가기 직전까지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병원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을 그때부터는 나에 대해 아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이 구조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는 문구들이 나와 있는데 그런 것들을

활용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요즘엔 병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가 진단이나 상담 센터에서 올려놓은

믿을만한 자가 진단 테스트들이 많이 있어 미리 체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여러 개의 자가 진단의 모든 부분에서 우울증을 나타내는 수치를 만나게 되었다.

"혹시 내가 이 정도로 병원에 가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라도

병원을 찾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진료와 상담을 통해 병의 수준이 

아니라면 다행인 것이고, 병이라면 얼른 치료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인생이 달린 일 일 수 있는데 밑져야 본 전 아닌가. 




우울증이 한순간에 쿵 하고 찾아온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 차 취준생으로 방황하면서 우울증은 소리 없이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매일을 '내 인생은 왜 이렇게 안 풀리지?' 그런 생각만 가득했던 것 같다.

하지만 무기력과 무력함은 나를 옭아매고 있어 어떠한 것도 시작할 수 없었다.

실패하기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내가 원하던 인생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꿈꾸던 현실은 이게 아니었는데...

우울증이 심해진 나는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씻는 것조차 해내지 못해 양치 하나 하는데 몇 시간이...

샤워 한 번 하려는데 12시간이 걸리면서부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병원을 찾았다.

내가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의 기준은 '일상생활이 가능한가?'였다.




병원은 어떻게 골라야 할까? 벌써부터 귀찮고 머리가 아파온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갈렸다.

집과 가장 가까운 A 병원

집과 가장 멀지만 최첨단 기계가 있는 B 병원

A병원의 장점 :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남자선생님과 여자선생님

B병원의 장점 : 예약제, 충분한 상담 시간, 최첨단 기계 측정 가능

B병원에 가서 초진을 한 후, 결과지를 가지고 A병원을 갈까도 한참 고민했다. 

하지만 어쩐지 A병원의 진료 방식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나의 슬프고 암울한 이야기를 똑같이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탈락.

솔직히 처음엔 B병원이 조금 더 끌렸다. 최첨단 기계로 뇌파를 측정하고, 

나의 신경자극을 알아볼 수 있다니 정말 내가 아프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됐다.

하지만 왕복 거리만 4시간이 넘는 시간... 나에게 그런 체력이 남아 있을 리 만무했고,

병원을 내원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집과 가장 가까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의

A병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집과 가깝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정신과 진료는 단 번에 끝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자주 병원을 내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멀리 있는 병원은 버거울 수 있다.

집과 가까운 병원은 꼭 챙겨 다닐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점이 장점이다. 




앞으로 몇 번 등장하게 될 수도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 두 명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 명은 고등학교 때 친구이고, 한 명은 대학 동기이다. 두 친구 모두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알려와서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누가 알까 걱정돼 숨기기 급급했는데, 정말이지 어디다 말할 자신은 없었는데, 고맙게도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말해오는데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나 멋있어 보였고, 자기 삶을 제대로 돌아볼 줄 아는 친구들이구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각자의 사정으로 마음이 정말 많이 상했었구나, 힘들었겠다. 정말 잘한 선택이라며 무한한 응원을 보냈다. 두 친구 모두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 나도 덩달아 힘이 난다. 




병원을 결정하고 난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한 친구가 B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하지만 친구는 왕복 시간을 핑계로 슬슬 그 병원을 가지 않게 되었고, 결국 집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역시 예상대로 버거운 일이 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병원은 가까운 곳으로 본인과 잘 맞는 병원을 찾는 것을 추천한다. 다른 친구는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병원은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 걱정 돼 집과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그것도 그럴 수 있겠다. 아직 정신과 치료가 누군가에게는 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막상 병원에 가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아직은... 그래... 아직은... 내과를 찾는 것과 같은 발걸음은 아니라는 점에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엘리베이터 층을 누를 때마다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니까. 앞으로 보다 눈치스럽지 않은 내원이 되길 바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은 당신, 당장 정신건강의학과로 떠나길 응원한다.


0회차. 사전 준비 끝

이전 01화 '우울증 치료 일지' 소개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