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차.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힘
요새 회사에 열심히 적응 중이다.
이런 일이 있으려고 병원을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만간 기회가 올 것이니 놓치지 말고 잘 버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이전에 나였으면 아마 바로 관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보통 일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일에 집중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하고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돌아온다.
그런 생활이 좋지도 싫지도 않다.
그냥 평범한 생활이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최근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유를 찾아보니
썩 좋은 신호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여태 이 생활이 아무렇지 않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팀에서 혼자 '젊은이' 였다는 점에 있었다.
얼마 후 나보다 나이는 많지만 또래의 젊은 사람이 들어왔고,
그분은 생각보다 일을 굉장히 잘했다.
나랑 하는 일이 엄연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나랑 상관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칭찬을 받는 일을 보는 게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하는 일마다 계속 칭찬을 받고 있다.
당연히 그 순간 기분은 좋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기쁨도 잠시,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고, 대단한 것도 아닌데 싶고,
매번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할까 어떨까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모든 작업이 결과물로 남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준비한 것들이
쓰임이 없어지거나 도움이 되지 못하면 허무해지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아 의욕이 사라지기도 했다.
흔히 사회생활을 하다 겪을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더 완벽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기 일쑤였고,
나는 혼자 점점 더 예민해져 갔다.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줄줄 이야기하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다 담아냈다.
- 초반에는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잘 지냈어요.
- 실수를 하거나 칭찬을 받지 못하면 울적하고 못 견디겠어요.
- 저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 같아요.
- 팀에 때때로 신경 안정제를 드시는 분이 있는데 저도 먹을 수 없나요?
->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네요.
-> 일시적으로 신경 안정제를 먹는 방법도 있겠지만 동글씨에게는 맞지 않아요.
-> 동글씨도 신경 안정제가 한 알 들어 있긴 합니다.
->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를 알고 있어요?
-> 자존심이 강하다는 건 남이 나를 안 좋게 말하는 걸 못 견디는 거예요.
-> 시야가 좁은 거죠. 일종의 고집이라고나 할까요?
-> 자존감이 강하다는 건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강하다는 거예요.
-> 나의 단점을 볼 줄도 알고, 고치려는 마음이 있는 거죠.
->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 단점을 보완해 가면서 가치 있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죠.
->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어요.
->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하지 마세요.
-> 나는 어쨌든 나일 테니까요.
그리고 지적받은 한 가지.
'비교 금지'
나는 나대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분명 나아지고 있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하루에 할 일을 다 처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 못 한다더니
며칠 전까지만 해도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해 낑낑거리던 우울증 환자가
이렇게 회사에 나가서 자신의 몫, 1인분의 몫을 단단히 해내고 있는데
도대체 뭐가 불만이라는 것인가. 뭐가 더 힘들다는 것인가.
하루아침에 모든 걸 변화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구나. 그렇게 응원해 주면 안 될까?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힘은 나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잘 해내고 있어. 충분히 그러고 있어.
5회차.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