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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5 '우울증 치료 일지' 4회차.

4회차. 불안한 나

3일 전부터 갑자기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병원 진료 4회 차만에 일어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엄마한테 이야기 한 후로 어쩐지 일이 잘 풀리는 듯하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내 노력이 가상했는지 하늘도 나를 돕는 듯했다.

그동안은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이리저리 살펴봐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쉽게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아빠 친구분의 소개로 3개월 정도 사무직 일을 맡게 된 것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거절할 틈도 없이 정말 갑자기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갑자기 시작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하고 걱정하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못할 테니까.

보통의 사람들처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면 퇴근을 한다.

민망하게도 나는 이런 생활이 처음이다.

어색하고 뚝딱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것들을 해내는 나를 보니 신기하기도 했고,

역시 나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다행이다 안도하기도 했다.

정말 보통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오늘은 네 번째 병원에 가는 날이다.

회사에 사정을 얘기하고 조금 일찍 마쳐 달려갔는데도 진료 시간을 겨우 시간을 맞췄다.

하마터면 진료를 못 받을 뻔했다니.

직장인이 되면 토요일 진료를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겠구나.

선생님께 말씀드려 약을 조절해야겠다.

오늘 상담에서는 요즘의 나를 설명하는데 집중했다.

횡설수설, 내가 생각해도 감정이 널을 뛰고 있는 것 같다.

- 엄마한테 말했고, 엄마가 펑펑 울어서 갑자기 내가 너무 오버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 그냥 게으른 건데 힘들기 싫어서 도피하는 건데 아픈 척하다가 엄마한테 상처를 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 말하길 잘했다 싶다가도 괜히 말했다 싶기도 해요.

- 같이 펑펑 울고 나니 괜찮기도 했어요. 별 일 아니고 그냥 잘 살아보려는 과정이라고 다짐하게 되더라고요.

- 무감각, 무기력한 일상이 우울과 불안으로 바뀌었어요.

- 불안한 감정이 휘몰아치고 정신이 없고 산만하면서 온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어요.

-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들고 감정의 변화가 무서워요.

-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해서 겨우 참기도 했어요.

- 가슴이 시렸다가 말았다가 반복해요.

- 갑자기 긍정회로가 돌아가고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감정들을 불안해하며 속사포 랩을 뱉어냈다.

말하면서도 이게 지금 무슨 말인지. 그래서 이렇다는 건지 저렇다는 건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영 복잡했다.

-> 엄마한테 말한걸 보니 불안했나 봐요.

그런 나를 보며 웃으면서 진정시키는 선생님의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났다.

불안했나 보다.

정말 불안했나 보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기 시작하고, 변화를 꿈꾸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상의 대반전 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런 노력들을 꾸준히 더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고, 나는 그게 불안했다.

혼자 끙끙 앓다가 혹시나 잘못된 생각을 하면 어쩌나.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어쩌나. 불안했다.

하지만 불안한 나도 나다.

불안한 나를 잘 달래 가며 같이 가야만 한다는 걸 안다.

불안하다고 나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겠지.

그래, 불안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불안의 정도가 심히 과하다는 사실을 얼른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그래야 덜 힘들 테니까.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자.

나를 믿어주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의 진료 종료.


4회차. 불안한 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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