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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글이 Oct 21. 2023

#7 '우울증 치료 일지' 6회차.

6회차. 다시, 제자리 (Feat. 별난 병)

회사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연장 계획은 애초에 없었으니 아쉽지만 일은 이대로 끝이 난다.

회사를 다닌 후부터는 바쁜 일상에 치여 우울한 생각이 거의 줄었다.

병원에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빴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약 없이도 잘 지내는 듯해서 안심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정말 다 나은 줄로만 알았다.


퇴사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벽, 갑자기 경련이 일어났다.

급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아침에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우울이 피처럼 펑펑 퍼지는 느낌이 들었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펑펑 나와 급히 남아 있던 약을 찾았다.

약을 먹고 잤더니 다행히 어제보다는 진정된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펼쳐졌다.

하루종일을 아무것도 손을 대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는 연락을 해보기도 하고,

엄마랑 나들이 삼아 카페에 갔다 오기도 했는데 기분이 좋아지진 않는다.

집에 돌아와 회사 사람들이랑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그제야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집에서는 더 이상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머리가 계속 빙빙 도는 기분이다.

진정하고 또 진정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 꾹꾹 마음을 눌러 담았다.

낮잠을 잤는데도 약을 먹고 바로 잠이 들어버린다.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약을 먹으며 조금은 나아지길 기대했고, 마지막 약이 남았을 때 선택해야만 했다.

나는 아직 다 낫지 않았구나. 인정해야만 했다.

다시 병원에 가야겠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또다시 치료를 해야 한다니... 걱정이 앞선다.


병원에 가기 전에 이번엔 엄마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렸다.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어차피 갈 거 그냥 가볍게, 무겁지 않게 말해야지 했다.

"참 별난 병이다... 또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라고 답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별난 병이라니...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별나다'는 말이 참 반갑게 들려왔다.

세상 조용하고 차분한 나의 인생사에 별난 일은 없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심심한 인생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런 내가 '별난 병'을 얻었다니 나 좀 특별해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특이하거나 특별하거나 이상하거나 독특하거나 별나거나 다 좋다 그래.

일하러 다니면서 정신없을 때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쉬면서 스트레스받고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다시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어.

생각이 계속 똑같은 굴레 속에서 돌기만 해.

엄마랑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힘내보려고.

지금은 몸이 움직여 주지 않지만 노력해 봐야지.

엄마와의 짧은 대화를 끝으로 마음 편히 다시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 오랜만입니다. 다시 왔어요. 다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 약을 먹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거예요.

-> 기대하고 계획하던 대로 인생은 움직여지지 않죠.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겨져야 하는데 그게 안되면 우울해지고 병이 생겨요.

-> 모든 것을 경험이었다 생각하고 위기를 극복해 보기를 바라요.


오늘 처음으로 약을 2주분 받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나를 믿고 2주분을 주셨다니

상태가 확실히 전보다는 나은 느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병이 약간 나았던 거라고 하셨다.

그랬구나. 나 정말 괜찮아지고 있었구나.

하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또 가봐야 알겠지.

참 별난 병이다. 죽지도 않고 또 왔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절대 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의 다짐.


6회차. 다시, 제자리 (Feat. 별난 병)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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